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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조폭과의 전쟁'이 낳은 영웅, 몰락한 이유

우상욱 실장

입력 : 2013.08.15 08:22|수정 : 2013.08.15 10:58


류샤오후이, 중국의 경찰입니다. 그냥 경찰이 아닙니다. 영웅으로 불리는, 아니 불렸던 인물입니다. '打黑英雄(다헤이잉숑)' 그의 별명입니다. 여기서 헤이, 즉 흑은 흑사회(중국의 조직폭력단)의 준말입니다. 그러니까 '조폭을 때려잡는 영웅'으로 번역할 수 있겠네요.

류샤오후이는 이런 별명이 전혀 과하지 않습니다. 그는 원래 쓰촨의 한 관광지를 순찰하는 경찰관이었다고 합니다.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범죄를 소탕하고 특히 조직폭력 집단과 싸우고 싶었습니다. 형사 자격 시험을 봤고 통과했습니다. 쓰촨성 미엔양시의 정보국에 들어갔습니다.

2001년 그는 밀명을 받습니다. 당시 미엔양시를 쥐고 흔드는 흑사회에 잠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오샤오둥이 두목으로 있던 이 흑사회는 보호비 명목 갈취와 고리대업, 강간과 상해, 살인까지 자행하는 말 그대로 악의 세력이었습니다. 류샤오후이는 마치 무간도의 량차오웨이와 같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흑사회에 잠입했습니다. 그리고 끝내 이 흑사회를 일망타진, 말 그대로 뿌리 뽑았습니다. 그는 잠입에 나서기 전에 '안전을 지켜주기 어렵다'며 아내와 이혼했다고 합니다. 아들까지 아내에게 넘겨주면서요. 백제의 계백 장군을 연상시키는 비장함이 느껴집니다.
류샤오후이3
어떻든 이런 독한 결기 덕에 그는 '조폭을 때려잡는 영웅'이 됐고 이후 승승장구합니다. 2004년에 '쓰촨성 10대 청년 공무원'에 선정됩니다. 2005년에는 '쓰촨성 우수 경찰'에, 그해 4월에는 '전국선진공무원'에 뽑힙니다. 2006년에는 공안부로부터 '2급 영웅' 칭호를 받습니다. 그리고 2009년 38세의 나이로 사상 최연소 미엔양시 공안국 부국장에 오릅니다. 그 사이 3등 공적상 두 차례, 1등 공적상을 한 차례 받았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잘 나가고, 유명한 경찰이 된 류샤오후이는 하지만 최근 오히려 경찰 조사를 받는 신세로 추락했습니다. 쓰촨의 대부호 류한과 관련된 죄를 은폐하고 무마해준 혐의라고 합니다. 류한과의 인연도 묘합니다. 류한은 쓰촨성 광한시에서 크게 재산을 모은 상인입니다. 그는 1997년 미엔양시의 개발과 발전에 앞장 서겠다며 한룽그룹을 만들어 미엔양시에서 대규모 투자 사업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2001년 미엔양시에서 총기 살해 사건이 벌어집니다. 당시 류샤오후이가 맡고 있던 형사대에서 이 사건 수사에 나섰고 사건의 배후를 맹렬하게 캐고 들어갔습니다. 결국 류한과 관련됐음을 밝혀내고 본거지인 광한시까지 추적해 류한측 사람을 예닐곱 명 검거했습니다. 당시 사건 수사는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광한시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류샤오후이2
그런데 어떻게 된 사연인지, 류샤오후이는 2년 만에 수사 대상자였던 류한을 비호했다는 비리 혐의로 본인 스스로가 수사선상에 올랐습니다. 현지 매체들이 취재한 바로는 류샤오후이가 류한에게 총기를 구해서 넘겨준 의혹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아울러 류한이 세운 회사의 주식 상당량을 수수한 혐의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만 취재 결과, 문제 회사의 대주주 명단에 류샤오후이가 있기는 하지만 출신지가 쓰촨이 아닌 안후이로 나와 있어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고위 공직자의 비리 수사에 무척 인색한 중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류샤오후이가 공개 수사를 받게 됐다는 것은 뭔가 엄중한 비리가 드러났고 그의 낙마가 기정사실이라는 얘기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어쩌다 조폭의 저승사자로 가족까지 버리고 조폭과의 전쟁에 앞장 섰던 영웅이 추악한 조폭 비호자로 전락했을까요? 아직까지는 중국 공안 당국이 수사 내용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어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현지 언론은 그저 이렇게 추론하고 있습니다. 류사오후이와 마찬가지로 '조폭과의 전쟁'을 벌여 영웅으로 추앙 받던 원창도, 왕리쥔도 모두 부패 공무원으로 낙마했다는 점을 듭니다. 악과 싸우다보면 부지불식간에 그 악에 물들기 쉽다는 것입니다. 거악을 상대로 투쟁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고 그 결과 처음의 순수했던 사명감은 아득히 잊혀지면서 탐욕만 마음 가득 채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악의 세력이 놓은 갖은 유혹의 덫에 한 번 잘못 발을 헛디디면 수렁처럼 끌려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류샤오후이도 그와 같은 길을 걸었지 않았겠냐고 추측합니다.

고고한 사명감, 강철 같은 의지, 날선 정의감, 이 모든 것을 갖추고도 결국 추락하는 영웅의 모습을 보는 기분은 몹시 허망하고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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