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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프랑스 동네 책방은 아직 죽지 않았다"

서경채 기자

입력 : 2013.09.02 17:24|수정 : 2013.11.29 19:56


우리나라는 동네책방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살리자는 목소리는 있지만 살아났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대형서점에다 인터넷 서점까지 밀고 들어와 버티기가 쉽지 않습니다. 프랑스도 동네책방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같은 이슈를 놓고 프랑스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취재했습니다.
  
파리 몽파르나스역 주변의 한 서점. 겉모습은 우리네 책방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네 책방과 다른 점을 찾아냈습니다. 서점 주인이나 판매원들이 손님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수다를 떠나 싶었는데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상담이었습니다. 어떤 손님은 선물하려고 하는데 적당한 책을 골라 달라고 하고, 또 다른 손님은 특정 작가의 책을 얘기하며 내용이 어떠냐고 묻는 겁니다. 판매원은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를 기반으로 손님에게 더 좋은 책, 더 적당한 책을 골라줬습니다. 서점에서 만난 한 손님은 “대형서점에서는 판매원이 책의 위치만 알려줄 뿐 조언을 얻을 수 없는데 동네책방에는 조언자가 있어 좋다”는 말했습니다. 또 대형서점에는 유명작가의 신작만 쌓아 놓고 있는데, 동네서점에는 그 작가의 오래된 책도 볼 수 있어 좋다고도 했습니다. 인간적인 만남이 가능한 곳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에서 동네책방은 작은 출판사를 지원하기 때문에 무명 작가에게도 힘이 된다고 합니다. 중소서점이 중소 출판사를 후원해 새롭고 특색 있는 책을 출판하도록 돕는다는 겁니다. 후원을 받은 작가는 동네책방을 찾아와 독자와의 만남을 갖기도 합니다. 독서모임이나 문화 이벤트가 열리기도 합니다. 사랑방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동네책방이 명맥을 유지해오기까지는 프랑스 정부의 역할도 컸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1981년 당시 문화부장관이었던 자크 랑이 도서 가격 정찰제라는 법률을 만들었습니다. 대형 서점이 마음대로 책값을 인하해 동네책방을 위협하는 걸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이 조치에 따라 프랑스에서는 누구도 책값의 5% 이상을 할인해 판매할 수 없습니다. 2년 전에는 전자책에도 같은 법규를 적용해 오고 있습니다. 인쇄본이나 전자책이나 무분별한 할인 판매를 못하게 한 겁니다.
  
또 우수 서점 인증제도를 도입해 서점을 지원해 왔습니다. 지역에서 중요한 문화 거점 역할을 하고 판매원의 서비스 질이 높고 적정한 재고를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이런 조건을 충족한 서점에 대해서는 세금 감면이나 무이자 대출 등을 해 왔습니다.
  
프랑스 동네 책방

그럼에도 시대의 흐름에 밀려 동네책방은 생존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대형서점에 밀리고 이번에 인터넷을 통한 서적 판매(인터넷 서점)에 치이고 있습니다. 특히 아마존을 비롯한 인터넷 서점은 무섭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서적 판매 경로 가운데 인터넷 서점만 2006년 이후 계속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동네책방은 4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지속된 경제위기까지 겹쳐 파리에서만 서점 2백여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동네책방의 위기감이 커지자 프랑스 정부는 추가 지원책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펀드를 조성해 현금 흐름에 문제가 있는 서점에 대출을 해주고, 주인이 바뀌더라도 서점은 그 자리에서 계속 영업을 할 수 있게 새 주인에게도 재정 지원을 해 준다는 내용입니다. 어떻게든 서점은 살아 남도록 하겠다는 취지입니다.
동네책방 주인들도 생존을 위해 힘을 합치고 있습니다. 파리의 일부 서점 주인들은 정보 공유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손님이 찾는 책이 자기 서점에 없으면 사이트를 검색해 재고가 있는 서점으로 안내해 주는 겁니다. 자기 손님을 빼앗기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인터넷 서점의 대표주자인 아마존과 맞서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설명입니다. 인터넷에서 주문하고 며칠만 기다리면 책을 가져다 주는 편리함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서점이 먼저 서비스의 질을 더 높여야 한다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포함해 다른 나라들이 세계화, 정보화의 흐름을 받아들이며 동네책방을 ‘옛 것’ 취급할 때 프랑스는 ‘살아 남아야 할 것’으로 대접합니다. 프랑스인들에게 서점은 그 흔한 빵집과 마찬가지로 ‘동네에서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서점을 책이란 물건을 사고 파는 가게로 정의할 때, 프랑스인들은 책방을 문화가 있고 소통이 있어서 사람 사이에 관계가 살아 있는 공간으로 여겨왔습니다. 그들이 동네책방의 위기 속에서도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이유입니다. 그들의 바람대로 동네책방이 생존할지, 시대의 흐름에 밀려 주저 앉을지 아직은 예측하기 힘듭니다. 다만, '이미 죽은 것’을 ‘전통’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아직 살아 있는 것’을 ‘옛 것’ 취급하지 않고 생기를 불어 넣으려는 노력이 오늘날 프랑스를 문화 강국으로 만든 요소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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