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보기관의 무차별적인 도감청으로 유럽 국가들의 분노가 커지면서 유럽연합(EU)과 미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유럽 각국 정상들까지 도청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EU-미국 협력관계 전반에 대한 재검토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을 방문한 비비안 레딩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겸 법무·기본권 담당 집행위원은 "유럽 지도자들에 대해 도감청을 해온 미국은 유럽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주 열린 EU 정상회의는 미국 정보기관의 불법행위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천명했으며 EU 집행위는 미국 정보기관의 무차별적인 정보수집에 대항하기 위해 개인정보보호 규정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유럽의회는 지난 23일 미국과 은행계좌 정보 공유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또한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미국이 납득할만한 해명과 재발방지 방안을 내놓을 때까지는 현재 진행 중인 EU-미국 FTA 협상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의 불법 정보수집 스캔들이 확산하면서 EU가 FTA 협상을 이 문제와 연계할 가능성을 시사하고는 있지만 큰 틀에서는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 진행될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지난 7월 EU-미국 FTA 1라운드 협상을 앞두고도 미국의 무차별 정보수집 및 도청으로 EU와 미국 간 갈등이 불거져 협상을 취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예정대로 협상이 열려 상당한 진척을 이룩했다.
10월 초 열릴 예정이던 2라운드는 협상은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부분 업무정지)으로 연기됐다.
그 이후 미국 정보기관의 불법 도감청에 대한 대한 폭로가 잇따르면서 FTA 위기론이 불거졌으나 협상은 계속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미국 기업의 정보수집 활동 규제가 FTA 의제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 측은 유럽에서 활동하는 미국기업들이 유럽 국가 국민의 개인 정보를 활용하도록 허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EU 측은 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2라운드 협상을 앞두고 EU와 미국은 세계 최대 FTA 성사에 장애가 되는 양측의 각종 규제와 기준을 통일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해 내년 1월까지는 공통 규제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카렐 데 휘흐트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9월 말 마이클 프로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회담한 후 발표한 성명에서 식품, 항공 안전, 전기자동차, 금융 서비스 등의 다양한 부문에서 발생하는 규제와 기준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공통 규제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양측은 실무 협상에서 합의되기 어려운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정치적 고려'를 통해 신속하게 합의를 도출할 방침을 밝혀 조속한 협상 타결 의지를 천명했다.
EU와 미국이 이처럼 협상을 서두르는 것은 그만큼 FTA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EU는 평균 3년이 걸리는 FTA 협상을 1년 혹은, 늦어도 1년 반 안에 마무리할 수 있도록 미국과의 협상을 서둘러 진행할 계획이다.
앞서 휘흐트 위원은 EU-미국 FTA 협상을 조기에 타결한다는 EU의 입장은 확고하다고 밝히고 내년 중반까지는 협상이 매듭지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U는 내년 중반으로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 이전에 미국과 FTA 협상을 마무리 짓기를 원하고 있다. 이보다 늦어진다면 새로운 EU 집행위가 구성되는 내년 11월까지는 완료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미국도 내년 중간선거 이전에 EU와 FTA 성사를 희망하고 있어 협상이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U와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을 합치면 전 세계 GDP의 약 47%가 된다. 양측 교역량은 세계 교역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EU는 미국과 FTA가 시행되면 EU 전체 GDP가 0.5% 성장하고 일자리 40만 개가 창출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브뤼셀=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