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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 님을 기억하며

하현종 기자

입력 : 2013.10.21 13:46|수정 : 2013.10.21 16:11


주찬권 선생님을 만났던 건 지난 2007년 12월 3일 이었습니다.
당시 "당신은 챔피언"이라는 송년특집 뉴스 시리즈를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한때 음악계를 주름잡던 수퍼그룹의 드러머.
그리 넉넉치 못한 형편을 드러내고 싶지 않을 법도 했지만 돈 보다 꿈을 주는 선생님의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취지에 선뜻 어려운 결정을 해주셨습니다.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는 주찬권 님의 개인 연습실 겸 스튜디오 였습니다.
스튜디오는 경기도 성남 근처의 어느 시장통 골목 지하에 있었습니다.
연주와 녹음을 위한 장비는 잘 갖춰져 있었지만, 그룹 들국화의 명성과는 분명 거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눅눅하고 허름했습니다. 들국화를 듣고 자랐던 저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럼에도 기자로서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질문을 해야 했습니다.주찬권"선생님 여기..혹시 월세는...얼마인가요..?"
"....허허허 내 마지막 자존심이라 그건 얘기 못하겠는데..허허허...그냥 많이 쌉니다 허허허"

가슴 한 구석이 아팠습니다. 괜시리 팍팍한 우리 나라 록 음악계의 현실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주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습니다.
멋적은 듯 기타와 드럼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연습실은 금방 아늑한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주찬권 님은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

주찬권 님은 당시 들국화 멤버였던 최성원 님과 함께 '인생밴드'를 결성하여
막 활동을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한참 잘 나가던 밴드가 해체되면서 형편이 어려워졌지만 인터뷰를 하며 단 한번도 밴드 해체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신 적도 없었습니다. 대신 들국화 멤버들 모두와 다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했습니다. 옛날의 영화를 다시 누리고 싶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주찬권 선생님에게는 돈이나 인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저 마음 맞는 사람들과 좋은 음악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따뜻한 에너지를 전달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부족한 필력이나 최선을 다해 기사를 썼고 편집까지 마쳤지만 방송 예정이었던 뉴스는 아쉽게도 뉴스 진행 도중 시간 관계상 빠져버렸습니다. 면목이 없어 송구하다며 전화를 드렸을 때 예의 그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하시며 괜찮다고, 나중에 소주나 한잔 하자시던 목소리가 생생합니다.

들국화가 재결성 된지 겨우 1년인데...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재결성인데.. 안타깝고 마음이 시립니다.
너무 일찍 떠나셨지만, 하늘에서도 그때의 순수한 미소와 함께 드럼을 연주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선생님이 보여주신 순수함과 열정, 의지를 오래도록 잊지 않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s.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되어 버린 당시 미방송된 기사를 첨부합니다.
다시 한번 주찬권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 2007년 12월 30일 SBS 8뉴스 (미방송)

<앵커>

한 해를 보내며 삶의 무게가 담겨 있는, 가슴을 흔드는, 그런 음악이 아쉬운 요즘입니다. SBS 송년기획, 당신은 챔피언 돈보다는 꿈과 열정을 쫓아 자신만의 음악을 이어가는 대중 음악인의 이야기를 하현종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지난 80년대를 주름잡았던 록밴드 들국화 출신 드러머 주 찬권씨. 오늘도 그의 소박한 작업실에선
열정의 드럼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지난 87년 밴드 해체 이후 주씨는 춥고 배고픈 생활을 겪어야 했습니다. 수입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했고, 생계를 위해 가요주점 반주를 하기도 했습니다.

음악을 접고 돈 되는 일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주씨는 결코 음악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주찬권/음악인(들국화 전 드러머) : 돈이 없어도 뿌듯할 때가 있고 돈이 있어도 허전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음악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기 때문에.]

유일한 재산이었던 집까지 팔아가며 꾸준히 하나 둘 내놓은 개인 음반이 어느덧 5장째.

주씨의 독백이 묻어나는 이 앨범들은 비록 만 장도 채 팔리지 않았지만 음악 마니아들의 찬사를 자아냈습니다.

이제 지천명을 넘긴 나이. 주씨는 또 다른 음악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들국화 시절 함께했던 최성원씨와 의기투합해 새로운 밴드를 결성했습니다.

이름은 '인생밴드' 음악을 통해 삶을 바라보자는 뜻입니다.

[주찬권/음악인(들국화 전 드러머) : 음악을 통해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고 내가 피드백을 받고 하는 과정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음악인의 길에서 한번도 배부른 적이 없었지만 결코 후회한 적이 없었다는 주찬권 씨.

꿈보다는 돈이, 열정보다는 현실적 영악함이 인정받는 시대지만, 그만의 뚜벅뚜벅 음악 행진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주찬권/음악인(들국화 전 드러머) : 제가 생각한 에너지들을 모아서 따뜻함과 어떤 힘과 용기를 주는 음악을 만들고 또 공연을 해나가는게 목표고 해나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SBS 하현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