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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MS는 왜 전화기 사업에 뛰어들었나?

김영아 기자

입력 : 2013.09.06 09:56|수정 : 2013.09.07 23:04


지난 3일 전 세계 IT업계의 공룡인 마이크로소프트(MS)가 핀란드 노키아사의 휴대전화 사업부문을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노키아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십여 년 동안 세계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했던 단말기 업체입니다. 하지만 애플의 아이폰 등장 이후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급격히 넘어간 시장 변화에 뒤처지면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시장 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졌고 최근 몇 년 동안 적자에 허덕여 왔습니다.

MS의 노키아 인수 소식이 나오자 다양한 반응과 해석, 분석이 뒤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또 하나의 하드웨어 업체가 소프트웨어 업체에 넘어갔다"는 반응입니다. 지난 십수 년 간 귀에 못이 박도록 듣던 얘기, "이제 하드웨어 시대는 끝났다.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는 '진리'를 재확인해 준 사건이라는 거죠. 정말 그럴까요?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정말 하드웨어의 시대가 끝났고 이제는 소프트웨어의 시대라면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인 MS가 대체 왜, 무엇이 아쉬워서 하드웨어 회사를 사들인 걸까요? 72억 달러, 우리 돈 7조8천9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들여서, 잘 나가는 회사도 아닌 이미 망해가고 있는 회사를 말입니다. 제 생각엔 최근 몇 년 사이 IT 시장의 중심이 모바일로 완전히 옮겨간 변화 속에 해답의 열쇠가 있습니다.

애플_500지난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세계 IT업계의 중심은 모바일로 급격히 이동했습니다. 스마트폰의 탄생이 '혁신'적인 건, 제품 자체로서의 가치 때문이기도 하지만, 컴퓨터에 모바일 기술을 결합하는 게 얼마나 유용한지, 그런 제품들이 얼마나 상품성이 있는지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모바일 기술을 바탕으로 '미래형 모바일 기기'라는 새 시장이 열린 거죠.

최근 몇 년 사이 각종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웨어러블 컴퓨터(wearable computer)'라는 말,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말 그대로 몸에 걸치고 다니면서 편하게 쓸 수 있는 컴퓨터를 말합니다. 지난해 구글이 내놓은 '구글글래스'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손목에 차고 다니는 '스마트워치'도 있습니다. 구글, 애플, 소니, 삼성전자 등 여러 업체가 앞다퉈 개발 중입니다. 특히 삼성전자의 스마트워치인 '갤럭시 기어'의 경우 오는 25일 일반인을 대상으로 시장에 나올 예정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웨어러블'을 넘어 아예 '컴퓨터 웨어'가 나올 날도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온도 감지 센서와 발한 기능, 발열 기능, 투습 기능, 건조 기능 같은 게 들어있어서 입기만 하면 날씨 변화에 상관없이 쾌적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 주는 '스마트 셔츠'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 거 입고 운동하면 얼마나 편할까요? 생각만 해도 기대가 됩니다.

이런 미래형 모바일 기기들 사이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물건, '하드웨어'라는 사실입니다. MS가 윈도우즈와 익스플로러, 오피스를 앞세워 전 세계 IT 업계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지난 1~20년은 분명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의 존재는 하드웨어의 존재를 전제로 할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IBM이 PC라는 물건을 만들지 않았다면 윈도우즈든 오피스든 MS의 성공을 이끌었던 소프트웨어들은 탄생할 이유조차 없었을 거라는 거죠. 바로 여기에 MS의 고민이 있습니다.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MS는 '윈도우즈폰'이라는 스마트폰용 모바일 운영체제를 내놨습니다. 운영체제(OS)는 컴퓨터의 윈도우즈처럼, 스마트폰이라는 '기계 덩어리'가 똘똘한 물건으로 변신할 수 있도록 각종 기능을 '실행'시켜 주는 소프트웨어입니다.

아이폰은 애플이 자체 제작한 iOS라는 OS를 사용하는데 애플사는 이 소프트웨어를 다른 회사에 팔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대부분 구글이 개발한 '안드로이드'라는 OS를 장착시켰습니다. 아이폰과 대비되는 '안드로이드폰'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오는 거죠. 여기에 대항하기 위해서 MS가 내놓은 것이 모바일용 OS '윈도우즈폰'입니다.

세계 PC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윈도우즈'라는 이름을 그대로 쓴 것에서 드러나듯 '모바일 컴퓨터'라는 새 시장에 대한 MS의 자신감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지난 7일 시장조사업체 IDS가 내놓은 올 2분기 세계 스마트폰 운영체제 점유율을 보면 안드로이드가 79.3%, iOS가 13.2%로 구글과 애플이 양분하고 있습니다. MS의 윈도우즈 OS는 점유율이 고작 3.6%였습니다. 천하의 MS 입장에선 참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안드로이드숫자만 보면 안드로이드가 주도하고 있지만, 이 숫자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OS를 쓰는 모든 회사 제품을 다 합친 통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단말기 시장에서 아이폰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이폰이 이렇게 성공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죠. 우선 스마트폰이라는 걸 처음 세상에 내놓은 선두주자였다는 게 중요한 이유일 겁니다. 시장을 만든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시장을 선점하는 기득권 말입니다. 그런데 애플이 선두주자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엔 애플이 성공한 또 하나 아주 중요한, 어쩌면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애플이 단말기와 OS를 모두 만드는 회사라는 점입니다.

현재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스마트폰 가운데 한 회사가 단말기와 OS를 모두 만든 제품은 아이폰이 유일합니다. 한 회사가 기계와 운영체제를 모두 만들 경우 자신들의 원하는 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에 최적화된 단말기를 만들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습니다. 거꾸로, 자신들이 만든 단말기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반면 단말기는 이 회사가, 운영체제는 저 회사가 만드는 경우 아무래도 이런 시너지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죠.

사실, MS의 모바일 OS인 윈도우즈가 그동안 실패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똘똘한 단말기 회사를 파트너로 잡지 못했던 탓도 없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삼성전자나 LG전자 등을 비롯해서 애플과 겨룰만한 경쟁사들이 모두 구글과 손을 잡았습니다. MS의 OS를 쓰는 회사는 노키아가 유일하다시피 했습니다. 물론, 단말기 회사들 입장에서는 안드로이드가 더 경쟁력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구글을 선택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MS로서는 어쨌든 더 경쟁력 있는 파트너를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적잖이 있었을 법한 일이죠.

그러다 보니 "직접 단말기를 만들면 윈도우즈 OS의 기능에 최적화된 단말기를 만들어서 윈도우즈의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구글에 뺏긴 단말기 회사들을 뺏어올 수 있을 테니 윈도우즈 OS를 사용하는 단말기 업체들도 더 늘어날 거고요.

그뿐이 아닙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이런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장점에 더불어 MS가 정말 노린 건 급속히 확대되는 모바일 시장 전체를 겨냥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일 겁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전화기를 시작으로 향후 모바일 기술을 이용한 하드웨어 시장 전반으로 뛰어들기 위한 포석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입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만들면서 얻을 수 있는 근본적인 장점은 소프트웨어 시장의 전제가 되는 '기기' 시장을 직접 주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컴퓨터를 전화기에 넣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은 단말기 업체나 소프트웨어 업체나 모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각을 여러 회사가 했을 경우, 실제 그 제품을 발 빠르게 만들어 내기 위해선 단말기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만드는 회사가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훨씬 유리할 수 있겠죠.

그나마 하드웨어 업체들은 후발주자로라도 기기 시장에 뛰어들면 되지만,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다릅니다.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새로운 '기기'의 출현을 남보다 빨리 예견한다고 해도, 심지어 미리 필요한 소프트웨어까지 다 만들어 놓는다고 해도, 누군가 그 기기를 만들어 주지 않는한 팔 곳이 없습니다. 적어도 시장의 초기 단계에선 소프트웨어 산업은 하드웨어 산업에 철저히 종속돼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MS의 노키아 인수는 모바일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기기 시장이 우후죽순으로 활짝 열리기 시작하는 변화와 혁신의 시점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절박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MS뿐 아닙니다. 역시 '소프트웨어 기업'인 구글은 MS보다 앞서 똑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똘똘한 파트너를 만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잘 팔고 있으면서도 휴대전화 업체 모토로라를 인수했죠. 조만간 직접 단말기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구글은 지난해에 이미 스마트 안경을 내놓았고 스마트 시계도 만들고 있습니다. 모두 '하드웨어'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하드웨어 기업인 삼성전자는 벌써 여러 해 전부터 독자적인 스마트폰 운영체제 개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예전에 내놓았던 '바다'도 있었고, 요즘은 인텔과 손잡고 리눅스 기반의 모바일 운영체제인 '타이즌'을 개발 중입니다. 구글이 그런 것처럼 삼성도 여차하면 언제든 구글과 결별하고 홀로 설 날을 준비하고 있는 거죠.

결국  MS의 노키아 인수는 단순한 기업 차원이 아니라, 2013년 9월 현재 전 세계 IT 업계 현주소와 트렌드를 그대로 드러내 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삼성전자든 MS든 구글이든 변신을 위해 벌이고 있는 몸부림의 배경은 똑같습니다.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하나만 해서는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판단입니다. 이제, 꽤 오랫동안 '진리'처럼 여겨졌던 "중요한 건 소프트웨어다"라는 말이 더는 진리가 아닌 시대가 온 거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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