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프'(Pope)라고 불리는 교황은 사도 베드로의 정통성을 잇는 가톨릭교회의 최고 지도자이자 로마의 주교다.
올 초 베네딕토 16세의 자진 사임으로 교황이 국내 매체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지만, 가톨릭이 국교도 아니며 기독교와 불교보다 신도 수가 적은 우리나라에서 '교황'이라는 단어는 다소 낯설 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 사회파 감독으로 유명한 난니 모레티의 신작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는 "발코니에 나가서 인사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새로 선출된 교황의 이야기를 그려보면 어떨까?"라는 감독의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전 세계 12억 명에 달하는 가톨릭 신자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교황은 '신의 대리자'로서 기도와 행정 업무를 해야 하는 힘든 자리이기 때문에 교황직에 오르고 싶어하기보다 거부하는 추기경이 더 많아 교황직을 선출할 때마다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는 콘클라베(가톨릭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 시스템으로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단의 선거 회)를 위해 교황청에 들어서는 세계 각국의 추기경을 비추며 시작한다. 교황의 선종 후 새 종교 지도자 선출을 염원하는 전 세계 신자들의 간절한 눈빛과 달리 투표에 참여하는 추기경들의 표정은 불안해 보이고 불편해 보이기까지 한다.
새로운 교황을 뽑는 거룩한 자리지만, 추기경들은 행여나 자신의 이름이 호명될까 노심초사한다. 결국, 장고의 시간 끝에 멜빌(미셸 피콜리 분)이 새 교황으로 선출되고, 그는 신의 뜻이라 여기며 교황직을 수락한다. 그러나 첫 공식행사인 발코니에서의 인사를 앞두고 그는 "난 못한다"며 폭탄선언을 하고야 만다.
교황의 사임은 직위를 버리고 회사를 떠나는 직장인의 퇴사 같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가톨릭 사회의 근간이 흔들릴만한 엄청난 사건이다. 바티칸은 이런 참사를 막고자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멜빌의 돌발 행동을 기도 수행에 들어갔다는 거짓말로 위장한 채 설득작업에 돌입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멜빌의 내적 갈등은 계속되고, 급기야 우울증 증세까지 보인다. 비밀리에 정신과 의사(난리 모레티 분)를 불러 상당을 받게도 하지만, 별 차도가 없자 관계자들은 외부 진료를 위해 멜빌과 외출을 하게 된다.
멜빌은 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일행 사이에서 도망쳐 나온다. 한평생 성직자의 삶이 자신의 소명이라 여기며 살았던 멜빌은 며칠간의 짧은 외유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사명의 울타리를 넘어온 멜빌은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배우'를 꿈꿨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반면, 자신의 부재가 전세계발 뉴스로 시시각각 보도되고 있는 상황을 접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의 무게는 여전히 그의 어깨를 짓누른다.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지만, 종교에 의지하지 않았던 모레티 감독은 교황이 선출되는 과정과 새롭게 선출된 교황이 엄청난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리를 떠나는 이야기를 통해 종교인으로서의 '교황'이 아닌 한 종교적 사명과 직업적 애환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인간'의 고뇌에 초점을 맞춘다.
감독은 오프닝에 교황 선출 장면을 세밀하게 그리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바티칸 내부의 풍경, 추기경들의 인간적 모습을 기발하고 유쾌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이들 역시 종교적 사명을 가진 인물이기 전에 커피와 도넛에 흔들리고, 필요 이상의 부담에 버거워하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회적 동물임을 보여준다.
세상 유랑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직분의 수락에 대한 답을 찾은 멜빌은 최선의 답으로서 긴 여정을 끝을 맺는다. 난니 모레티 감독이 선택한 결말이 영화적인지 현실적인지에 대한 혼돈이 있을 수 있지만, 감독은 이를 통해 우리가 교황에게 기대하는 것과 실제 교황이 할 수 있는 것은 다를 수 있다고 가정한다.
여든 살의 노배우 미셸 피콜리는 '멜빌' 추기경 역을 맡아 고뇌와 번뇌를 담은 진중한 연기로 진짜 '교황'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다. 감독이자 배우인 난니 모레티는 정신과 의사로 분해 타자의 시선에서 본 교황청과 추기경의 모습을 흥미롭게 전달했다. 전체관람가, 102분, 5월 2일 개봉.
ebada@sbs.co.kr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