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논란 끝에 한국사가 대입 수능 필수과목이 됐습니다. 현재 중학교 3학년생이 대학생이 되는 오는 2017학년도부터입니다. 지난 1993학년도 학력고사 이후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4년 만에 독립된 필수과목으로 되살아난 겁니다. 때마침 보수 성향 학자들이 집필자로 참여한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국편)의 검정심의를 최종 통과했습니다. 진보진영에서는 이 교과서가 역사적 사실 관계를 왜곡했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 내년 3월 일선 고교의 교과서 채택을 앞두고 '역사 교과서 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출신인 민주당의 유기홍 의원은 개인 성명을 통해 "교학사의 교과서가 5·16 쿠데타를 미화한 반면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했다"며 "고등학생들이 이 역사교과서를 배우도록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의원은 이밖에도 한국 현대사의 여러 사례를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이 교과서가 이승만-박정희 등 보수 세력의 긍정적인 측면은 부각시킨 반면 김대중-노무현 등 진보 세력의 업적은 축소시켰다는 겁니다. 우리 국민들은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에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측에서 "역사교과서가 왜곡됐다"며 강력히 반발한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피장파장인 셈입니다.
<한국문학통사>라는 명저를 쓴 국문학자 조동일 교수는 국사의 이런 단면을 꼬집어 "국사가 학문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을 오래전에 던졌습니다. 조교수의 주장은 학문은 보편타당한 법칙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1+1=2라는 수학적 진리와 '질량 보존의 법칙'은 나라마다 똑같습니다. 조교수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면 진짜 학문 같은 학문은 수학, 과학 등 이른바 자연 과학입니다. 그 다음이 사회 과학입니다. 사회 과학은 '관점'은 다양하지만 '사실'(Fact)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습니다. 국사는 '관점'은 말할 것도 없고 '팩트'에 대해서도 통일성을 갖기 힘듭니다. '한사군 설치'를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의 설명이 다르고, '임나일본부설'에 대해서는 한국과 일본의 말이 다릅니다.
같은 한국사를 놓고도 남북한 교과서가 서로 다르게 기술돼 있습니다. 북한 교과서는 신라의 삼국통일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고려가 최초의 통일국가라고 주장합니다. 대한민국 내에서도 시대마다 역사 서술이 달라집니다. 제가 국사를 배우던 1980년대 초반에는 분명히 교과서에 '통일신라와 발해'라고 했는데 이게 어느새 '남북국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시대와 이명박-박근혜 시대는 10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10년에 한번씩 교과서가 바뀐다면 그게 과연 학문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더욱이 대입 수능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수능 필수과목으로 선정되면 전국의 고등학생은 교과서를 '달달' 외울 게 뻔합니다. 이토록 중요한 교과서를 둘러싸고 논쟁과 시비가 그치치 않을 경우 필수과목 선정의 정당성마저 의심받게 될 것입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한국사의 수능 필수과목 도입을 찬성합니다. 국사는 다른 어떤 과목보다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20대 청년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한국사에 대한 그들의 무지에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
TV 사극이나 소설, 뮤지컬 등에 나오는 가공된 이야기와 역사적 사실을 혼동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 들어 명성황후는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것과 달리 이루 말할 수 없는 엄청난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또 일본 낭인들에 시해될 때 "나는 조선의 국모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경복궁내 옥호루에서 가슴을 세 차례 짓밟히고 여러차례 찔려 살해됐다는 게 유일한 외국인 목격자인 러시아 건축기사 세르진 사바틴의 증언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자라나는 어린 학생들에게 올바른 국사 교육은 필수적입니다. 다만 보수-진보 누구나 공감하는 표준 교과서를 만드는 것이 시급합니다. 서로 내용이 다른 교과서를 배운 학생들이 있는 현실에서 수능 문제를 어떻게 출제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논란이 많은 현대사를 빼놓고 출제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교육부와 역사학계가 서로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