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 감사원장이 A4 한 장 분량도 안 되는 짧은 이임사를 내놓고 물러났다. 이번에도 임기 1년 7개월을 남겨놓고 중도 하차한 셈이다 양 감사원장은 이임사에서 “재임기간 동안 안팎의 역류와 외풍을 막고 직무의 독립성을 한 단계나마 끌어올리려 안간힘을 썼지만, 물러서는 마당에 돌아보니 역부족을 절감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감사원장의 중도 사퇴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외풍을 막기에 역부족 이었다"라고 직설적인 표현까지 써가면서 유감을 표명한 것을 놓고 온갖 정치적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외풍’과 ‘역류’는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감사원을 떠나는 양 원장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감사원을 떠났다.
다만 그 뜻을 어렴풋이나마 헤아려 볼 수 있는 것은 이임식 직전 감사원 간부들과 가진 티타임 자리에서의 양 원장 발언이다. 김영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이 자리에서 양 원장이 “최근에 파이팅을 했는데 이런 저런 일로 그만두게 됐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장훈 중앙대 교수의 감사위원 임명 제청을 놓고도 이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김 사무총장은 밝혔다.
이런 저런 상황을 종합해 보면 감사위원 임명을 놓고 이견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최근 4대강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놓고도 정부, 정치권과 이견과 갈등이 있었다는 점을 추론해 볼 수 있다.
문제는 실무적인 면을 떠나서 감사원의 독립성 논란이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되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감사원장에 임명됐던 전윤철 전 감사원장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3개월 만인 2008년 5월 전격 사퇴했다. 당시에도 외압논란이 불거졌다.

이와 관련해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8월 27일자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에서 유임된 뒤 처음에는 몰랐는데 그만두기를 바란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 얘기를 들은 뒤 한 달 만에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사표를 내고 나왔다”고 밝혔다. 외압에 의해 물러났음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감사원법 제2조에는,
①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
②감사원 소속 공무원의 임면, 조직 및 예산의 편성에 있어서는 감사원의 독립이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또, 감사원법 제8조에는,
①감사위원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니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면직되지 아니한다.
1. 탄핵 결정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았을 때
2. 장기(長期)의 심신쇠약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 때라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는 감사원법 제2조 1항의 내용이다. 감사원장의 직무에 관해 아무리 독립성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감사원장이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제도적 개선책이 거론되고 여야 및 청와대가 서로 네 탓이라고 책임을 돌리고 있지만, 꼭 제도적인 문제로만 돌릴 일도 아닌 것 같다.

전윤철 전 감사원장도 “정권은 헌법 정신에 따라 감사원을 운영하고 감사원장은 헌법 정신에 따라 감사하면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의지의 문제이지 제도상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 되는 외압 논란과 중도하차의 거북살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피곤하다. 이른바 권력기관의 장이 아름답게 퇴장하는 모습이 정착될 때 우리 사회가 정치 선진화에 한발 더 가까이 가지 않을까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