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3'와 붙어도 자신 있습니다. 이 영화가 안 먹히면 전 정말 모르겠습니다"
시사회 전 인터뷰를 자청한 강우석 감독은 자신감이 넘쳤다. 2010년 영화 '이끼' 이후 두 번째로 웹툰 영화화에 도전한 강 감독은 '전설의 주먹'을 통해 전작 '글러브'(2011)의 부진을 만회하고자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영화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기자들의 기대감을 한껏 높여놨다.
지난 27일 열린 '전설의 주먹' 언론시사회를 통해 그의 큰소리는 괜한 자신감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됐다. 강우석 감독은 2시간 33분 동안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중년의 성장담을 다이나믹하게 담아냈다. 격투신은 힘과 속도 모두 돋보였고, 드라마는 잔잔하게 보는 이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영화 '전설의 주먹'은 과거 일진으로 날렸지만, 현재의 생활에 지친 남자들이 한 무대에 올라 주먹을 겨루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이종규 작가의 동명 웹툰을 영화화했다.
강우석 감독은 원작의 어두운 분위기를 최대한 걷어냈다. 웹툰은 학창시절 주먹으로 이름은 날렸던 싸움짱들이 사회의 루저가 돼 상금 몇 푼에 치고 받는 모습을 그리면서 폭력의 무상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그 부분보다는 가족간 갈등과 화해 특히 아버지의 애환을 그려내는데 집중했다.
88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복싱에 모든 것을 걸었던 사당고 싸움짱 '임덕규'(황정민 분)'는 국수집 사장으로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아내를 여읜 덕규는 사춘기 딸에게 외면당하는 고개숙인 아빠다. 그런 그에게 전 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TV 파이트쇼 '전설의 주먹' 출연 제의가 들어온다.
또 한 명의 사당고 전설인 이상훈(유준상 분)은 친구 손진호(정웅인 분)가 사주로 있는 회사에서 홍보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성공한 샐러리맨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진호가 쳐놓은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비굴한 삶을 살고 있다. 그에게서는 출세에 대한 야욕과 더불어 기러기 아빠의 고단함이 동시에 엿보인다.
'전설의 주먹'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학창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면서 20대부터 50대까지의 관객들의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 여기에 각기 다른 삶을 살지만,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동일한 책임감을 짊어진 이 시대 아버지들의 애환을 더했다. 이는 최근 극장가의 주요 타겟으로 떠오른 중장년의 남성 관객들을 흡수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감성적 코드와 더불어 강우석 감독의 장기인 사회 문제에 대한 묘사도 과하지 않게 삽입했다. 대표적으로 경제 개발 시대의 철거 문제, 대기업과 언론사의 뒷거래, 스포츠 도박과 승부조작, 방송가 시청률 지상주의 등과 같은 이슈를 흥미롭게 다뤘다.
황정민, 유준상, 윤제문, 정웅인 네 배우는 안정적인 연기력을 바탕으로 캐릭터의 개성을 잘 살려냈다. 뜻밖에 두드러지는 것은 아역배우들의 호연이다. 성인 배우들과의 외모 싱크로율을 바탕으로 캐스팅한 아역 배우(박정민, 구원, 박두식, 이정혁)들은 인상적인 연기로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특히 성인 분량에서는 크게 돋보이지 못했던 '신재석'이라는 캐릭터는 아역 박두식이 연기할 때 반짝반짝 빛난다. 이 영화로 데뷔한 박두식은 단순무식한 10대 싸움꾼 캐릭터를 때로는 패기 넘치게 때로는 엉성하게 연기하며 영화의 웃음을 책임진다. 또 TV쇼 '전설의 주먹' 출연자에서 '임덕규'의 매니저로 변신하는 '서강국'역의 성지루도 따뜻한 코믹 연기로 눈길을 끈다.
그러나 2시간 33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다소 부담스럽긴 하다. 과거와 현재의 빠른 편집, TV쇼의 화려한 격투신으로 보완하고 있지만 때때로 이야기가 늘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153분. 4월 1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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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영화 스틸컷>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