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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흔히 이야기 되는 ‘고은’ 시인이 새 시집을 가지고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 왔습니다. 시인 자신도 “시집 열권 분량이 한꺼번에 담긴 그런 시집”이라고 말할 정도로 시인의 내공이 축약된 묵직한 대작입니다.
시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요즘은 숨찬 시대”로 규정하면서 위로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새 시집을 가지고 돌아온 고은 시인과 SBS 러브 FM 한수진의 SBS 전망대가 나눈 인터뷰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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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수진/사회자:노 시인이 새 시집을 들고 늦가을, 우리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네티즌이 뽑은 대한민국 대표 작가. 여든 살의 청춘, 겨레의 시인. 정말 별명이 많은 시인이시죠. 고은 시인을 모셨습니다. 복잡한 출근길에 청취자 여러 분들의 복잡한 마음 잠시 내려놔 주시기 바랍니다. 고은 시인과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고은 시인:안녕하십니까.
▷ 한수진/사회자:이번에 새 시집을 내셨던데 아주 묵직한 시집이더라고요.
▶ 고은 시인:이런 시집은 여태까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죠. 시집 열권 분량이 한꺼번에 담긴 그런 시집이죠.
▷ 한수진/사회자:족히 1천 페이지가 넘고 600편 이상 담겼다면서요. 이 많은 시를 쓰시는데 얼마나 걸리셨을까요.
▶ 고은 시인:한 편 가지고 몇 달도 걸리고 1년도 걸릴 수도 있죠. 그런데 이것은 그와 정 반대로 두 계절을, 봄과 여름을 나눈 그 기간에 썼죠.
▷ 한수진/사회자:시의 영감이 폭죽처럼 터졌나보네요.
▶ 고은 시인:아주 깊이 박혀있는 석탄이나 광산 광물들처럼 아주 오랜 기간 힘들여서 파낼 수도 있고 어떨 때는 우레와 번개처럼 빗발칠 때도 있고 그런 것이죠. 이번 것은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한수진/사회자:이번에 보면요. 무제시편이라는 제목처럼 시에 제목 하나도 안 달고요. 그냥 1, 2, 3, 4 이렇게 번호만 매겨놓으셨던데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하신 건가요.
▶ 고은 시인:사실 번호도 매겨서는 안 되는 것이죠. 그런데 왜 그러냐고 하면 우리 시의 역사가 전부 제목을 가지고 있고 시가 펼쳐지는데 어떤 때는 나는 제목이 시 자체를 억압하거나 가두어 놓거나 하는 그런 걱정이 있어서요. 모든 제목들을 그 작품에서 떼어내서 자체 운명을 개척해 나가거라. 하는 의도로 무제라고 하는 이름으로 했죠. 그런데 무제라는 것이 하나가 아니라 많이 되니까 부득이하게 번호를 넣게 되었죠.
▷ 한수진/사회자:어떻게 보면 독자들이 시를 읽으면서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고 어떻게 보면 자기 나름대로의 제목을 붙일 수 있는 그런 작품이 되겠어요.
▶ 고은 시인:옳지. 말 잘하셨네. 그렇습니다.
▷ 한수진/사회자:이번 시집 보면서 피카소 이야기가 문득 생각이 나던데요. 말년에 피카소가 그린 그림 보고 사람들이, 아이들 낙서 같다. 라고 했더니 피카소가 이렇게 대답했데요. 그렇다. 아기가 되는데 80년 걸렸다. 이런 말 했다던데, 선생님께서 올해 등단 55년 째 이신데, 나는 아직 시의 아기다. 이런 말씀하셨더라고요.
▶ 고은 시인:나는 늘 지금도 시를, 맨 처음 시인이 될 때처럼 설레면서 쓰고 있죠. 55년 쯤 되었으면 시에 익숙할 법 한데 아직도 시가 늘 새롭고 처음 만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내가 한 젖먹이 아기로서 시를 막 시작한다. 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정말 행복하시네요. 선생님. 그런데 선생님. 혹시나 이런 생각해보신적 없으세요? 시가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요.
▶ 고은 시인:아니오. 그런 걱정 전혀 안 했습니다. 그 때쯤 되면 참 재미있겠네. 그 때는 내가 시 자체가 되어 버리면 되는 거니까, 참 좋겠네.
▷ 한수진/사회자:많은 한국 사람들이 저와 같은 생각일 것 같은데, 가을이 되면 스웨덴 한림원 참 원망스럽거든요.
▶ 고은 시인:나는 그런 대답할 대상이 아닙니다. 나무나 감나무나 밤나무에게 물어보십쇼.
▷ 한수진/사회자:선생님은 이런 것 전혀 개의치 않으신다. 이런 말씀이시군요. 이런 질문도 한 번 드려보겠습니다. 요즘에 더 이상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도 하는데 평생 시와 함께해 오신 선생님께서 이런 형편 어떻게 보세요.
▶ 고은 시인:시는 몇 천 년 동안 인류의 가장 핵심적인 정서를 읽혀왔습니다. 지금도 인간의 본성 안에는 시가 다 들어있죠. 나만 시인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쓰지 않는 시인으로서 시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겠죠. 다만 우리 시대에 와서 시가 할 일을 다른 것들이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 원형으로서의 시가 멀어지고 있고 그렇습니다만 괜찮습니다.
나는 시가 황금기를 누릴 때에 행복한 시인이기도 했고 시가 조금씩 멀어지면서 쓸쓸할 때에 시인의 역할도 축복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시장이라든지, 자본의 시대는 인류의 본성이라든가. 깊은 사유라든가. 정서에 어떤 오묘한 경지라든가. 이런 것이 별로 표가 없이 상품의 논리로만 세상이 가고 있죠. 그런데요. 이런 시대가 간 뒤에는 시장도 울음을 터뜨리며 시 앞에 고개를 숙일 그 날이 올 것입니다.
▷ 한수진/사회자:그런데 선생님. 요즘 보면 우리 사회 커다란 화두가 가운데 하나가 바로 힐링인데요.
▶ 고은 시인:힐링이라는 것에는 별로 가치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태어나자마자 삶을 거치는 동안 혹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상처의 삶을 사는 것이죠. 물론 나는 전쟁 상황에서, 사느냐, 죽느냐. 라는 그런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봤고 또 무서운 독재 시절도 살아봤고 여러 형태의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도 역시 그 때 상응하는 자기 삶의 절망적 상황을 경험하게 되죠. 특히 내일이 담보되지 않죠.
내일이 없는 삶을 살게 되니까 오늘도 없는 삶을 살게 되죠.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을지언정, 그들을 치유한다든지. 힐링 어쩌고 하는 그런 것에는 내 힘이 닿지 못합니다. 다만 나는 그들의 한 친구로서 그들을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또 절망이라는 것 속에서만 희망이 있는 것이지. 희망 투성 속에서는 희망이 없는 것이죠. 부디 이런 상황에서 희망의 논리를 각자가 찾아가기를 간절히 바랄 따름입니다.
▷ 한수진/사회자:어느 시대에나 어려움은 있고 늘 불안한데 그 안에서 각자가 희망의 논리를 찾아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 요즘 뉴스 보고 계시죠. 어떠세요. 세상 돌아가는 것이요.
▶ 고은 시인:뉴스는 늘 어떤 해답이 있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는 그런 힘을 갖고 있죠. 그런데 이 문제들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갈등을 굳혀가고 서로 예를 통한 상호 가치 실현. 이런 것이 전혀 성립이 안 되는 듯한 숨찬 시대가 요즘이 아닌가. 해서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 한수진/사회자:요즘 우리 정치 보시면서 어떤 생각하시는지도 여쭈어보고 싶은데요.
▶ 고은 시인:어떤 기업가가 언젠가 한국의 정치는 3류다. 라고 했는데요. 어떤 때는 3류도 아니고 4류, 5류 같은 때도 많이 있습니다. 정치가 좀 더 한 단계 높은 발전의 얼굴을 가졌으면 좋겠다. 여겨지네요.
▷ 한수진/사회자:지금 이 시간이면 새 날을 시작하려고 운전대 잔뜩 움켜쥐고요. 출근길에 올라있는 시민들 많으실 텐데 격려의 말씀이라고 할까요. 어떤 말씀해주시겠어요.
▶ 고은 시인:차를 몬다는 것. 차를 몰고 길을 달린다고 하는 것은, 그 옆모습, 뒷모습 보면 참 진지하죠. 이 세상의 미지의 곳으로 내달리는 모험 같은 것도 보이고 또 그렇게 달림으로서 집에 있는 가족들의 삶을 누리게 하고 그런 점에서는 참 무거운 행로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위로 하고 싶습니다.
▷ 한수진/사회자:진지한 미래로 가는 행위다. 이런 말씀이시네요. 아까 말씀 나눈 대로 선생님 올해 등단 55년 째 인데요. 마지막으로 이렇게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선생님께 시란 무엇인지요.
▶ 고은 시인:시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의 아픔. 이 세상을 떠나는 자에 대한 애도. 이런 것이 전부 시와 가장 가까운 경험들이죠. 또 아기가 태어나면 아주 기쁘죠. 아주 그리운 사람을 만나는 기쁨도 있죠. 또 한 겨레가 아주 아팠다가 다 치유되어서 서로 함께 만나서 껴안는 기쁨도 있죠. 또 세계가 함께 박수치는 기쁨도 있죠. 이런 모든 행위들이 시와 깊이 관련되어 있죠. 나는 시가 무엇이냐. 라고 정의하기 전에 시를 살기를 바란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한수진/사회자:시를 살기를 바란다. 우리 삶 순간순간이 곧 시다. 또 삶의 여러 상황 속에서 우리는 시심을 느끼고 그것을 어떤 형태로든 표현하고 있다는 뜻이네요. 우리 모두가 시인이네요 선생님.
▶ 고은 시인:암, 어떨 때는 흐르는 물도, 박혀있는 돌멩이도 시인이에요.
▷ 한수진/사회자: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저도 오늘 참 멋진 시를 쓰는 하루가 되고 싶습니다. 선생님 시도 많이 읽고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새 시집을 내신 고은 시인 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