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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어느 건설 인부의 금의환향

우상욱 논설위원

입력 : 2013.11.21 11:02|수정 : 2013.11.21 11:04


금의환향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죠. 다 아시겠지만 '비단 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즉 낯선 타향에서 간난신고를 이겨내고 크게 성공한 뒤 멋진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나 남자들의 꿈입니다. 내 어려웠던 시절을 잘 아는 사람들인 만큼 그 변화를 더욱 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나를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은근히 복수하는 쾌감까지 부록으로 얻습니다.

하지만 금의환향은 자칫 결말이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공했다고 너무 어깨에 힘 주고 으시댔다가는 비눌했던 내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삽니다. '사람 변했더라'는 뒷담화를 듣기 십상입니다.
금의환향은 그래서 하기도 힘들지만 잘하기는 더 힘듭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이런 고민을 훌쩍 뛰어넘는 환상적인 금의환향이 벌어졌습니다.

새마을3쓰촨성 화잉시 가오싱진 린자신촌은 산골에 자리 잡은 농촌입니다. 공기 좋고, 물 맑고 풍광이 아름답지만 겨우 굶어죽지 않고 먹고 사는데 만족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1993년 20살의 어린 부부였던 탕궈씨와 장페이추이씨는 그래서 고향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동남아와 교역이 활성화되면서 건축 바람이 불고 있는 윈난으로 건너갔습니다. 중국에서야 바로 옆 성이지만 우리나라로 따지면 함경북도 신의주에서 전라남도 화순만큼 이동한 것입니다. 배경도, 배움도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은 공사장 인부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탕궈씨는 눈썰미가 뛰어났습니다. 의지와 각오가 남달랐습니다. 책임감과 인내심도 강했습니다. 몇년 안에 각종 시공 기술을 독학으로 익혔습니다. 공사장 인부에서 십장으로, 다시 공사 감독으로 쭉쭉 승진했습니다. 자신의 책임 아래 큰 공사의 시공을 여러 건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노하우도, 인맥도 두터워지자 독립해 스스로 건설회사를 차렸습니다. 물류회사에, 영화관 사업까지 손 대는 것마다 성공했습니다. 고향을 떠난지 15년만에 20개의 회사를 거느린 그룹 회장이 됐습니다.

탕씨 부부는 크게 성공했지만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았습니다.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고향 마을에 뭔가를 기여하고 싶었습니다. 개인 재산 3천만 위안, 우리 돈 52억8천만원을 내서 고향에 69채의 그림 같은 타운 하우스를 직접 지었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줬습니다. 다쓰러져가는 담장에, 갈라진 토벽, 나무 기와를 얹은 쇠락한 산촌이 한순간 알프스 별장촌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아름다운 마을로 변신한 것입니다. 흙 먼지 날리는 길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써야하던 우물, 푸세식 변소 대신 깨끗한 길과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 전기와 첨단 통신망이 갖춰졌습니다. 18세기의 삶을 살던 고향 사람들은 한순간 21세기 첨단 환경에서 생활하게 됐습니다.

새마을1혹자는 졸부의 돈자랑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순박했던 산골 마을을 물질로 타락시키는 것 아니냐 걱정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고생스런 시절을 함께 보내고 어려웠던 경험을 함께 겪은 고향 사람들과 성공의 과실을 나누고 싶어하는 탕씨 부부의 마음은 더없이 순수한 것 아닐까요? 예전의 나를 덧없는 사치와 향락 속에 지워버리려는 일부 신흥 부유층과 비교하면 훨씬 멋지고 고상한 삶을 추구하는 것 아닐까요? 이만한 금의환향이면 폼 난다 박수쳐줄 만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