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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불법 조업' 中 어선 본거지 스다오항 르포…어항이야 군항이야?

우상욱 논설위원

입력 : 2013.09.09 16:52


중국 지도에서 산둥 반도를 찾아보면 이런 생각부터 듭니다. '우리나라와 진짜 가깝네.' 중국대륙에서 우리나라 쪽으로 불쑥 솟아나와 있는 산둥 반도의 꼭지점 부근에 스다오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인천항까지 208해리, 군산항까지는 느린 화물선으로도 12시간이면 도착합니다.

이렇게 한반도와 가깝기 때문에 신라시대 당시 돛단배로도 쉽게 오갈 수 있었나봅니다. 스다오항이 있는 롱청시에는 법화원이라는 정사가 있습니다. 부처를 모신 절이 아니라 중국 바다의 신인 명신(明神)을 모시는 일종의 사당입니다. 이곳에 높이가 8미터에 이르는 장보고 동상이 우뚝 서 있습니다. 법화원 자리는 옛 신라인들이 당나라에서 모여살던 요즘 말로 코리아타운이었다고 합니다. 장보고가 당나라에서 장군으로 활약하면서 신라인들의 집단 거주지를 이 자리에 건설했습니다. 이후 해상왕으로 동아시아 해상 무역권을 장악한 장보고는 스다오항을 중국 무역의 전초기지로 삼았습니다. 그만큼 우리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곳입니다.

스다오항의 첫 인상이자, 가장 강렬한 느낌은 바다 내음입니다. 좋게 말해서 바다 냄새고 나쁘게 말하면 심한 비린내입니다. 온 도시에 가득했습니다. 이 곳이 중국 북방 지역의 3대 어항(漁港)임을 후각만으로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당연히 해산물이 넘쳐납니다. 사실 중국에서 해산물 요리는 대부분 비싼 고급 요리 축에 속합니다. 그런데 스다오항의 상당수 식당들은 해산물 요리만 팔다시피 합니다. 그것도 아주 싸게요. 또 스다오항에서는 한글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공항에서부터 한글이 쓰여 있습니다. 시내 곳곳에서도 한글을 병기한 간판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한국과 인연이 많은 도시입니다.

스다오항에서 보낸 1박2일의 출장 기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어선들이 모인 항포구에서 보냈습니다. 아름다운 바위산이 굽어보는 말굽 모양의 항구에는 족히 1천 척이 넘는 어선들이 정박하고 있었습니다. 상당수의 배가 금어기가 끝난 이달 1일 이미 출항을 했다는데도 이렇게 배가 많다니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첫날 영상취재 기자와 함께 항구를 두 차례 오가면서 많은 어부들에게 말을 걸어보았습니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소개하면 대부분 한 마디도 안하고 자리를 피했습니다. 인터뷰를 하자는 말조차 꺼내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다 한 두명 말 상대를 해주는 어부나 선주들은 한결같이 '이제는 한국 해경의 단속이 심해서 한국쪽 해역으로 가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남중국해에 가서 조업활동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첫날 유일하게 건진 유의미한 정보는 지금 막 항구로 돌아온 한 어선의 어부에게서 나왔습니다. 여러 척의 어선이 배 한가득 물고기를 실고 와 기중기까지 동원해 부두에 부려놓고 있었습니다. 바쁘게 손을 놀리는 한 50대 어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와! 물고기 참 많네요. 어디 가서 잡아왔나요?" "남한이요." 저희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한번 더 강조했습니다. "(남)조선 바다요." 순간 의아했습니다. 금어기가 풀린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한국 바다에서 조업을 해서 돌아올 수 있나? "언제 출항했는데요?" "보름 전에요." 그렇다면 적어도 지난 달 21일 무렵 출항한 것이니까 금어기를 어긴 셈입니다. "금어기였는데 괜찮았나요?" 그 어부가 바로 얼굴을 굳히더니 다른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첫날 취재는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산둥반도_500둘쨋날 새벽부터 다시 항구에 나갔습니다. 전날 오후보다 훨씬 많은 어민들이 나와 출항준비를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항구를 세 차례나 오가면서 전날 보지 못했던 이상한 광경을 많이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출항을 앞둔 배들에는 각종 어망이나 어항, 밧줄, 쇠닻 등이 발디딜 틈이 없이 가득 실려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많아 보였습니다. 주황색과 홍색 기를 죽창에 매단 부표들도 유별나게 많이 준비했습니다. 가장 눈길을 잡아끈 것은 쇠스랑이었습니다. 대형 물고기를 찍어서 옮기는 도구인데요, 10개씩 묶은 쇠스랑 묶음을 서너 뭉치씩이나 실었습니다. 거의 어부 한 명당 하나 꼴로 준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게다가 꼬챙이 부분을 땅에 갈아 날카롭게 벼렸습니다. 항구 가장 으슥한 부두에서는 갑판 난간에 철을 덧대 높이는 작업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출항준비를 하는 어부들에게 이런 도구의 용도를 물었습니다. 물론 각종 어로 활동에 쓰인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얼마나 오래 바다에 나가 있을지 모르고 분실할 위험도 많기 때문에 평소보다 풍성하게 준비해 간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한가해보이는 어민이나 선주에게 담배를 권하며 차근차근 속내를 물어보자 전혀 다른 얘기가 나왔습니다. "한국으로 출항할 때는 일종의 방어 무기가 필요합니다. 한국 해경들이 배에 올라오지 못하도록 배에 있는 각종 철제 도구들을 던져대죠. 긴 죽창을 휘둘러 접근을 막기도 합니다. 총은 불법이니까 준비할 수 없지만 몽둥이와 칼, 쇠스랑 등은 사용할 수 있죠."

왜 그렇게 격렬하게 저항을 하는지 물었습니다. "한국 해경이 최근 강하게 단속하니까 우리들도 강하게 저항할 수 밖에요. 한 번 끌려가면 거액의 벌금을 내야 하고 중국 와서 다시 처벌을 받고 손해가 적지 않습니다. 순순히 끌려간다고 벌금을 깎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끌려갈 때 가더라도 한 번 거세게 저항을 해보는 것이죠."

그렇게까지 위험을 무릅쓰면서 한국 해역에서 조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중국 바다에는 고기의 씨가 말랐어요. 아무리 그물질을 해도 조그만 물고기들 외에는 잡히지 않아요. 하지만 한국 바다로 가면 돈 되는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죠. 그러니까 어떻게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가는 어선들은 한 척당 5만 위안(우리 돈 약 9백만원)씩 돈을 내서 일종의 기금을 만들어요. 한국 해경에 나포되는 배가 생기면 그 돈으로 손해를 메워주죠. 곤란을 당할 때에 대비한 보험에 드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한국 바다로 가서 조업을 하는 것이 무조건 이익이에요."

하지만 촬영에 대해서는 대단히 날선 반응을 보였습니다. "누구에게 허락을 받고 마음대로 찍는거야?"라는 고함에 "찍으면 안되는 건가요? 몰랐습니다. 미안합니다"라며 뒷걸음질로 도망치기가 여러 번이었습니다. 해상보안관이 취재팀의 대형 카메라를 보고 "뭐하러 항구에 왔냐"고 추궁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중국 어민들의 신경도 날카로워져 있었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스다오항을 떠나면서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싱싱한 생선과 해산물이 부두에 부려지고, 이를 안주로 즉석에서 대포가 오가며, 현지의 아낙들이 관광객들에게 신선한 해산물을 사라고 권하는 우리 어항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분명 어항을 다녀왔는데 무슨 군항을 취재한 느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