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26일 김승연(61) 한화그룹 회장의 횡령·배임 사건을 파기환송함에 따라 김 회장은 실형 확정을 일단 피하게 됐다.
대법원은 그러나 부실한 계열사를 살리기 위해 다른 계열사에 손해를 끼친 행위가 배임이라는 판단은 유지했다.
김 회장은 그동안 재판에서 결과적으로 성공한 구조조정이었고 계열사들의 실질적인 손해가 미미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이는 재판 내내 가장 큰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김 회장의 항변에 대해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은 부실계열사 지원은 보호받을 수 없다'는 기존 판례를 재확인했다.
항소심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철학자의 말로 김 회장 측 주장을 배척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대법원의 이날 판결이 향후 형량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 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3년으로 감형받아 집행유예를 받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을 채운 상태다.
◇"배임액수 계산 틀렸다" 파기환송 = 대법원은 크게 세 부분을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먼저 부실계열사인 한유통의 채무에 대한 지급보증과 관련해 채무 변제를 위한 재지급보증이 별도로 배임 행위를 구성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는 기존 지급보증의 만기도래로 재차 지급보증을 서면서 금융기관이 바뀌었을 뿐 손해가 추가로 발생한 것은 아니라는 김 회장 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재지급보증 과정에서 채권자가 달라진 만큼 피해 회사에게 새로운 손해를 발생시킬 위험을 초래했다며 유죄로 봤다.
대법원은 부동산 저가매각으로 인해 발생한 계열사의 손해도 다시 계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가 된 부동산의 적정 가격을 따진 감정평가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김 회장이 한화석유화학 소유의 시가 713억원짜리 여수시 소호동 부동산을 공시지가 수준으로 팔도록 지시해 272억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배임액 산정의 기준이 된 감정평가가 신설 회사인 아크런의 자산 재평가를 위해 이뤄져 실제보다 높게 산정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까지는 김 회장에게 유리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저가매각 이후 계열사를 인수·합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횡령이나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저가에 매각된 여수 땅의 소유주는 계열사인 웰롭에서 분할된 아크런을 거쳐 이 회사를 인수한 드림파마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드림파마는 여수 땅의 시가가 713억원이라는 전제로 아크런에 선수금 578억원을 지급했다.
저가매각을 배임으로 본다면 이미 손해액이 계산됐기 때문에 이후 인수·합병 과정에서 새로 손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감정평가가 부풀려졌고 이에 따라 저가매각으로 인한 배임 혐의를 무죄로 볼 경우 오히려 이후 부동산의 소유주가 바뀌는 과정에서 실제 가치보다 많은 돈이 오간 셈이어서 횡령이나 배임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기환송 후 집행유예' 시나리오 일단 성공 = 김 회장은 지난 4월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서울고법에서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파기환송심에서는 대법원의 취지에 따라 배임액을 다시 산정하고 일부 유무죄 판단이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형량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저가매각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더라도 이후 인수·합병 과정의 횡령·배임 혐의가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재지급보증으로 인한 배임액은 300억원 남짓이다.
1심은 3천24억원, 2심은 1천797억원의 배임을 인정했다.
대법원 양형기준은 배임·횡령액이 300억원 이상이면 같은 기준으로 형량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파기환송심에서 배임액이 크게 줄더라도 300억원 아래까지 내려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김 회장은 이날 파기환송으로 집행유예를 향한 실낱같은 희망을 계속 이어가게 됐다.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김 회장은 사비를 들여 1천186억원을 공탁한 끝에 항소심에서 징역 3년으로 감형받았다.
김 회장은 이에 따라 집행유예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갖췄다.
형법상 집행유예는 징역 또는 금고형이 3년 이상일 때 가능하다.
그러나 재벌 총수들에게 국가경제에 기여한 점 등을 근거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주로 내리던 과거 전형적인 판결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대법원은 횡령·배임 범죄에 대한 집행유예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양형기준을 벗어난 판결을 하는 경우 판결문에 이유를 적어야 한다.
김 회장은 전과가 있고 범행에 깊이 개입했다고 의심받는 점에서 불리하다.
'재벌 봐주기'에 비판적인 여론도 부담이다.
반면 상당한 금액을 공탁하며 피해 회복에 노력했고 개인의 치부를 위한 범행은 아닌 점 등의 참작 사유를 기대할 수 있다.
법원 관계자는 "양형기준이 권고사항이긴 하지만 준수율은 90%를 넘는다"며 "김 회장이 긍정적 참작사유를 얼마나 충족시키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