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가 판교에 테크노밸리라는 것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뚜렷하고 거창합니다. 판교라는 공간에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같은 것을 조성해보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판교가 아니 경기도가 한국의 신 성장 동력을 잉태하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 목적입니다. 토지 조성 등에 3조 8천억 원의 돈이 들어갔습니다.
테크노밸리를 조성하려면 들어오려는 기업들이 필요한데 경기도는 토지를 싸게 분양하는 당근을 꺼내들었습니다. 다른 지자체 등도 비슷한 성격으로 공간을 조성하겠다고 나선 상황에서 다른 곳 보다 더 큰 당근을 꺼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원 등 녹지를 제외한 공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공간에 들어오는 기업이나 컨소시엄에는 토지를 감정가로 공급하겠다는 당근을 꺼냈습니다.
◈ 토지 감정가로 공급하는 등 특혜 주며 시작한 판교 테크노밸리
감정가라는 게 실거래가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경우가 많으니 엄청난 특혜를 제공한 겁니다. 경기도의 1차 공급지침서만 봐도 해당 지역에 들어오는 기업에게는 평당 850만원에 땅을 분양했습니다. 다른 지역은 최소 1400만 원이니, 다른 곳을 절반 이하로 땅을 분양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물론 조건은 있었습니다. 해당 건물의 상당부분 혹은 전부를 토지를 낙찰 받은 기업이나 컨소시엄이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들어오려는 기업의 본사를 이전하거나 지사를 설치해 사옥으로 쓰라는 취지였었죠. 실리콘 밸리와 같은 집적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소규모 벤처기업들이 모이는 벤처 단지를 조성하는 곳 보다 규모가 있는 기업들의 본사를 대규모 유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을 겁니다. 또한 건물 매매차익을 노리고 낙찰 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해당 건물을 10년 간 전매제한을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혜택 아니 특혜를 주고 조성하고 있는 테크노밸리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경기도가 취할 수 있는 그리고 경기도민을 위해 쓰였을 수 있는 돈을 상당부분 포기하고 조성하고 있는 테크노밸리입니다. 과연 경기도가 의도했던 대로 테크노밸리는 가고 있을까요? 많은 첨단 기업들의 본사나 사옥이 판교에 유치되었을까요?
◈ 기업 본사 유치는 온데간데없이 임대 사업 천국으로
임대는 하지 않고, 건물 전체를 자신들이 쓰겠다고 토지를 분양받았던 A 건물의 경우, 2월 기준으로 임대율이 30.28%. 3.11%만 임대하기로 했던 B 건물의 경우에는 임대율이 42.97%입니다. 임대를 하지 않겠다고 땅을 분양받았던 다른 건물의 임대율도 10~20%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본사나 사옥이 이전할 것으로 예상해서 많은 기대이익까지 포기하면서 분양했더니 임대사업만 하고 있는 겁니다. 경기도 입장에서는 임대사업하라고 땅도 싸게 분양하고, 세제지원 등도 했던 꼴이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 있고, 임대 사업을 목적으로 비싸게 땅을 분양받고 들어왔던 사람들의 민원이 잇따르자 경기도는 마지못해 2월 실태 조사에 나섭니다. 그리고는 임대를 하고 있는 업체들에게 제재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습니다. 그런데 8월에 접어든 오늘까지 사업계획준수 공문 한 장 발송했을 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취재진이 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경기도의 해당 공무원에게 물었습니다. 임대에 혈안이 되어 있는 판교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담당 공무원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자기들이 건물을 쓰겠다고 분양을 받고는 지금 와서 임대사업하고 있는 것은 계약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 제재를 하겠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습니다. 계약 위반이면 위반이지 계약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게 무엇이냐. 취재진이 재차 물었습니다. 하지만, 대답을 같았습니다. 계약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 임대 제한 문구는 왜 계약서에 안 들어갔나?
이 의문은 건물주들을 만나면서 풀렸습니다. 건물주들은 제재를 하겠다는 경기도의 엄포에 코웃음을 치고 있었습니다. 제재를 하려거든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들 이래도 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계약서에 건물 전체를 낙찰받은 자신들이 쓰겠다는 문구를 넣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말로는 그렇게 이야기 했지만, 서면 계약서에는 문구를 넣지 않았으니 임대를 하든 뭘 하든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경기도도 계약서에 안 쓴 거는 자기들도 실수라고 하더라. 그런데 어쩔거냐 계약서에 안 썼는데. 우리는 제재를 받을 이유도 없고, 경기도가 제재도 못 한다"고 배짱을 보였습니다.
담당 공무원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계약서상에는 그런 문안이 없다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담당 공무원은 "계약서 작성은 자신이 있을 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오래전에 있었던 것이라고 잘 모르겠다. 다만 용지공급지침서라는 것이 있으니 제재를 할 수는 있다. 제재를 취하겠다"고 답을 해 왔습니다.
용지공급지침서라는 게 법적 효력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계약서에 우선할 수 있는지는 법률적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에 제가 지금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계약서상에 판교 테크노밸리 조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임대 비율 제한에 대한 문구를 집어넣었다면 건물주들의 어이없는 배짱 행태는 방지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경기도가 오랜 시간 손을 놓으면서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시기를 놓쳤다는 점입니다.
주변 부동산 업소의 이야기를 빌리면 땅을 싸게 분양받아 들어온 건물들, 즉 경기도 입장에서 회사 사옥이 이전할 것으로 예상했던 건물의 90%가 임대사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손을 쓸 수 있는 임계점을 지나버렸다는 겁니다. 경기도가 지금 나서서 처음에 약속했던 것처럼 복구를 하라고 하면 지금 들어와 있는 기업들 즉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해 낼 수밖에 없습니다.
부동산 업자들도 이런 사실을 알다보니 임대로 들어와도 문제가 없다고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해당 건물들은 만일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으니 다른 곳 보다 싸게 임대를 놓고 있습니다. 가격은 싸고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현실화되기 어려운 위험이니 문제가 없다고 꼬드기고 있는 거죠.
건물주들도 경기도의 제재라는 것이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해서 임대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자신들이 책임을 지겠다고 보증까지 하고 있다는 게 지금 판교 테크노밸리의 현실이라고 부동산 업주는 귀띔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건물에는 공기업이나 공공연구소도 들어와 있으니 경기도의 제재 조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기업들 사옥이 들어와서 실리콘 밸리와 같은 집적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경기도의 기대. 그리고 그것의 좌절.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건물업주들의 꼼수 때문일까요, 그리고 지금의 모습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일까요?
경기도는 최소 2번의 실책을 했습니다. 계약서를 쓰던 5년 여전에 한 번을 큰 실책을 했고, 건물의 입주가 시작되던 즈음 뒷짐을 지고 있음으로서 그 실책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고 하지만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간 순간에 맞이하는 9회말 2아웃은 사실상 경기의 종료와 다름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단체장과 해당 공무원들이 자신의 집 계약서를 쓰듯이 판교 테크노밸리 사업을 진행했으면 어땠을까? 일반 건물의 건물주들이 자신의 건물 목적을 위해서 업종을 제한해서 임대를 놓고 계약하는 하는 모습을 단체장과 공무원들이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만약 판교에 들어가는 돈이 자신의 돈이고 판교라는 공간이 자신의 땅이었다면 판교 테크노밸리는 분명 지금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