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뉴스 > 사회

제주영어도시 국제학교 학교폭력…방관 논란

입력 : 2013.05.07 16:35|수정 : 2013.05.07 16:35

우리 교육당국 "관할 밖"…피해측 적극 개입 요구


최근 제주영어교육도시 국제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학교폭력을 당해왔다는 학부모의 호소가 알려지며 국제학교가 학교폭력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토록 마냥 지켜만 봐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학부모는 학교 측의 해결이 적절치 않았다며 117 학교폭력신고센터와 교육 당국에 학교폭력 사실을 알렸으나 일선 학교의 학교폭력 문제를 맡는 우리 교육당국은 관련법(제주특별자치도 설치와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초중등교육법 등)에 따라 국제학교 운영에 직접 개입할 수는 없어 학교 자체적 해결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아이가 1년여간 학교폭력 당했어요" 호소

제주영어교육도시 국제학교의 학교폭력 문제는 한 학부모의 호소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제주도교육청 홈페이지에 지난달 30일자로 제주 A 국제학교 9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 B군이 학교폭력과 괴롭힘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지난 6일 게시된 글에는 아이가 괴롭힘을 당한 내용을 적은 일기장 사진이 올라 있다.

일기에는 친구들이 성기 관련 발언으로 놀리고 성적 욕설을 했으며 음식을 빼앗아 먹고 '도촬'(몰래 사진을 찍는 행위)하는 등 괴롭혔다는 B군의 하소연이 구구절절 적혀 있다.

B군 아버지는 "아이가 2011년 9월 입학한 이후 가해 학생과 룸메이트였고 학기초에 트러블이 있었지만 학교 측에서 조치해 잘 지내는 줄만 알았다"며 "아이가 1년반 동안 어디다 말도 못하고 괴롭힘을 당한 걸 생각하면 가해 학생들이 용서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B군 부모 측은 "학교 측은 사안을 확인한 뒤 가해 학생들에 사과하게 시키고 수습 노력을 했다지만 가해 학생들은 그 이후에도 아들을 협박했다"며 학교 측에서 기숙사방 재배치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B군이 더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학교 측은 가해 학생들에게 일정 수준의 징계를 내리겠다고 했지만 피해 학부모 측에서는 징계가 너무 가볍다며 B군이 학교생활을 다시 할 수 있도록 가해학생 강제전학 등 더욱 강력한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편 지난달 17일 117 센터를 통해 사안을 접수한 서귀포경찰서도 조사에 착수, 7일 학교를 찾아가 해당 학생들의 진술을 확보하는 등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 국제학교 자체적 노력 '실효성 있나'

현재 국제학교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할 경우 도교육청은 관련법상 직접 개입하지는 못한다.

학교 측에서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고 사안을 은폐하는 등 심각한 문제가 파악될 때만 시정 명령 등을 취한다는 입장이다.

도교육청 국제학교 담당자는 "국제학교는 관계법상 도교육청에서 관할하는 학교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으며 운영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주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법을 적용할 수 없고 도교육청에서도 직접 개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본교에서도 자체적으로 점검도 하고 학교폭력 예방 교육도 하는 등 자정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심각한 문제점이 발견된다면 도교육청 차원에서 조치를 취하겠지만 일단 학교 차원의 해결에 맡기고 상황만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제주영어교육도시에 문을 연 3개 국제학교에서도 학교폭력이나 괴롭힘 등에 대해 자체적으로 규율을 마련해 사안 발생시 적용하고 있으며 학교폭력이나 괴롭힘을 막기 위한 교육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학교는 한달에 한번씩 주기적으로 학교폭력 예방 교육을 진행하며 괴롭힘이나 왕따를 해선 안된다는 내용의 역할극을 하고 핸드프린팅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다른 학교도 학생들 간에 문제나 갈등이 발생할 경우 일정 절차에 따라 교사가 아이들과 면담하고 화해를 조정하며 아이들의 행동을 기록, 점검하는 등 구체적 방안이 마련돼 있으며 뉴스레터 등을 통해 학교폭력 예방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안처럼 국제학교의 자체 해결에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외부에서 개입할 수 없어 사건 은폐나 부실한 대처를 적발하고 시정할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특히 국제학교 재학생 대다수가 한국인 학생들이며 한국 땅에 세워진 학교인 만큼 우리 교육당국에서도 마냥 손을 놓고 지켜봐선 안되며 이들을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 일선 학교의 경우 학교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꾸려지는 위원회에 교사 외에 학부모와 외부 인사 등도 포함시키고 있으며 제주교육청의 경우 객관적 문제 해결을 위한 '학교폭력 분쟁 컨설팅 지원단'도 꾸려져 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국제학교는 외국 본교의 교육과정과 운영방침을 대부분 따르고 있어 우리나라 실정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며 "아직 설립 초기인 만큼 시간이 지나며 일정 부분 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주지부는 국제학교에서 발생한 학교폭력 사건은 자체적으로 조정하기 쉽지 않은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교조는 "국제학교는 학교운영위원회도 권장사항이며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나 분쟁조정위원회 같은 내부 조정 시스템도 없다"며 교육감의 지도·감독권을 강화, 비교육적인 운영 행태에 대해 교육당국이 개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학부모들 "학교폭력 피해 국제학교 보냈는데…"

한편 이런 사실을 접한 국제학교 학부모들은 학교폭력과 왕따 등 우리나라 공교육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피하기 위해 자녀를 국제학교에 보냈는데 국제학교에서마저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제주 국제학교 학부모 인터넷 카페에는 '아이가 도움을 청하지 못했더라도 이 긴 기간동안 아이의 고통을 눈치 채지 못했다면 사감 등 학교 당국은 직무유기다', '장기간 폭력 사실을 몰랐다는 학교측에 불신이 생긴다' 등 학교 측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반응들이 올라왔다.

'국내 학교의 학교폭력이나 입시경쟁으로 인한 폐해 등을 내 아이에게 겪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간절해 제주 국제학교를 선택했는데 이런 일이 은밀히 이뤄지고 있다니 놀랍다'며 실망하는 반응도 여럿 올라왔다.

국제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아들을 이웃 국제학교로 전학시켰다는 한 학부모는 연합뉴스에 보낸 메일을 통해 "학교 측에서 괴롭힘을 당한 아이를 위해 도움을 주지 않고 별일 아니라는 반응을 보여 결국 아이를 전학시켰다"고 밝혔다.

이 학부모는 "드러난 사안 말고도 더 많은 괴롭힘이 발생하고 있으며 학생들이 인근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치거나 학교 차원의 단체 여행에서 흡연, 음주를 하는 등 문제가 많다"며 더 이상 고통받는 학생이 나오지 않도록 관련 당국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달라고 덧붙였다.

(제주=연합뉴스)
SBS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