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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엘리트 경찰관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한세현 기자

입력 : 2013.11.10 13:54


지난 10월23일,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야산에서 중년 남성 한 명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숨진 남성은 서울 모 경찰서 과장급 경찰관인 47살 조 모 경정이었습니다. 조 경정은 그날 새벽 4시 40분쯤 집을 나섰고, 4시간 뒤 집에서 약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타살을 의심할만한 정황은 발견돼지 않았습니다. 대신, 조 경정의 외투 주머니에서 A4용지 3장 분량의 자필 유서가 나왔습니다. 유서엔 ‘승진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결국, 수사를 맡은 경찰은 조 경정이 ‘승진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안타까운 사건이 있기 얼마 전, 전 조 경정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출입기자와 담당 과장이 만난 자리라 업무에 대한 얘기가 대부분이었지만, 조 경정은 대화 중간 중간 진급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며 속내를 조금 내보이기도 했습니다. 경찰대 출신(5기)으로 경찰관으로 근무하는 내내 잘한다는 얘기를 듣고 지냈는데, 언제부턴가 일이 조금 어긋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최악의 선택을 하게 만든 그 스트레스의 근원인 무엇인지. 기자이기 전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조 경정의 죽음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승진 부담의 근원은 ‘계급 정년’

“스트레스 많이 받았죠. 특히, 이맘때가 스트레스 많이 받을 때죠.” 조 경정의 동료 경찰관은 이렇게 얘길 시작했습니다. “지금이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인사를 앞두고 평정이 시작되는 시기거든요. 잠도 잘 못 자는 거 같고, 늘 피곤해 보였어요. 특히, 조 경정처럼 경찰대 초기 기수들은 엘리트 의식이 강한데, 조직에서 멀어진다는 느낌을 견디기 어려웠을 겁니다.”

이런 상황은 조 경정이 남긴 글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유서에는 과거 조 경정이 승진에 좀 더 유리한 보직을 맡을 기회가 있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자신을 자책하고 후회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과거 자신의 그런 선택 때문에 승진이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굳이 목숨까지 버렸어야 했을까요?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할 만큼 승진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경정 이상 간부들에게 적용되는 ‘계급 정년제’ 때문입니다. 경찰공무원법에 따르면, 승진에 실패한 간부는 일정 근속기간이 지나면 의무적으로 퇴직해야 합니다. 60세로 보장된 정년과는 별도로 적용되는 ‘계급 정년’이 있는 것입니다.

경정의 계급 정년은 14년입니다. 다시 말해, 경정으로 진급한 뒤 14년 안에 총경으로 진급하지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한다는 겁니다. 올해는 조 경정은 경정이 된 지 여덟 번째였습니다. 언뜻 보기엔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경정이 총경 승진 대상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10년 차까집니다. 10년 차부터는 인사 평가에 반영되는 경력 점수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2년 안에 승진하지 못하면, 조 경정은 2019년 53세라는 이른 나이에 옷을 벗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퇴직 이후의 삶이 두려운 ‘중년의 불안’

하지만, 이 사건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심리적 압박요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건 바로 ‘퇴직 이후의 삶’이었습니다. 사건 현장에서 유서와 함께 발견된 가방에는 ‘퇴직금 계산서’와 ‘퇴직 후 받게 될 연금을 계산한 메모’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가 겪은 승진 스트레스의 배경에는 퇴직 이후를 걱정하는 가장의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조 경정이 승진에 실패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러면 조 경정은 53살 나이에 정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자녀가 장성하는 50대는 가정경제 지출이 가장 많은 시깁니다. 대학 등록금과 결혼 비용 등으로 목돈이 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조 경정은 현재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조 경정은 얼마 전 경기도 고양시에 아파트를 구매하며 일정 금액의 빚을 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돈을 모아두기는커녕, 빚을 진 상태로 50대 초반에 은퇴해야 한다는 건 가족을 부양해야 할 가장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대학에 보내야 할 자녀 사교육비를 끊거나 집을 팔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자녀가 공부를 잘해서 일류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대학 등록금과 결혼 혼수 자금이란 문제가 또 남습니다. 이렇게 목돈이 들어가는 상황에서, 거기다 부모님까지 봉양해야 한다면, 누구라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의 죽음의 근원은 승진에 실패한 엘리트의 좌절이 아니라 퇴직 이후를 두려워하는 ‘중년의 불안’이었던 것입니다.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

36년 평생을 외판원으로 살아온 윌리는 아내에게 답답한 마음을 토로합니다. “꼭 우리 안에 갇힌 것 같아. 벽돌담, 유리창, 거리엔 자동차 행렬뿐이고. 아무리 돌아봐도 신선한 공기 한 방울 마실 곳이 없어" 윌리는 더는 외판원으로 일하기가 어려워 사장에게 본사의 내근직으로 옮겨 달라고 부탁하지만, 오히려 쉬라는 말과 함께 해고를 당합니다. 결국, 윌리는 가족들에게 보험금이라도 남기기 위해 자살을 선택합니다.

퓰리처상 비평가 단체상, 브로드웨이 장기 공연에 빛나는 아서 밀러(Arthur Miller)의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의 내용입니다. 자식들 학비 대고, 취업 걱정하고, 결혼시킬 걱정을 하며 집사고, 자동차 사고, 그 할부금 갚아가는 인생. 그건 비단 윌리만의 인생은 아닐 것입니다. 꿈은 사라지고, 할부금을 갚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한 달 한 달 할부금을 갚아나가는 인생. 그 할부금을 다 갚았을 때에는 이미 주름살이 깊어져 있는 모습, 그건 어쩌면 아버지라는 이름의 인생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자리가 다 어렵고 힘들지만, 아버지라는 자리만큼 무겁고, 힘들고, 또 외로운 자리도 드물 겁니다.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세우고 싶어도 세상 안에서의 당신 자리는 너무 작고, 큰소리치기엔 지갑이 너무 얇고, 부모께 효도하고 식솔들 챙기기엔 능력이 부족하고, 자랑스러운 가장이자 아버지이기엔 어깨가 자꾸 내려갑니다. 그럼에도, 차마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는 우리들의 아버지, 조 경정의 마지막 모습도 그렇게 쓸쓸히 걸어가는 우리 아버지의 뒷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조 경정의 죽음이 단순히 어느 엘리트 경찰관의 좌절로만 보도되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조 경정의 죽음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 본질은 더 크고, 무겁고, 어둡고, 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조 경정의 마지막 모습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를 다 같이 고민해 볼 수 있으면 합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