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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기 반성문' 쓰는 한석규, 이런 배우 또 없습니다

김지혜 기자

입력 : 2013.03.28 11:27|수정 : 2013.03.28 11:27


"아이고, 제가 또 이렇게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이래서 제가 인터뷰를 안 하려고 했어요"

배우 한석규에게 인터뷰는 늘 어려운 자리였다. 자신을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칭하는 그는 자꾸 무거운 얘기를 꺼내게 된다고 인터뷰 중간 마다 자책했다. 그에 비하면 한참 어린 기자지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가십성 기사에서 자유롭지 못한 연예 매체 기자들도 가끔은 깊이 있는 대화와 진중한 고민에 마음이 동할 때가 있다고. 배우 한석규의 뿌리 깊은 고민이 기자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199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의 중심엔 한석규가 있었다. 현재 충무로의 대세가 하정우라는 배우라면 90년대엔 한석규가 충무로를 지배하다시피 했다. 지금은 세계적인 거장이 된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 '초록 물고기'(1997), 한국 멜로 영화의 걸작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효시 격인 강제규 감독의 '쉬리'(1998) 같은 한 시대의 획을 그은 작품들에는 어김없이 한석규가 함께했다.

그러나 한석규에게도 부침(浮沈)의 세월은 있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석규의 영화들은 대중과 접점을 찾지 못했고, 작품 편수도 줄어들었다. 그 사이 송강호, 설경구, 김윤석 등의 배우들이 한석규의 자리를 나눠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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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3년에 한 편 꼴로 영화를 발표했지만,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지는 작품은 없었다. 그러나 2011년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로 안방극장에 '세종대왕 신드롬'을 일으키더니 올해는 '베를린'과 '파파로티'를 연이어 발표하며 충무로에서 확실한 부활을 알리고 있다.

'파파로티'는 비록 조직에 몸담고 있지만, 천부적 재능을 지닌 성악 천재 건달 ‘장호’(이제훈 분)가 큰 형님보다 무서운, 까칠하고 시니컬한 음악 선생 ‘상진’(한석규 분)을 만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한석규는 이번 영화에서 음악 선생님 '나상진'으로 분해 최고의 열연을 펼쳤다.

'베를린'에서 하정우, 류승범, 전지현의 뒤를 받치며 한발 물러서 있었던 한석규가 '파파로티'에서는 극을 이끌어나가며 감동적인 호연을 펼쳤다. 또 다른 주인공인 이제훈이 입대 후 개봉하는 악재를 맞았지만 '파파로티'는 입소문을 탄 끝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꾸준한 관객몰이를 해나가고 있다.

이 영화를 선택한 데에는 EBS에서 본 다큐멘터리가 동기가 됐다. 그는 "어느 날 학교 폭력을 소재로 한 다큐를 보는데 보는 내내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또 기성세대로서 여러 가지 생각도 들더라. 내가 하는 일로써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로를 해보고 싶었다. '파파로티'는 선생과 제자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음악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영화라 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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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가 영화를 선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야기다. 그는 "관객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느냐가 중요하다. 이야기의 힘이 있으면서도 인물 중심으로 풀어가는 영화가 있다면 그게 가장 좋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실화를 모티브로 감동을 담아낸 영화 '파파로티'와 '상진'이라는 캐릭터는 한석규의 마음을 움직이기 충분했다. 

"상진이라는 인물은 폭이 넓은 인물이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보는 순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꿈을 잃어버린 사람이 재능있는 제자를 보면서 기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질투의 감정과 동시에 동경의 마음도 일었을 텐데 '그때 저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연기를 했다. 나상진이라는 인물은 그런 면에서 아주 매력적이었다" 

'베를린'이 한석규의 영화였느냐는 질문에는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파파로티'가 한석규의 영화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한석규는 이번 영화에서 극을 완전히 장악했다. 영화 중반까지 괴팍한 연기로 웃음을 자극하고, 후반부 들어서는 누구나 갖고 싶은 마음 따뜻한 선생님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성악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학생으로 출연한 이제훈이 립싱크 때문에 엄청난 고생을 해야 했다면, 한석규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연기 때문에 적잖은 고민을 해야 했다. '리얼리티를 살리는 연기'와 '인물의 감정을 보여주는 극적인 연기' 사이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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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피아노를 못 친다. 두 세 달 만에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잘 치는 것처럼 보이는' 연기로 보완해야 했다. 영화에서 제훈이의 반주를 넣어주는 신이 많이 등장하는데 각 신마다 각기 다른 감정을 넣으려고 노력했다. 특히 후반부 '넬슨 도르마'를 반주할 때는 상진의 심경 변화를 드러내야 했다. 그래서 연주를 하면서도 액션을 많이 넣었다. 실제 피아니스트들이 보시면 좀 웃길 거다. 리얼리티는 떨어지겠지만, 인물의 감정을 액션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한석규는 최근 송중기('뿌리깊은 나무'), 하정우('베를린'), 이제훈('파파로티') 등 젊은 배우들과 작업을 연이어 했다. 세대가 다른 배우들과의 작업은 그에게는 신선한 활력이 됐다. 

"세 배우는 연기 스타일과 강점이 다 다르다. 그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 촬영장에서 후배들에게 연기에 대한 조언 같은 것을 직접 하지는 않는다. 다만 '넌 어떻게 연기를 하게 됐니'와 같은 질문을 많이 던진다. 각자의 사연의 재밌다. 그러면서 내 스스로에게 '연기를 왜 하지' 라고 자주 묻는다"

한석규가 후배들에게 '연기를 하게 된 계기', '연기를 하는 이유' 등과 같은 원론적인 질문을 많이 던지는 것은 배우라는 직업은 불가피하게 부침을 겪기 때문이란다. 그는 "연기는 배우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고통을 주기도 한다. 그 과정을 이겨내는 것이 연기다. 후배들에게 지치지 말고 두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꾸준히 인내심을 갖고 노력하라고 말한다"고 했다.

후배들에게 계속해서 열정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 스스로가 연기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던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석규는 자신의 오랜 고질병인 허리 질환을 언급했다.

"한 때는 연기하는 것에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두렵더라. 가장 큰 이유는 몸을 다쳤다. 군에서 허리를 수술한 뒤 고질병이 됐다. 수술하고 나서 완쾌가 된 줄 알았는데 2002년 '이중간첩'을 촬영하면서 다쳐서 같은 부위를 또 수술했다. 20대에는 3년 걸렸는데 40대에는 5년은 넘게 걸릴 것 같더라. 그러면서 연기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그때 무척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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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는 힘들었던 그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걸 이겨내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배우 생활을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인내심을 가지고 고통이 지나가길 기다렸던 것 같다"고 힘든 시간을 회상했다.

그 과정에서 '연기를 왜 하나'에 대한 답도 얻을 수 있었다. 한석규는 "과거에는 관객에게 뭘 느끼게 해주려고 연기를 했던 게 아니라 오로지 내가 느끼기 위해서 연기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우를 꿈꾸게 하는 것은 관객들인데 그걸 잊고 있었다. 그거 알고 모르고는 나에게는 굉장한 차이다"라고 말했다.

한석규는 다시 연기해보고 싶은 배우로 최민식을 꼽았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1990년대 드라마 '서울의 달'(1994)과 영화 '쉬리'(1998)에서 환상의 연기 호흡을 자랑했다. 

"절친한 선배지만 자주 보지는 못한다. 할리우드의 명배우 알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도 세 편의 영화 밖에 함께 하지 못했다. 그나마 '히트' 이후에는 작품 자체가 별로라 두 사람의 연기 앙상블이 돋보이지도 않았다. (최)민식이 형과 좋은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 그런 영화를 기다리고 있다"

연기생활 18년 동안 한석규는 약 20편의 작품을 했다. 평균을 나눠보면 1년에 한편의 작품은 한 셈이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한석규의 연기는 늘 고프다. 앞으로 우리는 스크린에서 한석규의 연기를 더 자주 볼 수 있을까. 그에게 물었다.

"많은 작품을 하고 싶다. 배우는 40대부터 연기에 눈이 뜨인다고 하던데 지금부터 많이 해야지. '파파로티'가 20번째 영화인데 앞으로 내가 몇 편의 작품을 더 할 수 있을까 싶다. 스무 편은 더 할 수 있을까.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잘해야지"

한석규는 어쩌면 연기를 하는 마지막 날까지도 이렇게 연기 반성문을 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뷔 20년, 연기가 일상이 될 정도로 익숙한 배우가 매일 매일 이렇게 절절한 반성문을 쓴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이런 고민 끝에 카메라 앞에 서는 한석규가 있어서 관객들은 행복하게 그의 연기를 지켜본다. '파파로티'에서 그가 부른 해바라기의 노래처럼 그는 관객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됐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사진 = KM컬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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