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을 지내고서도 아내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일을 해 화제가 됐던 김능환(62)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대형 로펌행을 결정했습니다. 김 전 위원장은 "다음달부터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로 일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거쳐 1980년 전주지법 판사로 임용돼 법관의 길을 걸은 김 전 위원장은 2006년 대법관에 이어 2011년에는 선관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에 이어 재판연구 업무를 총괄하는 수석재판연구관을 지내는 등 민ㆍ형사, 가사ㆍ행정 등 모든 분야에서 이론과 실무에 두루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공직에 있으면서 검소한 생활로 '청백리'라는 별칭을 얻었고 '박근혜 정부'의 초대 총리로도 거론됐지만 "대법관 출신이 행정부의 다른 공직을 맡는 게 적절치 않다"며 고사한 바 있습니다.
올 3월 중앙선관위 위원장에서 퇴임할 당시에도 향후 거취에 대해 "아내의 가게를 도우며 소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라며 "당분간 공직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법조계 고위 공직자들이 퇴임 후 곧장 로펌으로 직행하는 '전관예우' 관행과 달리 아내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그의 모습은 대법관 출신 '편의점 아저씨'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랬던 김 전 위원장이 6개월도 채 안돼 결국 고소득이 보장된 대형 로펌행을 결정하자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과 함께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국 서민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았다"며 비난까지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직업선택의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당대 최고 법률가가 법조계에서 일하는 것이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주장도 나름대로 명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갑작스런 '변신'이 그리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은 그의 말 때문입니다. 김 전 위원장은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다"는 말로 로펌행 결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무항산 무항심'은 <맹자 양혜왕편>에 나오는 말로 보통 사람들은 일정한 소득이 없어 먹고 살기 힘들면 올바른 바른 마음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맹자는 양혜왕에게 일반 백성의 생활 수준 향상에 더욱 노력하라는 주문을 하고 있습니다. 맹자는 또 "항산이 없는 데도 항심을 유지하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그대로 적용하면 김 전 위원장은 스스로 선비가 아님을 인정한 셈입니다. 사실 김 전 위원장이 선비인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김 전위원장이 스스로 자신을 '무항산자'로 규정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대법관과 선거관리위원장을 지냈고 아내가 편의점을 하는 분이 무항산자라고 말하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쉽지 않습니다. 맹자가 말한 무항산의 의미는 그야말로 하루하루 살기 힘든 서민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김 전 위원장의 구체적 수입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그의 생활수준이 정말 '무항산'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은 '무항산'에 해당될 게 틀림없습니다. 김 전 위원장이 언급한 '무항심, 무항산'은 <맹자> 맨 앞인 양혜왕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조금만 페이지를 넘기면 등문공편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빈천불능이'(貧賤不能移) 즉 바른 길을 걷는 사람은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결코 그 志操(지조)를 꺾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저는 김능환 전 위원장의 로펌행 자체를 굳이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김 전 위원장이 그냥 "저의 경험을 살리고 좀 넉넉하게 살고 싶어서 결정했다"고 말했으면 훨씬 더 솔직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가 굳이 맹자의 '무항산 무항심'을 거론하며 서민 생활을 6개월만에 정리한 것은 결국 군색한 변명이란 씁쓸한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고전속에 담긴 선철(先哲)의 깊은 뜻을 끌어쓸 때는 좀더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