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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외줄을 타면서 창조는 없다

김범주 기자

입력 : 2013.04.25 09:49

이스라엘 창업경제 취재기 ①


이런 상상을 한 번 해봅니다. 허공에 놓여있는 외줄을 타고 있는데 동시에 그 위에서 손짓 발짓을 해가며 춤을 추는 일이 가능할까요? 저는 못합니다. 중심 잡기도 거의 불가능한데 춤이라뇨, 자신 없습니다.

저는 지금 ‘창업국가’로 유명한 이스라엘 출장을 나와 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작은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곳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를 취재하고 있는데, 기업가와 투자자, 정부 관계자들을 쭉 만나다보니 문득 바로 저 위에 있는 ‘외줄을 타면서 창조가 가능할까’라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실 겁니다. 취재를 하다 보니 갑자기 우리나라에서 사는 게 외줄타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야깁니다. 어릴 때부터 늙은 이후까지 한 번 실패를 하면 그대로 낙오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초등학교 가기 전부터 영어로 말 할 줄 알아야 하고, 국제중학교를 갔다가 외고를 간 뒤에 의대를 노려야 합니다. 차선책으로는 좋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 대기업에 취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한 눈 팔지 말고, 정신 놓지 말고 임원, 더 나아가 사장까지 노리면서 줄타기를 이어가야 합니다.

사업도 마찬가집니다. 자기가 가진 돈 혹은 가족 자금까지 다 쏟아 부어 사업을 했다가 망할 경우, 신용불량자가 돼서 재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보니 안전하게 보이는 사업, 그러니까 프랜차이즈 음식점, 편의점 같은 일에 눈독을 들이게 되죠. 결론은, 한국 사회에서는 보통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 기회를 놓치면 다음 버스는 없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러니까 홈런을 노리기보다는 안전하게 번트를 대는 편이 현명한 거죠. 새로운 건 꿈꾸기 힘든 일이죠.

그런데 이스라엘 취재를 하면서 가장 제 흥미를 끌었던 점은, 이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 번 망해도 아이디어만 있다면 두 번째, 세 번째 기회가 언제나 있습니다. 여기서는 사업을 하는 것이 외줄타기가 아니라 너른 들판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풍력 발전에 필요한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재는 기계를 만드는 회사 사장을 만났습니다. 지금까지는 몇 십 억원을 들여서 높이 백 미터짜리 탑을 풍력발전기 옆에 세워야 했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탑을 대신할 기계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고안해 낸 겁니다. 이 사람에게는 이 회사가 세 번째 창업이었습니다. 두 번째 창업했던 회사는 3년 전, 5 백억원에 팔아 넘겼습니다.

이 사장에게 물었습니다. 왜 창업했느냐고 말이죠. “큰 회사에 가면 시키는 일만 해야 하고 미래가 뻔하다. 나는 그런 삶이 싫었다. 내 아이디어가 있으니 구체화하고 싶었다. 창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다 실패해서 있던 돈까지 날리면 어쩌려고 하느냐고 말이죠. 답은 이랬습니다. “실패는 두렵지 않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그동안 쌓았던 기술로 다른 사업으로 연결할 수도 있고, 투자자들도 그런 것을 원한다.”고 말이죠. 그러면서 “단 한 번 기회가 있다면 누가 창업을 하려고 하겠냐, 우리는 그런 문화가 아니다”고 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실제로 작용하는 나라라는 거죠.

남의 돈을 끌어 쓰는 사업가야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 회사에 투자를 해야 하는 펀드 업체 말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벤처 펀드 운영자를 만나 물었습니다. 실패한 사업가에게 또 투자 하느냐고 말이죠. 그랬더니 대답이 걸작입니다. “저는 실패해보지 않은 사업가에게는 투자하지 않습니다”라는 겁니다. “실패를 해본 사람은 실패하지 않는 법을 안다”고 했습니다. 역설적이죠. 최근에 자기가 투자한 회사가 아주 큰 성공을 거뒀는데, 그 사장만 해도 이미 두 번 사업을 속된 말로 완전히 ‘말아먹은’ 사람이었답니다. 그런데 아이디어가 있고 사업가 마인드가 있어서 투자를 계속 했고, 결국 세 번째 큰 성과를 얻어냈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창조경제’란 말이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그런데 다시 묻고 싶은 말은, 패자부활전이 없는 외줄타기 문화에서 과연 창조적 사고와 창조적 도전이 가능하겠느냐는 겁니다. 제 생각엔 불가능합니다. 한 번만 잘못 생각해도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구렁텅이에 빠질 수 있는데 새로운 도전을 어떻게 하겠습니다. 못하죠.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섣불리 말하긴 어렵지만, 이 한 가지는 이스라엘에 와보니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기회, 세 번째 기회가 없이는 창조경제도 불가능할 것이란 겁니다. 정말 창조 경제를 원한다면, 단순히 돈을 얼마를 끌어들이고 무슨 정책을 만들고 하는 것보다는 이런 소프트웨어, 문화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정권 5년 안에 문화를 바꾸는 일은 고되지만 티가 안 나는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진짜 이 땅에 ‘창조경제’라는 것을 만들고 싶다면 반짝 성과에 매달려서는 안 될 일입니다. 국민들이 외줄에서 내려오도록, 기본에서 시작하는 자세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