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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병헌이 자평한 할리우드 진출 1분기 '성과'

김지혜 기자

입력 : 2013.07.17 15:58|수정 : 2013.07.17 15:58


"어떤 사람들은 왜 늘 악역에 액션 연기만 하느냐고 해요. 근데 전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그것' 밖에 보여줄 게 없는게 아니라 나에겐 그들에게 없는 '이것'도 있다고요"

벌써 세 편째다. 2009년 미국으로 넘어가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으로 할리우드에 데뷔, '지.아이.조2'를 거쳐 신작 '레드:더 레전드'까지 굵직굵직한 영화에 출연하며 빠르게 미국 영화계에 자신의 이름을 아로 새기고 있다.

배우 이병헌이 할리우드 신인 배우의 삶을 살아온 지 어느덧 4년. 한국에서 배우로 활동한 20여 년의 세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겠지만, 열정과 노력의 질량은 그에 못지않았다.

"고작 세 편인데 뭘"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할리우드에서 외국인 배우가 활동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병헌은 복잡한 시스템, 낯선 사람들, 새로운 캐릭터까지 삼중고를 겪으며, 할리우드에서 조금씩 전진해나가고 있다.

그의 세 번째 영화는 딘 패리소트 감독의 '레드: 더 레전드'(이하 '레드')다. 이 영화는 25년 만에 재가동된 최강 살상 무기 ‘밤 그림자’를 가장 먼저 제거하기 위해 은퇴 후 10년 만에 다시 뭉친 CIA 요원 ‘R.E.D’의 활약을 담은 액션물.

이병헌은 옛 동료의 프랭크(브루스 윌리스 분)모함으로 이중 스파이에 몰린 킬러 '한' 역을 맡아 날카로운 카리스마와 더불어 엉성한 매력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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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1'(2010)을 너무 재밌게 봤었다. 속편인 이 작품의 캐스팅 제의가 왔을 때 '내가 언제 존 말코비치, 안소니 홉킨스 같은 명배우들과 작업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더불어 '한'이라는 캐릭터가 주는 존재감도 좋았다. 카리스마도 있고, 반전 매력도 있는 킬러 역이라 재밌겠다 싶었다" 

이병헌이 맡은 '한'이라는 캐릭터는 언뜻 '지.아이.조' 1,2에서 연기했던 '스톰 쉐도우'와 맥을 함께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뛰어난 액션 실력을 가진 점은 비슷하지만, '한'은 엉성한 매력으로 관객의 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이 다르다. 우리는 '레드'에서 '광해:왕이 된 남자'와는 또 다른 이병헌표 코믹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인 '레드'는 당연하게도 '미국식 유머'가 전반을 지배한다. 대사에 있어 유머의 포인트와 리듬이 한국 영화와 다른 만큼 연기 하는 데 있어 의식될 수밖에 없었을 터.

''광해'가 영국과 미국에서 상영됐을 때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서양 관객도 우리나라 관객과 웃음 포인트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레드'는 정말 미국적인 유머가 등장하는 영화라서 꽤 긴장 했다. 그 나라의 환경과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관객을 웃길 수 있지 않나. 유머 코드가 등장하는 신에서 일부러 애드리브를 자제했다. 내가 생각하는 유머가 그들의 정서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병헌이 연기한 캐릭터 '한'은 다소 단순한 캐릭터다. 동료에게 배신당한 뒤 그에게 복수를 감행하면서도 끝내는 적과 동침을 하게 되는 정 많은 인물. 이병헌은 장면 곳곳에 한국어 대사를 배치해 국내 관객들의 시선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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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액션 스타로서의 매력도 유감없이 드러냈다. '지.아이.조' 시리즈 때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몸매를 구축해 힘 있는 액션 연기를 보여줬다. 이병헌은 "'지.아이.조2' 때와 마찬가지로 정두홍 감독과 스턴트 더블을 이뤘는데, 그와의 호흡이 액션 장면을 살리는 데 큰 힘이 됐다"면서 "두 사람이 상의해 만든 액션 장면이 꽤 있었다. 그런 부분들이 할리우드 스태프들도 좋아해줬다"라고 전했다.

이병헌은 세 편의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에서 돋보이는 한국인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평가라는 건 어디에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지.아이.조' 시리즈와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매력적인 악역 캐릭터를 구축했고, '레드'에서는 안소니 홉킨스, 존 말코비치, 헬렌 미렌과 같은 아카데미상에 빛나는 명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좋은 기회도 누렸다.

지난 4년 간 할리우드 활동을 스스로 평가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병헌은 조심스레 "한 작품, 한 작품 조금씩이나마 내가 새롭게 보일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지.아이.조' 1편에서의 '스톰 쉐도우'는 시니컬한 모습만 보여준 단순한 캐릭터로 끝났다. 그러나 2편에서는 '저 인물 이면에 있을 그 뭔가'를 폭발시켰다. 이를테면 늘 쿨한 줄만 알았던 '스톰 쉐도우'의 뜨거운 면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또 '레드'의 '한'은 전형적인 킬러 캐릭터지만, 그 이면의 엉뚱한 매력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이번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작품이었다는 것이 '지.아이.조' 시리즈보다는 발전된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반면 아쉬움도 있었다. 이병헌은 "'지.아이.조' 1편을 찍을 때 현장에서 너무 긴장되고 위축되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다. 그래서 주변 스태프들에게 '쟤는 왜 저렇게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할까'라는 느낌을 줬다. 그때 좀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연기했으면 경직되지 않고 생동감 넘치는 연기를 선보이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레드'에 이르러서는 불필요한 긴장감은 많이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이병헌은 "연기할 때 약간의 긴장이 필요한데 예전엔 너무 과도하게 긴장해서 연기에 방해될 때가 많았다.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긴장감이 좀 줄었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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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광해:왕이 된 남자'로 천만 배우의 수식어를 달기도 했지만, 올해 야심차게 선보였던 할리우드 영화 '지.아이.조2'는 국내에서 부진한 성적을 냈다. 자국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가 극과 극 성적을 낸 바 있어 신작 '레드'의 흥행에 신경이 쓰일수 밖에 없을 터.

"국내 영화와 할리우드의 영화의 흥행, 각자 다른 의미로서의 부담이 있다. 한국 영화는 우리나라 관객에게 선보이는 것이고, 우리말로 연기하기에 캐릭터나 연기에 있어서도 좀 더 편안한 가운데에서 기다리게 된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의 국내 성적은 현지 영화 관계자들에게 내 티켓 파워를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된다. 결국 할리우드 관계자들도 이병헌이라는 배우의 자국 내 성적을 반영하고 차기작 캐스팅에 잣대를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병헌에게 이번 영화는 아버지와 함께한 작품이라는 의미도 있다. '레드'에는 '한'의 과거를 유추하는 장면에서 한장의 흑백 사진이 나온다. 이 사진은 이병헌이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영화를 좋아하신 아버지 덕분에 자연스레 배우의 길을 꿈꿨다는 이병헌에게 이 장면은 고인이 된 아버지에게 바치는 선물과 같은 의미가 있다.

이병헌은 "LA 프리미어 시사회 때 이 장면을 처음 봤는데 감회가 새로웠다"면서 "아버지가 자신의 사진이 스크린에 나온 걸 직접 보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라면서 아버지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최근 몇년간 해외 활동에 집중했던 이병헌은 1분기 격인 활동을 마무리하고, 올 하반기 '협려:칼의 기억'으로 충무로에 컴백한다. 할리우드 활동을 통해 얻은 자양분이 국내 작품에서 어떻게 발휘될지도 매우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1999년 '내 마음의 풍금'이후 무려 14년 만에 전도연과 다시 호흡을 맞추게 된 것에 대해 "오래 전 작품할 때에도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지만, 10여 년의 행보를 통해 국내외의 큰 인정을 받은 그녀의 연기를 다시 본다면 어떨지 궁금하다. 특히 오랜만에 만난 우리가 연기에서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지 기대된다"며 설렘을 드러냈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 영화인 제공>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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