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남 이창석 씨. 불법 비자금 관리자라는 의혹을 받아온 사람입니다. 그가 보유한 부동산은 특별합니다. 유독 '신탁'해놓은 것들이 많습니다. 신탁이라는 게 일반인들은 잘 이용하지 않는 것이어서 생소합니다만, 그는 부동산 신탁을 상당히 애용해왔습니다. 명의를 신탁하기도 하고, 처분 권한을 신탁하기도 합니다. 합법적으로 영업하는 부동산 신탁회사는 현재 10여 곳입니다. 그 가운데 한 곳이 이 씨와 꾸준한 계약을 맺어왔습니다. 다른 개인한테 명의를 신탁하는 건 안 되지만, 신탁회사에 돈을 주고 하는 건 등기부등본에 모두 투명하게 기록되는 합법적인 절차입니다.
대표적인 신탁 사례가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의 대규모 임야입니다. 1984년 아버지 이규동 씨, 그러니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인으로부터 증여받은 땅입니다. 이창석 씨는 2004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드넓은 임야를 한 부동산 신탁회사에 맡겼습니다. 일명 '처분신탁'입니다. 신탁회사는 이걸 위탁한 사람과 의논해서 제3자에게 팔거나 임대하거나, 수익을 내서 주인에게 돌려줍니다. 그때까지 소유권은 부동산 신탁회사로 넘어갑니다. 땅의 실소유주는 이창석 씨인데, 등기부등본 상에는 부동산 신탁회사로 나옵니다. 물론 신탁의 계약 기간이 끝나면, 제3자에게 팔지 않은 한, 다시 이 씨를 소유권자로 등기해야 합니다.
오산 양산동의 임야는 몇 차례에 걸쳐 신탁 계약 기간이 연장됐습니다. 그러던 중 2006년 12월 신탁원부, 즉 이창석 씨와 신탁회사가 맺은 계약서를 보면, 양산동 임야를 (주)비엘에셋에 매도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비엘에셋은 전두환의 차남 재용 씨의 회사입니다. 이창석 씨가 재용 씨에게 대규모 임야를 넘기는데, 이걸 그냥 판 것이 아니라 부동산 신탁회사를 통해서 판매한 것입니다. 재용 씨는 이렇게 땅을 받은 걸 미등기 전매했다가 2011년 국세청에 걸려서 수십억 원의 세금이 부과됐고, 아직도 안 내고 있습니다. 보유 부동산이라고 할 것이 없는 서민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땅을 그냥 팔면 되지 왜 신탁회사에 돈을 줘가면서 팔아야 하는 건지.
아마도 전두환 일가에 뼛속 깊이 자리 잡은 추징금 걱정 DNA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산의 대규모 임야를 재용 씨에게 직접, 그냥, 팔아버리면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특히 2006년 12월은 재용 씨에 대한 조세 포탈 재판이 막바지에 달할 때였으니까, 검찰이 언제 은닉 재산을 추가로 찾아낼지 몰랐던 때죠. 만에 하나라도 검찰이 오산 임야를 전두환의 재산이라면서 압류라도 한다면, 이걸 재용 씨에게 넘기는 건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까 부동산 신탁회사를 통해서, 처분신탁이라는 굳이 돈이 드는 귀찮은 방식을 동원해, 땅을 안전하게 재용 씨에게 판 것입니다.

부동산 신탁회사를 통해서 땅을 팔면 안전하다? 왜 그럴까요. 등기부등본에 보면 땅의 소유권자는 부동산 신탁회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검찰이든 다른 어떤 채무자든, 오산 임야가 원래 이창석 씨의 재산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압류나 가처분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씨는 부동산 신탁회사 명의를 빌려서 땅을 재용 씨한테 넘긴 것이고, 만일 검찰이 환수에 나섰더라도, 땅이 넘어가는 걸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처분신탁이라는 제도를 이렇게 이용하는 건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경기도 오산 땅뿐만이 아닙니다. 이창석 씨는 과거 경기도 안양의 대규모 땅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딸 효선 씨에게 넘길 때도 부동산 신탁회사를 애용했습니다. 재용 씨에게 오산 땅을 넘겼던 2006년 12월, 효선 씨에게는 안양의 땅을 주겠다는 내용의 처분신탁 계약서를 한 신탁회사와 체결했습니다. 처분신탁 계약은 안양 관양동의 땅을, 콕 찍어서 전두환의 딸에게 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못 팝니다. 그러고 보면 2006년 12월은 이창석 씨가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 자기 명의로 돼 있던 경기도 오산과 안양의 대규모 부동산을 전두환의 자녀(재용, 효선)에게 넘겼던 시기입니다. 모두 증여입니다.
부동산 신탁회사를 이용하는 이 과정. 이걸 지켜보고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사람이 재용 씨입니다. 재용 씨는 전두환의 다른 자녀들(재국, 재만, 효선)보다 처남 이창석 씨와 금전적으로 끈끈하게 얽혀 있습니다. 부동산 신탁도 그렇게 얽히는 과정에서 전수받은 것 같습니다. 일단 서울 이태원동에 있는 자신의 고급 빌라 3채에 실무 적용했습니다. 2008년 빌라를 부동산 신탁회사에 맡겨버렸습니다. 이창석 씨가 땅을 맡겼던 곳과 같은 신탁회사입니다. 이 씨가 오산과 안양 땅으로 계약한 처분신탁은 아니고, 이건 '담보신탁'이라는 것입니다.
담보신탁은 재용 씨가 채무자에게 빚 갚을 능력을 신탁회사가 담보해준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태원 빌라의 소유권이 신탁회사에 넘어가고, 재용 씨가 나중에 빚을 갚지 못하면 신탁회사는 이걸 공매에 붙여 현금화하고, 재용 씨 대신 채무를 해결해주게 됩니다. 재용 씨는 상환 능력을 담보해 대출받기가 쉽고, 채권자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재용 씨는 2006년 비엘에셋을 설립한 뒤 서소문 재개발 사업 등에 뛰어들면서 대출을 많이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이태원 빌라에 담보신탁을 걸어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담보신탁 역시 처분신탁처럼 빌라의 소유권이 신탁회사로 넘어가버리기 때문에 "빼앗길 염려가 없다는" 게 장점입니다. 전두환의 은닉 재산을 찾는 입장에서는? 역시 빼앗을 방법이 막막하다는 게 단점입니다. 재용 씨가 아버지의 은닉 재산을 현금화하고 이걸로 빌라를 구입했다는 걸 기어코 입증한다고 해도, 빌라를 환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건 신탁회사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부동산 신탁이라는 제도는, 불법 은닉 비자금을 종자돈 삼아 지금껏 호화 생활을 누리고 있는 전 전 대통령 일가에 꽤 유용한 법적 방패가 되고 있습니다.
국회 법사위가 '전두환 추징법'을 통과시키면서, 이 법적 방패는 뜻이 깊어졌습니다. 개정안은 추징 시효를 늘리는 것과 함께 제3자가 불법 재산이라는 걸 알고 받았으면 이것도 환수할 수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즉 재용 씨 재산도, 처남 이창석 씨 재산도, 모두 검찰 사정권 안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그들에게 화들짝 놀랄 만한 소식입니다. 지금까지는 '전두환' 꼬리표가 달려야만 환수할 수 있었는데, 이제 꼬리표는 상관없다는 거니까요. 부동산 신탁회사라는 법적 방패가 추징을 피할 수 있는 더욱 중요한 수단이 됐다는 것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등기부등본에 투명하게 드러나긴 하지만, 추징금 환수에 저항할 수 있는 시간을 간단하게 벌 수 있습니다. 한쪽은 파헤치고, 한쪽은 은닉하는 숨바꼭질은 끝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