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 데려가지 마… 우리 아빠 살려내란 말이야…"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허무하게 떠나보낸 딸은 영정 사진 앞에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오열했다.
1일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방화동 공사현장 상판 붕괴사고 희생자들의 빈소에서는 유족들의 애달픈 통곡이 이어졌다.
유족들의 뜻에 따라 상주가 도착하기 전에는 외부인 조문을 받지 않기로 하면서 빈소에는 가까운 친지들만이 있었다.
이날 점심 무렵에는 5∼6명만의 조문객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유족들은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듯 입을 굳게 다문 채 쓸쓸히 고인 곁을 지켰다.
중국에 머물던 고 최창길(52)씨의 아들 국봉씨는 이날 오후 한국에 입국해 빈소를 찾았다.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먼저 있던 어머니와 누나를 챙기며 애써 눈물을 삼키는 듯한 모습이었다.
오후 2시께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이 빈소를 방문하자 유족들은 서러움이 밀려온 듯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렸다.
고 허동길(50)씨의 여동생은 "우리 오빠 살려줘요. 너무 불쌍해서 어떡해"라며 통곡했다.
고 최창길씨의 유족은 "저렇게 아까운 청춘을 어떻게 보내나. 아들, 딸 다 키워놓고 어찌 이렇게 가버리나. 잘 살아보려고 한국에 왔는데 일만 하다 죽어서 어떡하나"라며 비통해했다.
최씨의 딸 미란씨는 "우리 아빠 불쌍해서 어떡해. 아직 살 날이 많은데. 아빠 없는 건 상상도 못해봤는데"라며 오열했다.
미란씨는 "어떻게 아빠 생신 전날 돌아가시느냐. 그게 마지막이 됐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가슴을 쳤다.
미란씨는 심하게 울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정 상임고문에게 "우리 아빠 편하게 돌아가실 수 있도록 좀 도와달라"고 호소해 주변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정 상임고문은 조문을 마치고서 취재진에게 "참 가슴 아픈 사연들이다. 잘 살아보려고 고국에 왔는데 생일 한번 못 챙겨 드려서 자식들이 얼마나 한스럽겠나"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건네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최대한 관심을 갖는게 유족을 위로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당 차원에서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와 시공사인 금광기업 관계자들도 빈소를 찾았다.
금광기업 관계자를 만난 유족들은 "도대체 어떻게 한 거냐. 어떻게 했기에 일이 이렇게 됐느냐"고 격분하며 울분을 토했다.
딸 미란씨는 관계자들을 붙잡고 통곡하다 잠시 실신하기도 했다.
조문을 온 조기붕 금광기업 부사장은 착잡한 표정으로 취재진에 "죄송할 따름이다. 보상과 관련해 저희가 할 부분을 제대로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