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불쌍하게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있는 그대로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후원도 전혀 원하지 않고요. 탈북자는 잘 살면 안 되나요?”
중고생 9명이 사는 집은 시끌벅적, 활기가 넘쳤습니다. 아이들은 거실에서 요새 한창 인기 있는 드라마에 빠져 있었습니다. 대식구가 사는 만큼 살림살이도 남달랐습니다. 세탁기 2대는 매일 돌려야 하고 5개의 냉장고에는 반찬이 가득했습니다. ‘밥을 간식처럼 먹는’ 아이들은 20kg짜리 쌀 한 포대를 2주 만에 해치웠습니다. 무연고 탈북청소년 9명과 이들의 ‘총각 엄마’ 김태훈 씨가 사는 집의 모습입니다.
놀기 바쁜 아이들인 줄 알았는데 이른바 ‘스펙’도 좋았습니다. 탈북자 출신 최초로 일반 중학교에서 학생회장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자원봉사활동 경력을 인정받아 한국 대표로 선발돼 내년에 미국 워싱턴으로 연수를 받으러 가는 고등학생도 있었지요. 남한 아이들도 부러워할만한 일들을 해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을 하게 됐냐는 질문에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탈북자는 학생회장하면 안 되고, 남을 도울 수도 없는 사람인가요?”
총각 엄마 김 씨가 아이들과 살게 된 건 2006년, 자원봉사활동이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한 소년이 김 씨에게 “하룻밤만 같이 있어주면 안 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멀쩡한 회사를 다니던 김 씨는 아이와 함께 밤을 보낸 뒤 바로 다음 날부터 아이의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김 씨는 “제가 가면 이 아이는 혼자인데 가겠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아무 것도 계획한 것도 생각한 것도 없이 그냥 같이 살게 됐다”고 말했지요. 이렇게 한 명, 두 명 아이들이 늘어 지금과 같은 대식구가 됐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서울 성북구의 이층집은 김 씨가 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2억 6천만 원을 주고 구입한 전셋집이지요.
김 씨의 집처럼 무연고 탈북자들이 함께 지내는 곳을 정부는 ‘그룹 홈’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혼자 생활이 가능한 탈북자는 임대주택과 정착 지원금을 받지만, 자립 능력이 없는 24세 미만의 탈북자는 혼자 생활할 수 있을 때까지 이런 보조금을 일단 국가가 가지고 있게 됩니다. 대신 그룹 홈이나 대안학교에서 자립 능력을 키우게 되는데요, 정부 관계자들은 일반학교에서 남한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그룹 홈이 사회적응 면에서 훨씬 더 탈북자에게 좋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룹 홈에 대한 지원은 미미한 실정입니다. 보건복지부에서 한 달에 23만 원을 주고 있는데 아이들이 몇 명이든 23만 원뿐이어서 관리비나 전기세 요금을 충당하는데 그치지요. 그래서 김 씨는 전시회나 음악회 등 공모사업을 통해 생계를 꾸려 나갑니다. 통일부 공모사업에 지원해 사업비를 받아 생활하는 것이지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국 13개의 그룹 홈 중 개인이 운영하는 건 김 씨가 유일합니다. 종교 재단 등이 아니면 현실적으로 운영이 힘든 셈이지요. 그래도 큰돈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함께 굶지 않고, 공부시킬 수 있을 만큼 벌 수 있다고 김 씨는 말합니다.
기사를 쓰고 나서 무척이나 미안했습니다. 아이들이 댓글을 보면서 상처를 받고 있다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말들이 계속 댓글로 올라오고 있었는데 보는 저조차도 화가 치밀었습니다. 처음 김 씨를 만났을 때 기사화되는 것을 우려한다며 “탈북자들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상황에서 혹시 기사화가 돼서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두렵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김 씨의 말이 맞았습니다. 총각엄마와 9명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정부 지원도 일반 시민들의 후원금도 아니었습니다. 탈북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게 우선이었지요. 아무쪼록 더이상 아이들이 댓글을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