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시간으로 어제(1일) 끝난 류현진의 4월은 화려했다.
3승 1패에 평균자책점 3.35로 에이스 커쇼와 함께 다저스 선발 로테이션의 버팀목이 됐다.
그리고 위 숫자는, 류현진의 4월이 얼마나 특별했는지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중계방송에서 투수를 소개할 때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기록은 승과 패, 그리고 평균자책점이다.
하지만 이 기록들은 투수의 기량을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다.
투수의 기량 외에 다른 요소들의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투수가 승을 올리기 위해선 본인이 잘 던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타선도 터져야 하고 수비도 도와줘야 한다.
평균자책점도 승-패 만큼은 아니지만 외부 요인에 오염돼 있다.
가장 큰 변수는 팀 수비력이다.
느림보에 돌글러브 야수들을 뒤에 두고 던지는 투수는 평균자책점도 손해를 많이 본다. 지난해 한국 프로야구에서 9승에 평균자책점 6위에 그친 류현진은, 전통적 투수 기록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 투수의 진짜 기량을 파악하고 이후 성적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팀 타격이나 수비력 대신 투수 자신의 기량이 결정적인 기록들을 눈여겨 봐야한다.
삼진과 볼넷, 홈런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이후 투수 활약을 예측하려면, 승-패-평균자책점보다 탈삼진, 볼넷-홈런 허용비율을 살피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각종 메이저리그 사이트에는 삼진과 볼넷, 피홈런 기록을 바탕으로 투수의 '진짜 성적'을 추정해 내놓는다.
(대표적인 게 FIP : Fielding Independent Pitching '수비 무관 평균 자책' 이다) 4월에 류현진은 9이닝당 10.99개의 삼진을 잡았고, 2.39개의 볼넷, 0.96개의 홈런을 내줬다.
올 시즌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9이닝당 10개 이상의 삼진, 2.5개 이하의 볼넷, 1개 이하의 피홈런을 동시에 기록 중인 선발투수는 딱 세 명이다.
디트로이트의 맥스 쉬어저와 아니발 산체스, 그리고 류현진이다. 역사적으로는 어떨까? baseball-reference.com에 따르면 1916년 이후 4월까지 5번 이상 선발 등판해 위 기준을 충족시킨 투수는 1971년의 톰 시버를 시작으로 21번 있었다.
<표1>의 명단을 보면, 모두 당대 최고의 투수들이란 걸 알 수 있다. <표1> 이 중 17명이 올스타에 선정됐다.
13명은 그 시즌 사이영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6명은 수상자가 됐다.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무려 6번의 '압도적인 4월'을 보냈고, 로저 클레멘스와 랜디 존슨, 요한 산타나가 두 차례씩을 기록했다.
이들은 해당 시즌에 평균 16.3승을 올렸다.
이들 중 신인은 아무도 없었다.
아시아 투수의 이름도 없다. 혹시 류현진이 유별나게 운이 좋았던 걸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류현진은 올 시즌 154명의 타자를 상대했다.
이들의 OPS(출루율+장타율)은 0.726이었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평균 OPS는 0.719다.
즉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평균보다 미세하게나마 나은 실력의 타자들을 상대했던 셈이다.
오히려 운이 나빴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도 있다.
'인플레이 타구 피안타율 (BABIP : Batting Average of Ball In Play)'이다.
좋은 투수의 공을 치면 안타가 될 확률이 낮을 거라는 우리의 상식과 달리, 적어도 메이저리그에서는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지 않는 한 안타가 될 확률은 투수별로 큰 차이가 없다.
만약 어떤 투수의 BABIP가 리그 평균 (0.290 내외)보다 지나치게 높다면, 그건 야수들의 수비가 엉망이었거나 타구가 하필 야수가 없는 곳에 많이 떨어진 '불운' 때문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그리고 이후 경기에서는 평균을 향해 움직이게 된다.
류현진의 BABIP는 0.320이다.
올 시즌 리그 평균보다 3푼이 높다.
다저스의 팀 수비력이 올 시즌 별로
(참조)이긴 하지만, BABIP를 저 정도로 망쳐놓을 수준은 아니다.
즉 높은 BABIP의 이유는 '불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규정이닝을 채운 113명 가운데 30번째로 높으니까 운이 꽤 나쁜 편이었던 셈이다. 결론적으로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대단히 드문 엄청난 4월을 보냈다.
그 활약은 운이 아닌 실력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지금부터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