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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서울에서 '공사장 대형참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최효안 기자

입력 : 2013.10.12 13:51

'책임감리제'뒤에 숨은 서울시의 맨 얼굴


기자 일을 하면서 한국사회만큼 '예측 불가능한 위험 사회'가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자주 듭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 기자 일을 해보진 않아 정확히 비교할 순 없지만^^)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은 한국사회를 일컬어 "한국사회는 소설보다 더 허구적이다"란 얘기를 자신의 책에서 쓴 적이 있는데, 대학 시절 그 책을 읽으며 '에잇, 설마 그렇겠어? 이 분이 한국사회를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 아냐?'했었는데, 지금은 그 평론가의 생각에 100% 동의합니다.

불과 석 달 전인 지난 7월,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선 보름 간격으로 서울시가 발주한 공사현장에서 무려 9명의 근로자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7월 15일 노량진 공사현장에서 7명이 숨졌고, 보름 뒤 30일에는 방화동 방화대교 접속도로 공사현장에서 2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모두 서울시가 발주해 막대한 세금으로 진행되던 대형 공사였습니다.

세계 일류도시를 지향하는 서울에서, 민간회사도 아닌 서울특별시가 직접 발주한 공사에서,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가 그것도 보름 간격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구성이 참 허술한 3류 소설에서도 나오지 않는 어이없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사고가 일어나자 서울시는 무엇을 했냐는 질책이 당장 쏟아졌고, 그때 서울시가 내놓은 변명은 바로 '책임감리제'였습니다.

'책임감리제'란 총 공사비가 200억 이상의 공공 기관이 발주처인 공사에서 시공사와 관련 공무원 간의 부패 결탁 등을 막기 위해 민간업체에 감리를 맡기는 제도를 말합니다.

서울시는 사고가 난 공사현장은 모두 '책임감리제'가 작동되는 곳이기 때문에 서울시는 법적으론 별 책임이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언뜻 들으면 그럴 듯 해 보이는 이 얘기는 그러나 조금만 살펴보면 참으로 후안무치한 변명입니다.

'책임감리제'란 제도가 나온 것 자체가 바로 발주처인 관(官), 즉 공무원의 힘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관급공사에서 관(官), 즉, 공무원이 '슈퍼 갑'인 상황이라 정상적인 감리가 이뤄지지 않아서 나온 제도가 바로 책임감리제인 겁니다.

시공사와 공무원의 검은 유착을 막아보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책임감리제'일뿐, 기본적으로 서울시가 발주한 공사에선 발주처인 서울시의 입김은 그 어떤 힘보다 현장에서 강력하게 작동한다고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얘기합니다.

실제로 '책임감리제' 하에서도 과연 '책임감리제'가 잘 이뤄지는지 발주처인 서울시가 점검을 하는 것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상식입니다.

그런데 최근 사고가 난 지 석 달 여 만에 서울시가 내놓은 공사장 안전사고에 대한 종합대책을 보고 전 적잖게 놀라고 실망했습니다.
무려 20페이지가 넘는 보도자료라기 보단 거의 무슨 안전 관련 설명서에 가까운 대책은 대부분이 '책임감리제'하에서도 발주처인 서울시가 당연히 했어야 하거나 해야 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백번 이해해서 서울시의 책임을 최소한으로 규정한다 해도, 이렇게 엄청난 사고를 일으켰다면 당연히 감리업체에 대한 강력한 제재책을 관장하는 관련부처인 안전행정부에 서울시는 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대책에서 그런 부분은 쏙 빠졌습니다.

발주처인 서울시와 감리업체에 대한 처벌이나 제재책은 강화하지 않고, 정작 서울시는 가장 약자인 하도급업체에 대한 처벌만 강화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일류도시를 지향한다는 서울시가 발주처인 자신들의 과실이 상당한 사고를 한 달 사이 2번이나 내고도, 변명으로 일관한다는 사실이 기자이기 앞서 서울시민으로서 참 안타깝습니다.

'책임감리제' 뒤에 숨은 채 발주처로서 기본적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서울시가 바뀌지 않는 한, 서울의 대형 공사장에서 대형참사는 얼마든지 되풀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