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독은 스피로헤타(spirochete)과에 속하는 세균인 트레포네마 팔리듐균(Treponema pallidum)에 의해 발생하는 병이다. 치료는 가능하나 완치가 쉽지 않은 질병으로 만일 완치가 되지 않을 경우 수 년에서 10년 후에 다시 발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치료가 제대로 됐는지 일정기간 동안 체크하는 것이 필요하다.
혈액관리법시행규칙은 매독 환자의 경우 치료 종료 후 1년이 경과하지 않으면 아예 채혈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매독 2기 진단을 받았던 20대 남성이 진단 후 8개월 만에 헌혈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당연히 폐기돼야 했지만 헌혈 후 실시하는 선별검사에서 음성 반응이 나왔고 이 남성의 피는 3개로 나눠어 대학병원 두 곳과 혈장분획센터로 공급됐다. 이후 그 중 하나가 2개월 된 여자 아기에게 수혈됐다. 질병관리본부가 갖고 있는 매독 감염자 정보가 적십자사에 공유만 됐더라도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앞서 말한대로 매독은 당장 증상이 없어졌다고 안심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다. 일정기간 동안 재발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난치병이다. 헌혈한 혈액으로 실시하는 선별검사 결과만 갖고 안심할 수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감염병 정보, 5개 항목만 공유
취재가 시작될 당시,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실과 기자가 알고 있는 정보는 문제의 혈액이 모 대학 어린이병원에 공급됐다는 게 전부였다. 어린이에게 수혈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혈자의 나이와 성별을 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질병관리본부는 절차상 시간이 필요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의원실 측이 질병관리본부와 설전을 벌인 끝에 결국 질병관리본부가 아닌 해당 병원에 직접 공문을 보낸 뒤에야 수혈자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싸워도 안됐던 일이 단 10여분 만에 끝났다. 의원실 측의 확인 결과 수혈자는 2개월 된 여자 아기였다.
현재 보건 당국은 수혈 사고를 막기 위해 2가지 안전 장치를 가동하고 있다. 첫째 혈액사고방지 정보조회시스템이다. 질병관리본부의 감염병 환자 정보를 적십자사에 제공해 헌혈유보군을 걸러낸다. 둘째 선별검사다. 헌혈한 피를 검사해 문제가 있는 혈액을 골라내는 방법이다.
문제는 질병관리본부가 제공하는 감염병 환자 정보가 에이즈와 인간광우병, 말라리아, 바베시아, 브루셀라 등 5개에 한정된다는 점이다. 애초에 헌혈이 금지된 매독 환자가 헌혈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매독이 정보제공 대상 감염병에서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 감염 환자 혈액, 3년간 135명에게 수혈
질병관리본부의 조사결과, 채혈금지 대상자인 매독과 A형간염, 말라리아, 환자의 혈액을 포함해 감염성 질환에 걸린 환자 71명에게서 모두 177unit가 채혈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이 가운데 135unit는 환자에게 직접 수혈된 것으로 확인됐다.
질병관리본부가 갖고 있는 감염병 환자의 정보를 적십자사와 공유만 했어도 대부분 막을 수 있는 사고였지만 인권 침해 등의 문제로 아직까지 정보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선별검사도 문제다. 현재 감염병 검사항목이 예닐곱개에 불과해 A형 감염 같은 주요 질병조차 포함돼 있지 않다.
(참고로 질병관리본부와 적십자사는 이런 사고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의원실에서 감염 혈액의 유통실태를 살펴보겠다며 질병관리본부의 감염병 정보와 적십자사의 헌혈·수혈 정보를 비교 조사하라고 요구한 뒤에야 확인이 됐다.)
◈ 질병관리본부 "추적조사 착수"
취재 이후,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혈액관리위원회의 결정사항에 따라 공유 항목을 정했지만 질병 상황 등의 변화를 반영해 감염병 공유 항목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번에 문제가 된 수혈자들에 대한 추적조사에도 착수했다고 말했다.
특히 2개월 된 여자 아기에게 수혈한 뒤 샘플로 남겨둔 혈액을 조사한 결과, 매독 음성 반응이 나왔다고 말했다. 또 아기를 치료한 병원에도 확인한 듯, 아기가 별 탈없이 잘 자라고 있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아직 검사가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괜찮다는 설명이었다.
아직 안심할 순 없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다. 특히나 수혈자가 여자 아기여서 우려가 더 컸었다. 만일 성인이 된 뒤에 매독이 발병할 경우 자칫 임신을 통해 아기에게도 전염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기 부모는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보건 당국이 이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 수혈 사고, 당사자에게는 비밀?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사고 시에도 수혈된 혈액의 보관 샘플 검사 등에서 질병에 양성반응이 나오지 않을 경우 이를 당사자에게 통보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발병 우려가 없는데 (크지 않은데?) 괜히 당사자에게 이를 알려 걱정만 하게 만들 이유가 있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의 실수로 발생한 사고 사실을 정부가 임의로 안전성을 판단해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옳바른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특히나 검사에서 잡아내지 못했던 감염병이 잠복기를 거쳐 발병할 경우 환자는 영문도 모른 채 병에 걸릴 수 있다.
발병 가능성이 있는 피를 수혈받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본인이 꾸준히 추적 검사를 해 발병을 피할 수도 있고 또 혹시 나중에 병에 걸리더라도 수혈과의 연관성을 밝혀 보상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가 이를 전혀 모를 경우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도보완을 생각해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