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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민연금 지급보장' 반대 위해 말 바꾼 기재부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입력 : 2013.05.08 08:28|수정 : 2013.05.08 09:28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정부가 연금 지급을 보장하는 내용을 국민연금법에 담기 위한 노력이 어제 최종적으로 무산됐습니다. 정부와 여당이 합의하고 여야가 의견 일치를 본 법안인데 국회 통과에 실패한 것입니다.

새누리당이 기획재정부의 거센 반대에 뒤늦게 법안을 뒤집었기 때문인데요. 기재부의 반대 논리는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면 연금 지급을 위해 쌓아야 하는 돈, 즉 충당액이 국가 채무로 잡혀 국가 신인도가 떨어진다"는 겁니다. 맞는 말일까요?

“공적연금 충당액은 부채 아니다”라던 기재부

기재부가 작년 6월 1일 낸 보도자료를 보면 이렇습니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의 충당부채 342조원은 국가부채가 아니다” “연금 충당액은 세금을 거둬서 갚아야 하는 국가채무와는 성격이 다르다” “연금 충당액은 사망률, 물가상승률 등 각종 (불확실한) 가정에 따라 산출된 (불확실한)것이어서 직접적인 국민부담 아니다” 이미 국가가 지급 보장한다고 명문화된 공무원연금, 군인연금의 충당액은 국가채무가 아니란 설명입니다.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지난 2010년 8월 23일과 10월 5일에도 보도자료를 내서는 “공적연금은 우발적, 미확정 채무로서 국가 채무가 아니다”라고 확인했습니다. 근거는 IMF와 OECD의 국제 기준입니다. 국민연금 지급을 국가가 보장한다고 해도 국가채무로 잡히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기재부가 국민연금 국가 지급보장 명문화를 반대하는 논리와 정반대의 자료를 기재부 스스로 발표한 것입니다. 작년 아니면 올해 기재부는 거짓말을 한 모양새입니다.
기획재정부 기재부
“국민연금을 지급보장하는 나라는 없다”던 기재부

기재부는 또 국민연금 지급보장을 명문화한 나라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연금 제도가 가장 비슷한 일본도 국민연금 지급보장을 명문화했습니다. 젊은 세대로부터 세금을 거둬서 노인들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독일도 국가가 지급보장한다고 법으로 돼있습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괜히 기재부가 다른 속셈을 숨기고 있다는 억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곧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려야 하는데 법에 국가 지급보장 조항이 있으면 국민들이 보험료 인상안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란 겁니다. 민간 보험사와 관련된 흉흉한 소문도 국회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기재부의 명쾌한 해명과 토론이 필요한 때

이런 혼란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기자는 기재부 홍보담당관실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국민연금 국가 지급보장과 국가채무 논란 때문에 전화했다”는 질문에 대답이 가관이었습니다. “어디 전화 거셨습니까?” “여기는 기재부인데 기재부에 전화하신 거 맞습니까?” “국민연금은 복지부 관할입니다.” 기재부 홍보담당관실의 현실 인식 수준입니다.

홍보담당관실을 어렵사리 설득한 끝에 담당자와 전화 연결이 돼서 답을 들었습니다. “공적연금 충당액은 국내법상 또 국제 회계기준상 국가부채가 아닌 것은 맞다” “하지만 국민연금 지급보장을 명문화하면 충당액이 드러나게 돼 국제신용평가사들이 우리나라의 신인도를 낮게 매길 우려가 있다”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작년 정부가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충당부채를 342조원이라고 발표했을 때 국가 신용도는 되레 올랐습니다. 뻔히 있는 줄 아는 부채를 투명하게 공개했으니 국가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것이 신용도 상승의 이유입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공무원연금, 군인연금과는 다르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입니다. 국민연금 보험료는 올리지 않고 연금급여를 덜 받게하는 현행 국민연금 제도는 운영에 한계가 있는데도, 정치적 부담 때문에 보험료를 못올리고 있어 제도 자체가 신용평가회사들의 불신을 사고 있다는 겁니다. 제도는 손대지 못하면서 지급보장 명문화만 밀어붙이면 신용등급 하락이라는 불똥이 튄다는 것이 기재부의 설명입니다.

기재부의 해명이 가정이고 주장이긴 하지만 여러 전문가들이 토론은 해볼 만한 사안으로 보입니다. 일국의 기재부가 하는 말인데 설마 완전히 거짓이겠습니까. 기재부는 자신들의 생각이 맞다면 국민들에게 당당히 설명하고 또 설명해서 정면돌파해야지 지금처럼 은근슬쩍 말 바꾸고 두루뭉실 넘어가려 해서는 안됩니다. 기재부는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린 것도 모자라 국민연금 제도 자체의 불신을 키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