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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자의 불륜 여부를 10초 만에 알려 드립니다.”
이른바 ‘불륜시약’ 판매 사이트에 나오는 광고 문구입니다. 배우자의 속옷만으로 검사할 수 있으며 결과를 100% 보장한다는 놀라운 내용. 광고지에선 ‘마음의 안정을 가져온다.’, ‘의처증이나 의부증에서 해방될 수 있다’ 등 소비자를 유혹하는 말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불륜시약’을 팔고 있는 건 경찰이 파악한 업체만 전국에 9곳. 대부분 비슷한 형태로 영업하고 있습니다. 약을 뿌려서 빨간색이나 보라색이 나타나면 외도가 확실하단 겁니다.
과연 그런 약이 존재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남성의 체액을 단번에 검출해내는 시약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시중에 유통되는 ‘불륜시약’의 정체는 뭘까요? 국과수 감정결과 해당 시약에서는 페놀레드(phenol red)와 에틸알코올이 검출됐습니다. 페놀레드는 물질의 산성과 염기성을 구분해내는 ‘산 염기 지시약’입니다. 수소이온농도(PH) 6.8 이하의 산성 물질에서는 노란색으로, PH 8.2 이상의 염기성 물질에서는 빨간색을 나타내는 시약이죠. 우리에게 익숙한 리트머스 종이의 액체 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쯤 되면 많은 분들이 시약의 정체를 눈치 챘을 겁니다. 말 그대로 염기성 물질에 뿌리면 언제든 빨갛게 변할 준비가 된 시약입니다. 단지 남성의 체액에만 반응하는 게 아니라 PH 8.2를 넘는 물질이라면 무엇이든 말이죠. 국과수 시험결과 이 시약은 생수, 두부, 우유, 계란 등에 뿌려도 적색으로 변했습니다. 속옷에 묻을 가능성이 농후한 소변, 비누 세제 등에도 예외 없이 반응을 보였습니다.
# 말뿐인 ‘100% 결과 보장’
‘100% 결과 보장’은 말뿐인 약속이다 보니 섣불리 시약의 효과를 믿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생깁니다. 제가 취재한 남성은 부인의 외도를 의심해 불륜시약을 사용했다가 이혼 위기를 겪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용한 시약의 색이 빨갛게 변한 게 발단이었습니다.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시약 판매업체 측에 사진을 보내 문의하자 “외도의 흔적이 분명하니 확실한 물증을 잡으라”는 답이 왔습니다. 결국, 남성은 당혹감과 배신감에 사로 잡혀 부인에게 과격한 행동과 폭언을 하고 말았습니다. 억울해하던 부인은 민간 유전자 연구소에 의뢰해 자신의 결백을 스스로 밝히기에 이르고, 두 사람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불륜시약은 한 사람의 가정과 인생을 파탄 낼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긍정적이지 않은 위력이죠. 업체 측에선 이에 대해 뭐라고 할까요? 인터넷 홈페이지에 가면 그들의 명쾌한 답을 만날 수 있습니다. 화면 구석에서 아주 작은 글씨로 말이죠.
“본 제품의 특성상 어떤 경우에 사용될지를 알기 때문에 사용 후 테스트 결과로 인해 일어나는 어떤 상황이나 경우도 법적 책임이 없음을 밝혀둡니다. 또한, OOO는 단지 테스트 수단일 뿐이고, 테스트 결과는 법적인 증거로 사용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혀둡니다. 본 제품의 구매는 위의 조건과 상황에 동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숨김없이, 의심없이_ 믿음의 시작
광고부터 의심스러운 데다가 알고 보면 더 허접스러운 불륜시약. 도대체 누가 구매할까 싶은데, 경찰에 적발된 업체 한 곳에서만 9백 명이 넘는 구매자 명단이 나왔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엔 상품에 대한 문의 글이 넘쳐납니다. 시약 반응을 구구절절 묘사하면서 불륜이 맞느냐고 확인하고, 배우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속옷을 세탁해 정리하고, 빼도 박도 못하는 물증을 찾는 사람들. 부부간 불신과 의심이 낳은 웃지 못할 현상입니다.
부인을 의심해 이혼 위기에 갔던 남성에게 조심스럽게 ‘왜 시약을 사용하게 됐는지’ 물었습니다. 외도를 의심할만한 정황이 있었느냐고 말이죠. 놀랍게도 그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주변에 제 친구들 중에 와이프가 바람나서 이혼한 친구도 있고 그런 걸 많이 겪다 보니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뒤이어 그는 자신의 경솔한 행동과 섣부른 판단을 후회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마 한번 무너진 믿음이 얼마나 회복하기 힘든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겁니다.
외도를 의심하는 사람도, 외도를 숨기는 사람도, 결국은 모두 부부지간입니다. 지난날 어느 시점엔가 ‘평생을 함께하겠노라고’ 약속한 관계. 세월의 흐름 속에 그 마음이 바뀔 순 있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숨김없이 의심 없이 서로를 대하는 건 인생의 동반자가 되리라 다짐했던 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