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사회

[취재파일] "빈병 안 받아요" 보증금 700억은 어디로?

박세용 기자

입력 : 2013.05.03 14:31


“빈병 바꿔 주세요!” 슈퍼마켓 가서 이 말을 해봤느냐, 안 해봤느냐, 이것도 세대를 가르는 일종의 기준이 된 것 같습니다. 빈병 보증금 제도가 시작된 게 1985년이니까, 벌써 28년째입니다. 초등학생 때 비닐봉지에 넣은 빈병 들고 슈퍼마켓에 가본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걸 보면, 저도 빈병 수거의 관점에서는 연식이 좀 된 건가요. 손가락에 빨간 자국 나도록 빈병 가득 들고 가면, 과자 두어 봉지는 바꿔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도 보증금 환불에 감사하며, 슈퍼마켓에 얼마 안 되는 과자 매출이라도 올려주자는 소비자의, 부모 세대의 공감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엔 빈병 바꿔달라고 하는 걸 못 봤습니다. 빈병 들고 골목길 걸어가는 아이의 풍경도 사라졌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빈병 교환을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분위기가 소매업계 전반의 분위기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즉 빈병을 안 받으면, 3백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빈병을 받긴 받는데, 자질구레한 단서 조항이 따라다닙니다. 슈퍼마켓에서 멋대로 요일을 정해서 받거나, 얼마 안 되는 보증금 가격을 후려쳐 일부만 주곤 합니다. 50원짜리 맥주병은 30원, 40원짜리 소주병은 20원만 돌려주는 식입니다.

슈퍼마켓도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일손도 달리고, 보관 장소도 마땅치 않습니다. 특히 빈병을 받아야 할 경제적 동기가 없습니다. 빈병을 받고, 보증금을 돌려주고, 빈병을 보관했다가, 도매상에 빈병을 넘기고, 병은 무겁기만 하고, 일은 많은데 돈벌이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수고비’도 없다는 얘기죠. 물론 주류 제조업자가 도매상에 지급하는 ‘취급수수료’, 즉 수고비가 있고 도매상이 취급수수료의 55% 이상을 소매업자에게 넘겨줘야 하지만, 이걸 제대로 지키는 곳이 흔치 않습니다. 도매업자가 저지르는 일종의 배달 사고, 형법상 배임죄입니다. 취급수수료의 존재를 모르는 슈퍼마켓 사장님도 많습니다.

이미지현재 소매업계에서 빈병 흐름은 교통 정체 수준입니다. 새빨갛게 꽉 막혀 있습니다. 빈병은 대신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선 아파트 주민들은 요일을 정해 재활용품 수거하는 날 길가에 내놓는 게 보통입니다. 그럼 단지와 계약한 재활용업체나 고물상에서 가져갑니다. 빈병을 kg당 얼마, 이렇게 쳐주는 곳도 있고, 아니면 빈병의 양과 무관하게, 아파트 주민들이 매달 얼마씩을 받는 곳도 있습니다. 방식이 어떻든지, 주민들은 보증금을 포기하고, 빈병을 대단히 싸게 넘기는 셈입니다. 그걸 병당 40원, 50원, 이렇게 계산하면 아파트 단지의 공동 수입이 훨씬 늘어날 것입니다. 빈병이 소독만 해서 다시 쓰는 '재사용'이 아니라, 깨져도 다시 만들면 되는 '재활용' 대상이 된 결과입니다.

주택가 주민들은 약간 다릅니다. 아파트는 빈병 값을 제대로 못 받고, 싸게 넘길 뿐이지만, 주택가 사람들은 보증금을 완전히 포기하고 있습니다. 지자체의 재활용품 수거 차량이 돌아다니는 날, 길가에 그냥 내놓는 겁니다. 몇 푼 안 되니까, 보증금을 버리는 겁니다. 이런 빈병들은 지자체와 계약을 맺고 일하는 집하장에 모인 뒤에 공병상 등을 통해서 유통됩니다. 이 과정에서 깨진 건 녹여서 새 병을 만들게 되고, 안 깨진 것들에는 계속 보증금이 붙어서 다니기 때문에, 집하장 운영 업체는 길가에서 돈을 줍고 다니는 셈입니다. 지자체 차량이 지나다니기 전에 서둘러 공병을 가져가는 노인 분들도 계신데, 고물상과 공병상을 거치게 되는 향후 유통 경로는 비슷합니다.

길가에 버려지는 보증금은 얼마나 될까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계산해볼 수 있습니다. 한국용기순환협회의 추정치입니다. 1년에 판매되는 가정용 소주가 12.9억 병. 소매상이 받아줘서, 도매상으로 들어가는 건 2.9억 병이고, “빈병 안 받아요” 때문에 이탈하는 소주병이 10억 병입니다. 아파트와 주택가 주민들이 내놓는 양입니다. 이 보증금이 4백억 원입니다. 같은 식으로 길가에 버려지는 맥주병 보증금은 1년에 335억 원입니다. 소주와 맥주병만 합치면 1년에 735억 원. 이 돈이 바로, 빈병 줍는 노인 분들과 고물상 그리고 재활용업체, 공병상의 수입 원천입니다.

그 복잡한 유통 구조를 거치면서, 빈병은 어쨌든 제조업체까지 최종 도착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소주와 맥주 등 54억 병이 출고됐는데, 주류업체로 다시 돌아온 병은 50억7천만 병입니다. 94% 정도가 돌아오죠. 회수율만 따지면, 일본이 98%, 캐나다가 98%, 독일이 95% 정도니까, 크게 낮은 수치는 아닙니다. ‘빈병=돈’이니까, 복잡한 빈병 유통업자들이 보증금을 서로 나눠 가지면서, 수거율을 매년 90% 이상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빈병 보증금 제도는 아직도 나름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상처받는’ 빈병이 너무 많다는 것. 아파트에서도, 주택가에서도, 빈병들은 마대 자루에 담겨 움직입니다. 박스에 담아 옮기면 좋겠지만, 빈병을 일일이 박스에 넣고 빼고, 사람을 쓰는 게 더 비쌉니다. 그래서 자루에 우르르 담았다가, 우르르 쏟아내고, 지자체 집하장에서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우르르 떨어지고, 박살나는 게 한두 병이 아닙니다. 1년 출고량 54억 병 가운데, 깨지는 게 5억 병에서 7억 병은 된다는 게 용기순환협회의 설명입니다. 이러면 재사용 못합니다. 다시 녹여서 새병 만들어야 하는데, 재사용하는 것보다 비싸고, 그만큼 환경도 망가집니다. 우리나라의 빈병 재사용률이 85%, 일본(94%)이나 캐나다(96%)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집하장이나 고물상이야, 깨진 병도 녹여서 새 병 만드는 업체에 팔면 그만이니까, 깨져도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죠. 빈병 수거율을 높이면서, 재사용률도 높이는 묘안 없을까요. 빈병을 깨트리지 않고 옮기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마대 자루부터 어떻게 좀 덜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재활용업체 수거 차량이나 고물상에다 자루 쓰지 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돈이 더 드는 방법을 권해봤자, 먹히지 않을 것입니다. 한 가지 대안은 이마트 10개 지점에서 운영하고 있는 빈병 보증금 환불센터인데, 이걸 다른 대형 마트로 확대 설치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슈퍼마켓보다 공간 여유도 있고, 빈병 상하지 않게 박스도 잘 갖추고 있고, 용기순환협회에서 운영하는 곳이어서, 보증금도 후려치지 않고 제값을 쳐줍니다. 이마트 성수점의 경우, 하루에 2,100병 정도가 들어온다고 합니다. 물론 ‘빈병=돈’의 흐름이 변하면 여기서 이윤을 창출해온 사람들은 정말 싫어하겠지만, 아이들 경제 교육도 시키고, 환경도 보호하는 데는, 썩 괜찮은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