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일이란 배우는요. 하하하. 참 희한해. 생각이 너무 많아요. 요즘에는 보기 드문 배우죠"
영화 '고령화가족'을 연출 한 송해성 감독은 박해일이란 배우에 대해 "너무 진지해서 별나다"라고 말했다. 영화 촬영을 할 때 또는 자신의 캐릭터를 분석 할 때마다 생각의 깊이가 예상을 능가한다는 의미다.
연기력이 어느 정도 궤도에 도달한 배우는 때로는 몸에 배인 기계적인 연기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송 감독에 따르면 박해일은 연기에 임할 때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해답을 구하는 사색형에 가까운 배우다.
2000년 임순례 감독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뮤지션을 꿈꾸는 순수한 고등학생을 연기했던 박해일은 '살인의 추억'의 서슬 퍼런 살인마를 거쳐, '연애의 목적'에 욕망과 본능에 충실한 고등학교 선생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왔다.
서른일곱이 된 지금도 소년같이 맑고 깨끗한 얼굴을 간직한 그는 지난해에 영화 '은교'를 통해 70대 노시인으로 변신하는 과감한 도전을 하기도 했다. 육체와 감정을 동시에 소진한 연기를 한 탓에 진이 빠져있을 법도 하지만, 박해일은 1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왔다. 송해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 '고령화가족'으로 말이다.
'고령화가족'은 인생포기 40세 인모(박해일), 결혼 환승 전문 35세 미연(공효진), 총체적 난국 44세 한모(윤제문)까지, 나이 값 못하는 세 남매가 평화롭던 엄마(윤여정) 집에 모여 껄끄러운 동거를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천명관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에서 박해일은 실패한 영화감독 '인모'로 분했다.
"이제야 제 나이에 맞는 옷을 입은 것 같달까. 무엇보다 촬영 현장이 재밌어서 스트레스 없이 편하게 찍었다. 물론 '인모'는 많지 않은 나이에 큰 실패를 경험하고도 크게 속을 내보이는 인물이 아니라 촬영 초반 캐릭터 잡기가 쉽진 않았다. 인모가 영화의 화자이고, 감독의 눈과 목소리 대신해야 하는 역할이기도 해서 촬영장에서 늘 능동적이어야 했다. 그래서 내 촬영분이 없어도 대부분 현장에 나갔던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박해일은 충분히 자신의 몫을 해냈다. '한모'라는 캐릭터가 워낙 독특하고 재밌는 탓에 자칫 윤제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갈 수도 있었지만, 박해일은 중심 잡힌 연기로 실패한 영화감독 '인모'의 캐릭터를 잘 살려냈다.
"인모는 감독님이 만들어 주신 것도 있고, 또 평소 내 모습도 한 40% 들어가 있는 인물이다. 감독님은 촬영에 들어간 순간부터 '오감독'이라고 부르면서 내가 캐릭터에 이입하기 쉽게끔 많은 배려를 해주셨다"
'고령화가족'을 콩가루 집안처럼 보이는 5명의 가족 구성원을 통해 오늘날 '가족'의 의미를 묻는 영화다. 가족의 일원이나 이야기를 끌어가는 화자로 활약한 박해일은 가족이라는 것에 어떤 생각을 하게 됐을까.
"우리 영화를 통해 관객이 가족의 기준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가 생길 것 같다. 영화 말미 박근형 선배님과 내가 라면 먹는 신이 나오는데 가족의 개념을 새롭게 집어주는 결말이 아닌가 싶다. 가족이라는게 단순히 혈연 관계에 의해 맺어지는게 아니라 같이 먹고 자고 부대끼는 것 그것도 가족이 아닐까 싶다. '고령화가족'은 어떻게 보면 가볍게 보일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극중 가족들이 지지고 볶으며 사는 과정을 보며 우리네 가족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번 영화에서 박해일은 연기뿐만 아니라 캐스팅 디렉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윤제문과 공효진 캐스팅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박해일은 한모 역과 미연 역에 두 배우를 강력 추천했다.
"윤제문 선배랑은 99년 4월경 1년 정도 연극을 함께 했었다. 동고동락하다시피 1년을 보내다 보니 서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고령화가족'의 시나리오를 읽고 '한모 역은 제문 선배가 하면 딱 맞겠다'싶었다. 내 예상대로 너무 멋진 연기를 펼치셨고, 이 영화로 정점을 찍은 것 같아 무척 기쁘다"
알려졌다시피 박해일 연기의 뿌리는 대학로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면서 박해일은 4번이나 가사 휴학(가정형편 곤란 또는 기타 개인 사정에 의해 학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경우 하는 휴학)한 끝에 대학을 관둬야 했다.
그리고 우연히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다 아동극 뮤지컬 단원에 지원하게 됐고, 얼떨결에 대학로에 입성하게 됐다. 1년 반 동안 아동극을 하면서 연기를 배운 뒤 본격적으로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2년 만에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그야말로 혜성처럼 충무로에 데뷔했다.
그에게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자 "모르겠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꿈'이란 단어와 친하지 않았다. 하물며 초딩학교 때 친구들 앞에 나와 한 명씩 자신의 꿈을 이야기 할 때도 난 머뭇머뭇하다가 결국 대답을 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이어 "돌이켜보니 배우로 살아온 10년이라는 기간이 참 길다고 생각한다. 20대 초반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뭔가 하고 있는 것이 연극이었다"고 덧붙였다.
'꿈'에 없었다는 그가 '꿈'을 발견하게 되고 구체화 시킨 계기가 있었다. 그는 "아동극 할 때였는데, 공연을 앞두고 포스터를 붙인다고 대학로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때 한 신문사 사옥 맞은 편 한 기념관에서 유달영 시인의 '그대 아끼게나 청춘을'이라는 시를 읽었다"면서 "그때는 연극을 하면서도 막막함을 느끼고 있을 때였는데 '오늘 하루도 큰 뜻을 품고 젊은 하루를 뉘우침 없이 살게나'라는 문구를 보고 '그래 더 가보자. 뭐가 됐든. 버텨보자' 이런 결심을 했던 것 같다"고 특별한 의미의 에피소드를 밝혔다.
박해일은 '괴물', '최종병기 활', '이끼', '연애의 목적' 등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으면서도 흥행에서도 큰 성공을 거둬왔다. 특히 충무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감독들이 아끼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흥행은 다 감독님의 덕이다. 그동안 해온 작품들이 시나리오 안에서 내가 뭔가 해볼 여지가 많은 캐릭터였다. 감독님이 날 선택해주셨고, 난 그저 재밌게 찍은 것뿐이다"
박해일은 올해로 데뷔 13년 차가 됐다. 배우로서 살아온 지난 10여 년에 대한 중간점검을 해달라는 말에 그는 "난 아직 반환점을 못 돌았다. 아니 반환점이 어딘지 헤매고 있는 배우"라면서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2년에 1편꼴로 작품을 내놓으며 신중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박해일은 "내심 속도 좀 내볼까 할 때도 있지만, 이게 내 빠르기인것 같다"며 서두르기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활동 방식을 택할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의 연기 활동에 대해 "작업을 해봤던 감독이든, 새로운 감독이든 하려는 이야기에 공감되고 소통이 잘되면 작품에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면서 "지금 내 속도대로 꾸준히 하기도 쉽지는 않다. 시간은 가만히 있어도 가는 것인데 그동안 축적된 경험치를 가지고 깊고 넓게 '영화'라는 우물을 파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파고자 하는 영화의 우물이란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박해일은 그런 영화가 나타난다면 지금처럼 장르나 캐릭터를 가리지 않고 출연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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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사진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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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