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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칼럼] 국치일과 '거대한 뿌리'

김강석 기자

입력 : 2013.08.29 10:10|수정 : 2013.08.29 10:33


고등학교 시절 우연찮게 김수영의 시 ‘거대한 뿌리’를 읽고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민음사에서 나온 시인총서 시집을 통해서였다. 우선은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0이다.통일도 중립도 00이다....아이스크림은 미국놈 000이나 빨아라” 같이 지금도 입에 담을 수 없는 육두문자를 시에다 맘껏 내깔겨 놓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박목월을 비롯한 청록파 시인의 시 등에 익숙해져 있던 고교생으로서는 수영의 자유롭다 못해 호기 방탕한 시적 서술 혹은 기교에 그만 넋을 잃은 것이다.

사실은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를 껴안고 민족주의적 비전을 노래한 그의 은유가 훨씬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당시 고교생 주제에 뭘 알았겠는가? 어떻든 그 전에 정현종, 황동규 같은 시인들의 시를 접하긴 했지만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는 이런 시들을 뛰어넘는 일종의 전율이었다.

시인 김수영세월은 많이 흘렀다. 그런데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가 갑자기 생각났다. 우리의 뿌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시대와 세상 탓일까? 일본 총리 아베의 집단자위권을 빙자한 재무장 추진 등 일련의 망동, 일제 군국주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일본 정치인들과 극우파들의 막가파식 작태. 이런 것들이 일제 식민지, 식민지 근성, 한국인의 정체성으로까지 연상의 상승작용을 일으켜 급기야 ‘거대한 뿌리’로 귀결된 것 같기도 하다. 더욱이 8월29일은 한국이 일제에 강제 합병된 국치일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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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女史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一八九三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英國王立地學協會會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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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統은 아무리 더러운 傳統이라도 좋다 나는 光化門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寅煥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埋立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女史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歷史는 아무리
더러운 歷史라도 좋다      
                             - 김수영, ‘거대한 뿌리’ 중에서

살아오면서 누구나 한 번 쯤 정체성 문제로 깊은 고민에 빠져 본 적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과 관련된 개인적 정체성은 늘 따라 다니는 존재론적 질문 같은 것이지만 민족적 정체성, 국가적 정체성에 이르면 생각은 복잡 미묘해진다. 그동안은 우리나라와 자신의 피가 섞인 민족에 대해서는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다가도 종국엔 부정적인 쪽으로 결론 내린 경우가 더 많았을 것이다. 우리는 왜 이렇지? 약삭빠르고, 비굴하고, 게으르고, 남 헐뜯는데 일가견이 있고, 잘난 체 하고, 성급하고, 늘 사사오분되고, 지저분하고...등등 온갖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리며 자조하고 심한 경우는 자학해 온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이런 것들이 일제가 식민 통치 기간 내내 대내외적으로 전파하고 주입시켜 온 한국인의 부정적인 속성 혹은 왜곡된 정체성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 오며 얻게 된 경험적 소산일 수도 있지만 김수영은 일찌감치 이를 껴안고 넘어서려 했다. 남북이 대결하고 민주주의가 유린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안돼‘라며 절망할 때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며 유작 시 풀잎에서는 ’동풍에 누웠다 다시 일어나는 풀잎‘처럼 민중의 저력과 비전을 노래했다.

또 세월은 흘러 2013년 대한민국은 소득 양극화, 장기 불황 등 여러 우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만 외형적으로는 세계 10대 경제 대국, 무역 강국에 스포츠 선진국 대열에 서있다. 불과 50-60년 전 에티오피아나 캄보디아보다 가난했던 나라가 ‘개천에서 용’이 된 것이다.

소설가 이 숲(본명 박수영)은 이것이 결코 우연히 이뤄지거나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는 스웨덴 웁살라 대학에서의 연구 결과를 종합한 최근 저서 『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에서 구한말 일제초기 한국을 찾았던 많은 유럽인들은 당시 문헌을 통해 “한국인들은 총명하며 활달한데다 아이디어가 넘쳤다”며 한국인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소개되지 않은 100년 전 유럽의 상당수 한국 관련 자료에서 한국인은 대체로 능력이 뛰어나며 일본인보다 더 매력적인 민족으로 묘사됐다는 사실은 이미 한국인이 그 당시부터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 만한 잠재력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라고 이 숲은 해석했다.

뒤집어 생각하면 한국인의 장점도 무수히 많지 않은가? 사람은 누구나 양면성이 있고 지금 생각하면 다면성이라 할 만큼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 얼굴이나 내면 가운데 강점과 장점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잘 김강석 논설위원 대표출하고 결집시키느냐에 따라 자기 자신은 물론 민족의 명운도 열려 왔던 것이다. 김수영은 일찌감치 패배의 역사 속에서도 우리의 잠재력을 간파하고 민족적 자부심을 호소하기 위해 ‘거대한 뿌리’를 쓴 게 아니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들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일본을 보면서 거대한 뿌리가 다시금 생각나는 이유를 이제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