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장외투쟁 역사는 뿌리가 깊다.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뒤 정당정치가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자기 주장을 위해 누구나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자유당 정권의 독재가 있었고 4.19 혁명으로 민주화가 찾아왔지만 새로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자중지란을 거듭했다.
결국 5.16 쿠데타와 함께 군사정권이 민주당 정부를 밀어냈다. 이후 지난한 야당의 투쟁사가 시작됐다. 야당은 소수였고 원내 싸움에서 밀리기 일쑤였다. 힘이 될 수 있는 건 오직 국민과 여론 뿐이었다. 야당의 장외투쟁은 그래서 잦을 수밖에 없었다.
야당의 거리 투쟁이 정점을 이룬 것은 1987년 민주 항쟁이었다. 수백만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고 민주화의 물꼬를 텄다. 이후 김영삼, 김대중 정부가 차례로 들어섰고 민주화도 그만큼 진전됐다. 하지만 이후로도 야당의 장외투쟁은 때마다 반복됐다. 왜 일까?
◈ 새누리-민주, 반복되는 장외투쟁
이번에 장외투쟁에 나선 민주당은 지난 이명박 정부 때 거의 해마다 거리 투쟁에 나섰다.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인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나라 전체가 들썩였다. 야당은 거리로 나섰다. (사실 이 때는 야당보다 시민이 장외집회를 주도했다.)
2009년에는 이른바 미디어법 개정 문제를 놓고 또 한 번 맞붙었고 이듬해인 2010년 4대강 예산, 2011년 한미FTA 비준 등으로 국회를 떠나 거리 투쟁에 나섰다. 하지만 모든 장외투쟁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회로 돌아갈 명분을 찾지 못해 고전한 적이 더 많았다.
장외투쟁은 새누리당도 예외가 아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도 야당 시절인 지난 1998년, 검찰이 이른바 '세풍 수사'로 당시 이회창 총재를 겨낭하자 장외 투쟁을 벌였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당 대표를 맡았던 지난 2005년에도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사학법을 강행처리하자 거리로 나섰다.
장외투쟁에 반대하며 등원을 주장한 적이 있는 박 대통령이었지만 정작 자신이 대표를 맡게 되자 고육책으로 장외투쟁을 선택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특별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당내 반대파들의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 박근혜-김한길, 8년 만에 '공수 교대'
이런 상황에서 당시 여당의 새 원내대표로 선출된 김한길 의원이 국회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한나라당은 53일 만에 국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올해, 이번엔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야당 대표로 장외투쟁에 나서면서 공수가 뒤바뀌게 됐다.
사상 첫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가 파행될지도 모를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협상이 아니라 거리로 나서야 한다는 당내 강경파의 주장을 선택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한길 대표 모두 거리보다는 의회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지만 장외투쟁을 피해가진 못했다.
이런 사실로 미뤄볼 때 야당의 장외투쟁이 결코 지도부의 성향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민주화된 지금까지 보수-진보할 것 없이 야당만 되면 장외투쟁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 '장외투쟁'이 무서운 이유
장외투쟁은 야당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투쟁 수단이다. 국회 운영을 중단시킴으로써 국정운영의 책임이 있는 여당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3권 분립이 명확한 우리나라에서 국회가 파행될 경우 행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당장 예산이다. 예산을 편성하는 권한은 정부에 있지만 이를 심의하고 의결하는 권한은 국회에 있다. 법안도 마찬가지다. 정부에도 법안 제출권이 있지만 처리는 어디까지나 국회의 고유권한이다. 다시 말해 국회가 돌아가지 않으면 법안이며 예산 처리까지 모든 것이 중단된다. 한마디로 정부의 손발이 묶인다는 얘기다.
특히나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된 이후, 장외투쟁의 파괴력은 한층 더 커졌다. 예전에는 야당의 도움 없이도 이른바 '날치기 처리'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직권상정이 사실상 폐지된 상황에서 여당이 야당의 도움없이 법안이나 예산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 양날의 칼, 장외투쟁
하지만 장외투쟁은 강력한 파괴력 만큼이나 실패할 경우 야당이 입게 되는 타격도 치명적이다. 장외투쟁을 시작하기는 쉽다. 그냥 거리로 나서면 된다. 하지만 일단 국회를 나서면 돌아오기란 쉽지 않다. 나가는 건 야당 마음이지만 돌아오기 위해서는 여당의 양보가 필요하다.
만약 여당에게서 아무런 양보도 얻지 못한 채 국회로 돌아오게 되면 지도부는 물론 당 전체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특히 지도부는 책임론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유야무야 넘어간 적이 없진 않지만 역시나 지도력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장외투쟁이란 야당에게 '양날의 칼'인 셈이다.
◈ 장외투쟁 반복되는 이유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선언하면서 굳이 투쟁 동력을 떨어뜨리는 원내 병행 투쟁을 결정한 것도 장외투쟁이 갖는 이런 양면성 때문이다. 가뜩이나 친노 주류 세력의 도전이 거센 상황에서 비주류 지도부가 자신들의 당내 기반을 흔들 수 있는 모험을 하기에는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장외투쟁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해법은 뭘까? 장외투쟁의 본질을 따져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장외투쟁은 여당의 밀어붙이기식 정국 운영과 국회 운영을 볼모로 한 야당의 벼랑 끝 전술이 낳은 결과물이다. 어느 한쪽의 책임이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여야가 한발씩 물러나는 방법 밖에는 없다. '너무 뻔한 소리 아니냐'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 뻔한 것 만큼 실천하기 어려운 것도 없다. 대개 진리란 누구나 아는 것이지만 실행에 옮기기 힘든 경우가 많다. 정치적인 사안도 예외가 아니다.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 나야 된다'는 국회의원들의 지혜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