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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미국과 탈레반이 손을 맞잡는다(?)…역사의 아이러니

윤창현 기자

입력 : 2013.06.20 11:30

시작된 미-탈레반 평화회담…어디로 가나(?)


9.11테러의 기억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국제정치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21세기 역사의 물줄기를 테러의 공포와 전쟁의 광기로 뒤틀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당사자들은 정말 영원히 악수를 못할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본토를 침략당한 적 없는 미국의 심장에서 벌어진 9.11테러의 주범 빈 라덴을 숨겨준 탈레반의 본거지 아프가니스탄. 수억 달러짜리 크루즈 미사일로 파괴하려는 탈레반 전사의 텐트가 십 달러도 안되는 건 그 당시 미국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 겁니다.

무너져 내린 초강대국의 자존심과 들끓는 국민감정은 드러나기 시작한 적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 무한의 군사적 옵션을 승인하도록 했고, 그 결과 탈레반 정권은 전쟁 발발 2개월만에 무너지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개시하기 전에 많은 전문가들은 과거 소련이 그랬던 것 처럼 미국도 수렁에 빠져들 것이라고 예언했고 이 예언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습니다. 험준한 산악지형에 숨어든 탈레반은 뿌리깊은 반 외세 감정과 아프간 중앙정치의 혼란상을 틈타고 곳곳에서 테러 공격을 감행하며 다시 가지를 뻗치기 시작합니다. 전쟁 발발 십여년 지난 지금, 그들의 세력은 수도 카불을 제외한 대다수 지역을 장악할 정도로 회복된 상태입니다.

탈레반미국은 왜 탈레반과 협상하려 하나(?)

그리고 이 와중에 터진 미국의 금융위기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 미국의 아프간 전략을 뿌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아프간 전쟁을 시작으로 전개된 대테러전쟁은 막대한 전비조달을 위해 제로금리에 가까운 양적완화를 지속하도록 만들었고, 이는 결국 필연적인 거품붕괴로 이어져 밑빠진 독에 물붓는 식으로 버텨오던 아프간 전선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제기하게 만들었습니다. 위기의 국면에 당선된 오바마는 국내의 거센 반전여론을 등에 업고 단계적인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계획하게 되고 이후 안정화 계획을 현실화하기 위해선 화해가 불가능할 것 같던 탈레반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고 평화회담의 틀로 끌어들이는 전략으로 노선을 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미국과 탈레반의 공식적인 평화회담이 12년만에 시작됩니다.

사실 탈레반이 정치적으로 성장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미국이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련 침공 시절부터 반외세 투쟁을 시작한 탈레반 조직에 미 CIA는 지속적으로 자금과 무기를 공급해 왔습니다. 문제는 소련 철수 이후 권력 공백 상태에서 행해지던 군벌들의 부정부패와 내전 과정에서 탈레반이 급속히 민심을 얻고 집권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탈레반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적용해 여성들의 노출과 사회활동, 학교교육을 금지하는 극단적 정책으로 선회했고, 바미얀 석불 파괴 등으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게 되죠. 특히 이후 테러조직 알 카에다와 손 잡으면서 더 적극적인 반미노선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 미국의 이런 대외전략의 실패는 이라크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적국이던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후세인 정권에 막대한 지원을 퍼부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대테러 전쟁에서 이라크가 악의 축으로 지목되면서 미국은 자신이 지원했던 후세인마저 제거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9.11테러로 시작됐던 미국의 대테러 전쟁은 테러응징이라기 보다 ‘배신과 보복’의 컨셉트가 더 어울리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패한 중동전략...출구 전략의 한복판 '평화회담'

결국 이번 탈레반과의 평화회담은 힘과 돈을 앞세워 세기를 지배했던 미국의 대외전략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의 한 장면입니다. 어제까지 적으로 총부리를 겨눴던 상대와 평화를 논의하는 자리가 그리 쉽지 않음은 분명합니다. 그래도 미국의 핵심적인 중동전략의 변화를 의미하는 이번 평화회담은 힘과 힘, 적의와 적의가 끊임없이 부딪히며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던 중동지역에 적지 않은 변화를 몰고 올 것이란 전망입니다.

시작된 평화 프로세스..곳곳 지뢰밭

물론 이번 평화회담이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 지는 전망하기 쉽지 않습니다. 우선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카르자이 대통령 정부를 협상의 상대로 인정하느냐가 문제입니다. 탈레반은 자신들이 축출되면서 들어선 카르자이 정부를 ‘미국의 꼭두각시’라며 협상 대상으로 고려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 최근 카르자이 대통령을 포함해 정부의 주요 각료들이 미 정보기관에서 엄청난 공작금(?)을 받아 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탈레반의 주장은 적어도 아프가니스탄 내에선 더 설득력을 갖게 됐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평화협상 이전에도 미국과 탈레반은 여러 차례 노르웨이 등지에서 물밑협상을 진행해 왔는 데 이번 공식 평화회담에선 일단 카르자이 정부가 배제되는 양상이고, 카르자이 정부는 이에 불만을 품고 미국과의 안보협상 중단을 선언해 회담의 돌출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또 불평등을 호소하거나 거리에서 사랑을 속삭였다는 이유로 여성을 돌팔매질로 공개처형하거나 코를 자르는 등 끔찍한 범죄를 신과 율법의 이름으로 정당화했던 탈레반이 여성평등과 종교 다양성등을 고려한 아프가니스탄의 새 헌법을 받아들일 지도 의문입니다. 또 많이 와해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알 카에다와의 연계를 어떻게 단절할 지, 또 이 모든 현안들에 합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9.11테러를 마치 문신처럼 또렷하게 기억에 새겨놓은 미국민들이 과연 협상 결과에 어떤 반응을 보일 지도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역사는 다시 화해가 불가능할 것 같은 적들을 마주 앉게 했지만, 진정한 화해가 가능할 지는 앞으로 펼쳐진 평화회담의 전개과정을 면밀히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