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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中 부패 공직자 '해외 먹튀'에 골머리

우상욱 논설위원

입력 : 2013.08.13 07:57


지난해 4월 랴오닝성 단둥 지역 펑청시의 당서기를 지낸 왕궈창이 사라졌습니다. 인터넷에는 그가 미국으로 도피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이에 대해 랴오닝성 당국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랴오닝성 홈페이지에서 왕 서기에 대한 소개 자료만 슬그머니 내렸습니다. 오히려 성 선전부는 예하 매체들에게 보도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퍼지는 소문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한달 뒤 결국 한 인터넷 매체가 왕궈창의 출국 사실과 함께 그가 공금 2억 위안(우리 돈 약 360억 원)을 빼돌렸다는 내용을 폭로했습니다. 아울러 시민들에게 난방 요금을 걷은 뒤 난방 서비스를 중단해 큰 물의를 일으켰던 한 난방회사로부터 왕궈창이 뇌물을 받은 혐의도 있다는 사실을 덧붙였습니다. 분노한 시민들은 난방회사 앞에서 시위까지 벌였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랴오닝성은 지난해 8월 말에야 왕궈창의 출국 사실을 인정했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를 둘러싼 숱한 의혹에 대해 당사자가 없어 감찰이 어렵다는 입장만 비공식적으로 표명했을 뿐입니다.

원링지난달 24일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광둥성 선전시 난산구의 정치협상회의 전 주석인 원링이 출국해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녀 역시 선전시 기율검사위에서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이었습니다. 원링은 소위 '잘 나가는' 공직자였습니다. 1997년에는 선전시 난산구의 과학기술국 국장으로 일하면서 시가 뽑은 '십대우수 청년 공무원'에 뽑혔을 정도입니다. 이런 인정을 바탕으로 구 정협의 주석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월 갑자기 주석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그해 4월부터 기율위의 조사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2억 위안(약 360억 원)의 뇌물을 받아 챙긴 혐의였습니다. 이런 심각한 비리로 조사를 받고 있었는데도 원링은 마음대로 해외로 나갈 수 있었고 그 길로 잠적했습니다.

이렇게 각종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던 고위 공직자들이 '실종'되는 사례는 중국에서 매우 흔한 일입니다. 이들 외에도 최근에만 광둥성 광저우시 화더우구 정협 주석인 왕옌웨이가 지난달 초 병가를 낸 뒤 지금까지 연락을 끊고 있습니다. 해외로 출국했다는 소문만 무성합니다. 후난성 리링시의 부주임(부국장)도, 후베이성 궁안현의 고위 관료도 비슷한 상태입니다. 모두 휴가를 내고 몸을 뺀 뒤 해외로 달아났습니다.

중국의 이른바 '해외 먹튀' 고위직 가운데 가장 거물은 지난 2002년 10월 '실종'된 가오옌 중국전력 사장입니다. 가오옌은 윈난성 당서기까지 맡았을 만큼 최고위층 인사였습니다. 그런데 회사 돈 무려 46억 위안, 우리 돈으로 8천280억 원을 들고 사라졌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봤다는 소문만 있을 뿐 지금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런 일이 잇따르면서 중국의 누리꾼들은 감찰 당국이 사실상 이들의 도피를 '방조'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심각한 부패 혐의를 받고 있는 고위 관료를 어떻게 그렇게 허술하게 관리할 수 있느냐는 것이죠. 해당 공직자들이 '실종'된 원인을 찾아내서 그 안에 위법 사실이 드러나면 정식 조사를 벌여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중국 당국은 일정 직급 이상 고위 공직자의 경우 평상시에 공무여권을 외사부문에 맡겨놓도록 하고 이 여권을 이용해서만 출국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이들이 개인적으로 몰래 여권을 만들거나 위조 여권을 만들어놨다가 도망치는 사태까지 막을 수 없다고 변명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비판적 학자들은 "해당 기관의 관리가 소홀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고 꼬집고 있습니다. 이들의 '실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치밀한 계획 아래 이뤄지고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한 조치는 매우 허술하다고 지적합니다. 심지어 이들이 돈을 세탁해 위조 비자를 얻고 세관을 통과하기까지 매 절차마다 공무원들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이를 도와주는 비공식 '서비스업'이 성업 중이라는 이야기도 공공연하게 나도는 실정입니다.

지난 2011년 중국사회과학원의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중국 인민은행이 부패자산의 해외유출과 관련된 연구 보고서를 냈습니다. 이 자료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외국으로 도주한 당정간부나 공안·사법간부, 국유기업·국가사업기관 고위 간부 등 고위직 인사의 수가 1만 6천에서 1만 8천 명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들이 해외로 빼돌린 돈은 8천억 위안, 우리 돈으로 약 14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중국에서 발표되는 통계의 속성상 이런 수치는 상당히 엄격하게 증명된 사례만 포함시켰을 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료만 따져도 매년 1천 명 넘게, 1인당 평균 80억 원씩 들고 해외로 도망갔다는 얘기입니다. 일부 학자의 경우 해외로 달아난 고위직 인사의 수가 2만 명을 훨씬 넘으며 빼돌려진 돈도 1조 위안, 180조 원 이상이라고 단언합니다. 어마어마한 수치에 말문이 막힐 따름입니다.

부패한 고위층에 의해 국가의 부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이 다른 나라만의 얘기일까요? 얼마 전 독립언론인 뉴스타파가 ICU와 공동취재한 결과 조세회피지역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한국인이 재벌가와 전직 최고위공직자 가족 등을 포함해 2백45명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 이 지역으로 빼돌린 돈의 액수는 7천79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죠. 우리나라의 고위층은 더욱 교묘한 방법을 이용해 해외로 잠적할 필요도 없이 비양심적인 부를 나라 밖으로 가지고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더 눈을 부릅떠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