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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에 '대마' 잡힌 상태로 재판 들어간 삼성전자

입력 : 2013.11.22 18:00


21일(현지시간) 끝난 '애플 대 삼성전자' 특허침해 손해배상 재산정 재판은 삼성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애당초 '대마'가 잡힌 상태에서 시작한 바둑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8월 기존 평결의 기초 판단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대전제를 깔고 재산정을 하는 절차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삼성전자의 어떤 제품이 애플의 어떤 특허를 침해했는가', '과연 삼성이 애플 특허를 침해했는가' 등 문제는 이미 당시에 판단이 내려졌으므로 이번에는 따질 수 없으며, 오로지 합리적 방식에 따라 '돈 계산'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 점은 재판장 루시 고 판사가 애초부터 명확히 했으며, 배심원들과 양측 변호인들에게도 재판 과정에서 여러 차례 설명한 바 있다.

이런 전제를 깔고 시작한 재판이었으니 당연히 처음부터 삼성전자에는 매우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항소심이나 새로운 사건 재판이었다면 '애플의 특허는 무효'라거나 '이 제품은 이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삼성전자가 펼 수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그런 주장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물론 이미 정해진 기준에 따라 재판을 받는다는 점은 애플도 마찬가지였지만, 차이점은 애플 측이 이에 대한 대비를 더 잘했다는 점이다.

작년 8월 평결에서 인정됐으나 재판장이 계산 과정의 법리적 모순을 발견해 무효화시킨 부분에 해당하는 금액이 4억1천만 달러였는데, 애플은 이번 재판에서 이보다 오히려 3천만 달러 낮은 3억8천만 달러만 손해배상 청구액으로 제시했다.

'엄청나게 청구금액을 올릴지도 모른다'던 일각의 관측과는 반대였다.

즉 애플은 이번 재판에 '기존 평결의 취지는 일단 인정한다'는 '대전제'가 깔려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일단 존중하는 계산을 통해 청구액을 낮춰 잡았던 것이다.

똑같은 대전제를 공유하는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다면 원고·피고 양측의 계산이 어느 정도 접근해야 당연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삼성이 적정한 수준이라고 인정한 금액은 애플 측 청구액의 7분의 1인 5천270만 달러에 불과해 격차가 매우 컸다.

특히 '원고가 잃어버린 이익', '합리적인 수준의 로열티', '피고가 벌어들인 수익' 등 세부 항목별로 보면 양측이 이번 재판에서 제시한 계산의 차이는 더욱 두드러졌다.

애플 측은 '원고가 잃어버린 이익'으로 1억1천400만 달러를 요구했으나 삼성전자는 이에 해당하는 금액을 아예 '0'으로 잡았다.

비용 등을 감안하면 원고 애플이 잃은 이익이 전혀 없다는 주장이었다.

또 '합리적인 수준의 로열티'로 애플이 3천463만 달러를 청구한 것과 달리 삼성전자는 고작 2만8천 달러라는 낮은 금액을 주장했다.

적절한 로열티 수준에 대한 양측 주장이 자그마치 1천200배나 차이가 난 것이다.

'특허침해 제품으로 피고가 벌어들인 수익'에 관해서도 원고 애플의 주장(2억3천만 달러)과 피고 삼성전자의 주장(5천270만 달러)은 4배 이상 차이가 났다.

이번 평결 결과로 보면 배심원단은 애플 측의 계산이 합리적이라고 인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배심원단의 평결 내용 중 '원고가 잃어버린 이익'과 '합리적인 수준의 로열티' 항목에서 애플의 주장을 고스란히 인정한 점이 주목된다.

배심원들 중 평결 직후 언론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애플 측이 손해배상액 산정 근거 제시를 위해 부른 전문가 증인인 줄리 데이비스의 산정 방식이 합리적이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뒤집어 말하면, '전제'를 받아들이고 시작해야만 하는 이번 재판에서 삼성전자 측이 제시한 배상액 계산 방식이 배심원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얘기도 된다.

다만 이번 배심원들의 이런 평가는 이번 재산정 재판에 한정된 것이고, 항소심, 별개 재판, 미국 특허상표청(USTPO) 심사 등 다른 상황에서는 전혀 다른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새너제이=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