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7월 27일, 강원도 춘천으로 봉사활동을 떠났다가 산사태로 목숨을 잃은 대학생 10명을 기억하시는지요. 250mm의 폭우에 불어난 빗물은 토사와 함께, 펜션에서 잠을 자던 학생들을 덮쳤습니다. 산사태가 있을 거라고 꿈에라도 예상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들은 그곳에서 묵지 않았을 겁니다. 재해 정보를 알고 있고, 제때 전달받았다면 산사태 순간만큼은 피할 수 있었을 겁니다. 재작년 춘천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올해 피서를 산간 계곡으로 떠난다면 낯선 그곳의 산사태 위험수준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까요.
‘산사태 취약지역’의 위험소통 수준은?
산사태 위험지역 가운데서도 공인된 곳은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분류합니다. 이런 지역에서 위험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대피경보는 신속 정확한지, 대피공간은 있는 지 말이죠.
여주군 북내면 산사태 지역 인근의 유명 계곡을 점검했습니다. 계곡 중간쯤에 사방댐이 설치돼 있습니다. ‘토석류’ 피해를 막기 위한 콘크리트 시설입니다. 차 사고가 날 때, 자동차 범퍼가 차체로 전해지는 충격을 1차로 완화하듯, 토사와 바위, 잡목을 붙들어 줍니다.
집중 호우가 내린 사흘째. 사방댐 주변은 할퀴어졌다고 표현해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범람한 물길이 사방댐 좌우의 구조물을 부수고, 축벽을 할퀴고 지나간 흔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방댐의 콘크리트 몸체는 남아서, 굴러 내려온 승용차, 잡목, 바위를 막아 세워놓은 모습이었습니다.
사방댐은 ‘산사태 취약지역’이란 사실을 알려주는 이정표와 같습니다. 피서객 입장에서 보면, ‘여긴 큰비가 오면 이렇게 된다’는 묵시적 풍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반인 피서객들 가운데 이런 위험을 알아 차릴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사방댐 안내문에도 토석류를 막는 구조물이란 안내만 있을 뿐, 산사태에 조심하라는 문구는 없습니다. 수영을 금지한다거나 시설 훼손을 말라는 경고만 있습니다. 그나마 하천 한가운데 있고, 펜션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걸 보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곳을 제외하면 해발 6백 미터 가까운 높은 골짜기 계곡 어디에도 ‘산사태 취약 지역’임을 알리는 안내문은 없었습니다. 산사태가 빈번하고, 위험해서 사방댐까지 설치한 곳인데, 정작 이곳을 찾은 외지인들에겐 일언반구 공식적인 경고가 없는 겁니다.
피서객에겐 ‘쉬쉬’ 주민도 잘 몰라
산사태 취약지역에 큰 비가 내리면, 산림청이 재해 담당 공무원에게 산사태주의보를 전달합니다. 주의보나 대피 지시는 시군에서 읍면, 다시 마을이장에게 전달됩니다. 이장은 방송이나 전화로 계곡 주변 주민에게 마을회관 등 대피공간으로 모이라고 당부합니다. 이 과정에 지역 주민이 아닌 피서객들은 사실상 펜션이나 민박집 주인이 대피 요령을 전달해야만 합니다. 그런데도 주인들의 대피요령 인식 수준은 낮았습니다. 아예 산사태 취약지역이란 사실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손님들에겐 구태여 알리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속 시원한 해답이 있습니다. 산림청이 그동안 조사를 마친 산사태 위험 지역 정보를 공개하는 것입니다. 일단 산사태정보시스템엔 전국 모든 지역을 5단계의 위험 등급별로 표시한 지도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지적도에 위험도를 나타내는 색상을 표시해 놓은 것인데, 내가 묵을 숙소의 위험 수준을 직관적으로는 알기가 어렵습니다.
산림 당국 담당 공무원에게 물었습니다. 이것보다 정확한 위험 지도는 없는지 궁금했습니다. 대답은 "있다. 그러나 공개 못 한다". 산림과학원은 이미 ‘토석류 위험지도’의 전국 조사를 마쳤다고 밝혔습니다. 산사태의 가장 큰 변수는 역시 시우량(시간당 강우량)이고, 이 빗물의 양에 따른 산사태 위험을 당국도 조사를 통해 수치화하고 있습니다. 토석류, 빗물이 토사와 바위, 나무와 함께 쓸려 내려오는 현상의 위험도를 지역별로 세분화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럼 공개를 하면 될 텐데요. 하지만, 담당자는 언감생심이라고 말했습니다. 비슷한 데이터가 공개된 적이 있는데, 반발이 거셌답니다. 땅값이 떨어진다. 영업에 지장이 있다. 항의 민원전화가 빗발쳤다는 겁니다.
대신 재해 담당공무원은 이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시청이나 군청 산림 담당 부서(산림축산과 산림과 등등)의 산사태 담당자가 지도를 보고, 유사시 신속한 대피 경보를 발령해야만 합니다. 결국, 피서지 펜션이나 민박집 주인이 신속한 산사태 대피 경보를 전달받으려면, 일선 공무원의 대응이 빨라야만 한다는 얘기입니다. 큰 비가 내리는 날 ‘산사태 취약지역’ 펜션에 머무르고 있다면, 여기에 주민과 피서객들의 목숨이 그들 손에 달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수해로 가장 크게 피해 본 여주군의 대응은 신속 정확하지 못했습니다. 산사태로 손님이 숨진 북내면 펜션 주인은 산사태주의보를 전달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비에 시설물이 망가진 또 다른 펜션 주인 역시 같은 대답이었습니다. 국지성 집중호우는 갈수록 기승입니다. 어디에 얼마나 많은 비가 한꺼번에 내릴지 알 수 없습니다. 예측 못 할 산사태라면, 예측 정보라도 최대한 많이, 적극적으로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산사태와 빗물 변수
우리나라 사람은 바다보다는 산을 좋아합니다. 한 설문조사에서 10명 가운데 4.6명은 올해 휴가지로 산과 계곡을 꼽았습니다. 산이 깊고 물이 맑은 곳, 사람도 없는 계곡에서 호젓한 휴가를 꿈꾸는 듯합니다. 본격적인 피서는 시작됐는데, 철없는 장마가 문제입니다. 진작에 끝났어야 하는데도 계속되고 있는데다, 밤사이 비를 뿌리는 야행성입니다. 국지성 호우가 잦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나라의 장마가 산사태를 일으킬만한 위험 요건을 두루 갖춰나간다는 점입니다.
1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지난 22일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산사태는 5시간에 걸친 국지성 집중호우가 직접 원인으로 추정됩니다. 이 일대엔 22일 새벽 6시부터 5시간 동안 시간당 30~54mm의 큰 비가 집중됐습니다. 결국, 정오 무렵 해발 540m의 야산이 무너졌습니다. 70대 남성 1명이 산사태에 굴러 온 토사에 섞인 나무나 돌에 맞았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습니다.
국지성 호우는 산사태의 직접 원인입니다. 국지성 호우가 빈발한 2000년대 산사태 피해면적은 980ha로 80년대의 3배에 달합니다. 우리나라의 야산 표토는 암석이 풍화해 형성된 곳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 표토층은 흙 입자의 굵기가 비교적 굵어, 물을 잘 머금는 구조입니다. 이렇게 무게가 늘어난 표토는 암반에서 분리되기 십상이고, 일정한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산 아래로 쏟아지는 겁니다.
북내면에서 사망자가 나온 곳은 계곡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산 정상 부근에서 쏟아진 토사가 계곡을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강력한 토사, 바위, 나무, 빗물 덩어리가 흐르는 현상을 ‘토석류’라고 합니다. 토석류가 가장 집중되기 쉬운 곳은 산간계곡입니다.
우면산과 춘천의 산사태 이후 산림청과 산림과학원은 산사태 위험지도를 만들어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포털에서 ‘산사태정보시스템’을 검색하면 접속이 가능합니다.) ‘산사태 취약 지역’도 지정해 관리합니다. 지자체가 위험하다고 보고한 지역을 전문가가 심의해 지정합니다. 1차로 4,006곳이 지정됐습니다.
당장 피서지에서 산사태가 닥칠 것 같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산사태 취약 지역 주민은 비탈면 아래 도로를 피하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붕괴 위험이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특히, 산허리가 무너져 내리거나 나무들이 크게 흔들린다면 산사태 징후로 보고 즉시 대피해야만 합니다. 비가 갰을 때는, 산 배수로 곳곳에 쌓인 나뭇가지 등 퇴적물을 틈틈이 치우는 것도 산사태를 막는 예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