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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구제역 살처분 트라우마로 자살, 업무상 재해"

윤나라 기자

입력 : 2013.11.14 09:24


구제역 발생 당시 가축 살처분에 참여했다가 정신적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은 축협 직원이었던 정 모 씨의 유족이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습니다.

2001년부터 충청남도의 한 축협에서 일해온 정씨는 2010년 12월 말 당진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자 동료들과 함께 가축 매몰작업에 투입됐습니다.

갓 태어난 어린 가축을 포함한 소·돼지를 산채로 구덩이에 파묻어 죽여야 했던 정 씨는 그 일로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후 정 씨는 동료에게 '자다가도 악몽을 꾸고 놀라서 깬다'거나 '이러다 벌 받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며 힘든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이 무렵 정 씨는 불면증으로 하루 2∼3시간밖에 자지 못했고 조울증세에 위염과 십이지장궤양 등 건강상 문제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정 씨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냈지만 반려되자 결국 2011년 10월 숙직실에서 동물 마취용 근육이완제를 주사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유족들은 이듬해 2월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습니다.

재판부는 "정 씨가 구제역 매몰작업 이후 우울증을 의심케 하는 폭력적 행동을 보였고 불면증과 위염 등 증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살처분으로 견디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어 "살처분 트라우마 등으로 인한 극단적 두려움과 괴로움으로 정신적 억제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어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구제역 살처분 트라우마로 자살한 사람의 유족이 소송을 통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