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에 일이 터졌다. 예고되었던 일이다. 갈등의 씨앗이 커지면 어떤 불상사가 벌어지는지 밀양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송전탑 공사 재개를 앞둔 지난 주 목요일 밀양시 상동면을 찾았다. 주민대책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는 김영자씨를 상동역 앞에서 만났다. 트럭을 한 손으로 너무나 익숙하게 운전하면서 밀양에서 벌어진 일들을 전해주었다. 불소통이 불신을 낳고, 불신은 사람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비닐하우스 옆 송전탑 예정지에서 만난 주민은 송전탑이 들어서면 농사를 지을 수 없을 거라고 하소연했다. 키우는 감나무가 다 죽을 거라는 얘기였다. 송전탑이 전자파를 뿜어내면 벌이 활동을 못하고 그러면 꽃나무와 열매가 결실을 맺지 못할 거라는 주장이었다. 전자파가 실제로 벌을 쫓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 노인은 벌들의 멸종을 굳게 믿고 있었다.
윗 동네 과수원에서 만난 주민들은 저 멀리 경상북도 사람들을 원망하고 질시했다. 밀양시는 경상북도 청도와 경계를 나란히 한다. 송전탑은 원래 경상북도 청도를 관통하게 되어 있었으나 권력의 힘에 밀렸다고 입을 모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경북 경산-청도 지역의 국회의원이 친박 실세로 통하는 최경환 원내대표 아니던가? 그가 술수를 부려 청도를 지나야 할 송전탑을 힘없고 백없는 경남 밀양으로 밀어냈다고 믿는 주민들이 적지 않았다. 물론 최경환 의원이 송전탑 문제에 관여했는지 안했는지, 아무런 증거는 내밀지 못하면서.
밀양 시민들 사이 갈등의 골은 아물기 힘들 정도로 악화돼 있었다. 정부가 내미는 보상책과 마을 발전기금을 받아들이고 실리를 취하자는 주민도 상당수 있다. 그 사람들과 반대 주민의 갈등은 급기야 몸싸움으로까지 번지고 있었다. 송전탑 사태 이전까지 마을 주민의 신임을 안고 밀양시 이장협의회 회장까지 지낸 박 아무개씨는 지역언론에게 송전탑을 수용하자고 말했다가 봉변을 당하고 있었다. 반대파들 사이에 박씨는 이미 '그놈, 죽일놈'으로 불리고 있었다. 마을이 찢기고 갈린 것이다.

지역의 중요기관으로 주민들과 함께 했던 한전 지사는 점령군의 사령부 쯤으로 격하돼 있었다. 밀양 송전탑 특별대책반에 차출돼 밀양 근무를 명 받은 한전 직원들은 숙소가 없어 하루하루 이 여관, 저 여관을 전전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렌트카인 '허' 넘버 차량을 타고 다니는데 주민들은 '허' 번호판이 나타나면 '저 한전 놈들' 하며 곱지 않은 시선을 쏘아 댔다. 뿐만 아니다. 한눈에 봐도 송전탑은 주민들의 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송전탑 건립 계획이 나온 뒤 고향 땅을 사려고 밀양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고, 조상에게 물려 받은 땅을 담보 삼아 농사 자금을 빌렸던 주민들은 돈 구할 길이 없어졌다고 한숨 지었다. 가치가 뚝 떨어질 땅을 은행이 받아 줄 리 없으니까.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지나게 될 선에 따라 마을의 희비가 엇갈리고, 주민이 갈라지고, 고향을 지키는 노인들의 마음에 멍이 들고 있었다. 화가 났다. 이 지경이 되도록 정부와 한전은 무엇을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문제가 터진 뒤 보상안을 제시하고 주민을 달래봐야 그건 너무 늦은 거다. 유언비어가 퍼지기 전에, 외부세력이 개입하기 전에 주민들에게 바른 정보를 주고 설득하는 작업을 했어야 옳았다. 불소통으로 인한 불신이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정부는 초심으로 돌아가 주민들을 만나기 바란다. 상처가 깊은 만큼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그것만이 아름다운 고장 밀양을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