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밀보호법은 불륜 사건 단골 법?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외출하는 아내의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습니다. 물론 켜 둔 채로 말이죠. 아내는 집 앞에서 내연남과 밀회를 즐긴 뒤 돌아옵니다. 밀회는 2시간에 불과했지만, 아내의 가방엔 불륜을 증명할 증거가 녹음된 뒤였습니다. 남편은 이를 근거로 아내와 내연남을 불륜 혐의로 고소하고, 이혼했습니다. 하지만 몇 달 뒤 남편은 서울북부지법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 받습니다. 내연남과 아내의 고소가 있었던 거죠. 타인간의 공개되지 않은 대화를 녹음한 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은 겁니다.
40대 여성 김 모 씨도 비슷한 혐의로 같은 법원에서 같은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2004년 그녀는 한 인터넷 카페에 남편과 함께 가입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과 여성인 카페지기 사이에 불륜 낌새를 눈치 챘습니다. 남편의 주민번호와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 심부름센터를 찾은 그녀는, 남편이 가입한 이동전화 통신사 사이트의 접속 방법을 알게 해 달라고 의뢰합니다.
며칠 뒤 원하는 정보를 손에 넣은 김 씨는 사이트에 몰래 접속해, 남편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송수신 내역을 확인합니다. 거기엔 불륜 상대로 의심되는 카페지기와 주고받은 메시지들이 담겨 있었죠. 그녀는 이걸 출력해 남편이 근무하는 회사 사무실로 보냈습니다. 수신인은 남편의 직장동료였습니다.
그녀 역시 우편물의 검열과 전기통신의 감청, 누설을 금지한 통신비밀보호법을 어긴 혐의로 재판에 부쳐져, 징역형에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겁니다.
이처럼 불륜 사건에 단골로 등장하는 법이 통신비밀보호법입니다. 그런데 북부지법은 이 법을 인터넷 방송에 적용된 판결을 내놨습니다. 사건도 특수했지만, 법 적용 역시 이례적입니다. 판결은 통신비밀보호법의 본래 취지와 함께, 변화한 사회상 속에 법 적용은 어떠해야하는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허락 없이 남의 대화 방송” 인터넷 방송 처벌
택시기사인 42살 임모 씨는 2009년부터 택시에 웹캠과 무선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놓고, 인터넷 생방송을 해 왔습니다. 승객과의 고민 상담이 주된 내용이었는데, 꽤 인기를 끌었습니다. 2010년엔 가수 아이유가 이 택시 생방송에 출연했습니다. 그녀 자신은 폭발적 관심을. 택시기사는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지난해 12월 29일 새벽 3시 50분. 그날도 생방송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임 씨가 그 날의 승객 33살 박 모 씨와 그의 예비신부에게 방송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게 화근이었습니다. 임 씨는 직업과 결혼계획 등을 물었습니다. 그 때부터 이야기는 박 씨와 예비신부 사이에만 오가게 됩니다. 임 씨 입장에선 남의 대화를 듣는 상황이 된 거죠.
승객인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사생활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본인의 이름, 직업 그리고 서로의 버릇을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은 인터넷을 타고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박 씨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격분했습니다.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기사 임씨는 검찰에 의해 기소돼 재판을 받기에 이른 겁니다.
왜 죄가 된 걸까요. 임 씨는 방송 내용이 저장되지 않았고, 방송도 중간에 자주 끊겼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의 피해가 크지 않았다며 항변했습니다. 무죄를 주장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방송을 목적으로 대화를 유도해 대화 비밀을 침해한 게 인정된다는 거였습니다.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를 공개한 걸 죄로 규정한 통비법을 적용한 겁니다. 임 씨는 항소한 상태입니다.
그럼 임 씨가 공개한 대화가 이들과 함께 나눈 대화라면 사정은 달라질까요? 통비법은 이 경우엔 처벌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남의 대화’의 녹음 또는 공개 여부이기 때문이죠. 당사자로 참여한 대화를 공개하는 건 통신비밀보호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대화 비밀’이 아닌 겁니다. 단, 생방송 등 공개 사실을 알리지 않은 상태였다면, 이 경우라도 민사상 배상 책임 등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남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거나 공개 또는 누설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적법한 절차 즉, 법원의 영장이 있는 경우에만 이를 허용합니다. 재판부가 죄가 있다고 결정하면 벌금형조차 못 내리도록 돼 있습니다. 반드시 10년 이하 징역과 5년 이하 자격정지를 동시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사생활 보호와 책임의 원칙
처벌이 이렇게 강력한 건 통신비밀보호법에 국민의 사생활을 강력히 보호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제정 당시엔 국가기관의 사생활 침해를 막는 게 주목적이었습니다. 과거엔 대화를 도청 또는 감청할 능력이 있는 기관은 사실상 국가기관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전 국민이 스마트폰처럼 고성능 녹음과 무선통신 장비를 보유한 지금, 법 적용 건수는 늘 수밖에 없습니다. 시민에 대한 시민의 사생활 침해를 처벌하는 법이된 거죠. 부부라고 해도 배우자의 외도를 의심해, 타인과 배우자가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들을 권리는 없다는 겁니다. 그 타인이 불륜상대라고 해도 말이죠.
이런 맥락을 알고 나면 택시기사에 대한 유죄 판결이 적법한 이유가 수긍됩니다. 그럼에도 징역형 선고는 지나친 게 아닐까요. 재경 지법의 단독 판사는 “처벌 규정이 과하다는 지적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책임의 원칙’에 위배되는 면이 있다는 겁니다. “죄를 저지른 만큼 벌을 주는 게 책임의 원칙인데, 한 차례 사생활 침해에 무조건 징역형을 선고하는 게 지나치다는 시각도 있다”라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5년 이하 자격정지도 필수여서, 형이 확정되면 공무담임권 제약까지 감내해야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불륜 관련사건 등 통신비밀보호법 판결문 주문은 대체로 비슷습니다. ‘피고인을 징역 6월 및 자격정지 1년에 처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2년간 징역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책임의 원칙’에 비춰볼 때, 처벌이 과하다는 생각 때문에, 실제 법정에선 선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겁니다.
공익과 알 권리를 위한 공개라면?
통신비밀보호법은 또 다른 측면에서 뜨거운 감자입니다. 공익과 언론 자유에 속하는 행위마저 이 법으로 처벌하는 건 지나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법 개정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 논란은 제가 중언하는 것보다 이런 논지를 펴는 전문가의 논설로 갈음하고자 합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지난 6월 PD저널에 기고한 글입니다.
[시론] 통신비밀보호법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 최진봉
지난 2월 ‘안기부 X파일’ 사건과 관련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집행유예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전 의원과 정수장학회 비밀회동 내용을 보도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된 한겨레신문 최성진 기자 사건으로 통신비밀보호법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통신 및 대화비밀의 보호를 위해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래 통신비밀보호법은 국가권력이 개인의 사생활이나 사회단체의 활동을 함부로 도청하거나 감시하는 것을 방지하여 개인의 사생활을 보장할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그런데 최근 통신비밀보호법이 원래 만들어진 이러한 취지와 다르게 사회 권력기관들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책무를 가진 언론의 취재와 감시활동을 방해하는 족쇄로 악용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사회 권력기관이나 인사들의 비리나 불법행위를 감시해야 하는 언론인들은 불가피하게 잠입취재나 타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인터뷰 내용을 녹음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이러한 언론인들의 취재활동을 사생활 보호라는 명분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만약 개인의 사생활 보호 이익과 정부기관이나 공직자의 비리를 밝혀내기 위해 언론인들에게 보장된 취재와 표현의 자유를 통한 공익적 이익이 서로 충돌하면 어떤 이익을 보호되어야 할까? 당연히 공익적 이익이 보호되어야 한다. 특히 사생활 보호의 대상이 비리와 부정을 저질렀거나 이와 연루된 공직자나 사회 지도층 인사일 경우에는 반드시 언론의 취재와 표현의 자유가 먼저 보호되어야 한다.
즉, 언론인이 공직자나 사회 지도층 인사의 비리를 취재할 목적으로 타인의 대화를 녹음해서 기사작성에 사용한 경우, 언론인의 녹음행위가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배되더라도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공익을 위한 행위였다면 처벌을 면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는 공익적인 목적을 위한 언론인들의 취재활동에 대한 위법성 조각의 사유를 따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 통신비밀보호법이 언론인들을 처벌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
위법성 조각의 사유란 법률적으로 위법이 되는 행위라도 특별한 예외적 사정이 있는 경우 그 행위의 위법성을 면책하는 사유를 일컫는 것으로 다른 법률에서는 진실성과 공익성을 위법성조각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안기부 X파일’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서도 ‘안기부 X파일’ 사건 관련 기자들이나 정치인이 실정법을 어긴 측면은 있지만, 충분히 면책받을 만한 여지가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불법 감청·도청된 내용을 공개한 것이라 하더라도 중대한 공익을 위한 것이고, 나아가 대화 내용의 공개로 침해되는 사익에 비해 달성되는 공익이 더 크다면 위법성이 없어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언론인들이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와 견제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법성 조각의 사유를 명문화해야 한다. 통신비밀과 대화의 비밀은 공공의 이익과 국민의 알 권리 요청이 더 큰 경우엔 제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화자가 공인이고 공개할 내용이 진실일 때, 그리고 대화내용의 공개가 공익을 위할 때는 위법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범죄수사와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통신에 대한 제한조치가 허용된다는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그러나 언론이 권력기관의 비리와 부패를 감시하고 밝혀내기 위해 감청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권력의 감청은 최소화되어야 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부여받아 공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언론의 공익적 목적을 위한 권력기관 감시활동은 최대한 허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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