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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유쳔(ㅇㅠㅊㅕㄴ) 냉면을 아십니까?

박세용 기자

입력 : 2013.03.26 07:55


컴퓨터에서 ‘유쳔’이라는 글자를 치면, 자동으로 ‘dbcus’으로 바뀝니다. ‘쳔’ 때문인데, 한국어에서는 그런 유별난 모음을 잘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치읓에 ‘ㅕ’에 니은. 이 유별난 글자를 간판에 번듯하게 달아놓은 냉면집이 있습니다. 진짜 ‘유쳔냉면’입니다. 말로만 들었는데, 경기도 오산에 가보니까 진짜 있었습니다. 지나치듯 보면 한국인도 ‘쳔’을 제대로 읽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우리 뇌와 눈은 ‘천’의 이미지에 익숙하지, ‘쳔’같은 희한한 글자의 이미지는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유쳔냉면 사장님도 간판을 처음부터 그렇게 달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간판을 자세히 보니까 원래는 ‘유천’이었습니다. ㅓ에서 가로 부분을 칼로 재주껏 도려내 ㅕ를 만든 것 같았습니다. 또 간판 측면에는 ‘유천냉면’ 사장님으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덮여 있었습니다. 보기도 어렵고, 읽기도 난해한, 유쳔냉면. 이런 희한한 이름의 냉면집이 서울에 한 곳 또 있다고 했습니다. 또 그 기막힌 이름을 따라, 자신은 베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유쳔냉면의 탄생 비화는 이렇습니다. 1982년 서울 풍납동의 한 주택에 냉면집이 생겼는데, 그게 유천냉면입니다. 국물에 매콤한 양념장이 곁들여 나오는 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유천냉면이 여기저기 생겼습니다. 유천냉면 사장님이 직접 냉면 기술을 전수해줬습니다. 우후죽순 유천냉면이 생기던 와중에, 풍납동 본사는 2010년 프랜차이즈화를 선언합니다. 그때까지 생겼던 유천냉면은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길로 들어서느냐, 아니면 간판을 바꿔달고 새 냉면집을 차리느냐,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유쳔냉면은,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하긴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아예 새 간판을 달긴 아깝고, 이런 고민에 휩싸인 분점 사장님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창의적이고 해괴한 이름입니다. 유천냉면 본사에서 프랜차이즈 안 할 거면 ‘유천’ 간판을 내리라고 압박하는데, 유명한 간판을 내리긴 싫고, 상표권을 침해한다는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도 없고, '에라, ㅓ를 ㅕ로 하자.', 이렇게 된 겁니다. 덕분에 유천냉면 본사가 정한 1차 소송 대상에서는 제외됐습니다. 일단 꼼수의 덕을 봤습니다. 한국어의 오묘함입니다.

유쳔만큼의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한 곳도 유천냉면의 속을 썩이고 있습니다. 유천냉면은 마치 거대한 족보처럼, 전국적으로 유촌냉면과 우촌냉면, 육촌냉면, 우천냉면 등과 공존하고 있습니다. 마치 가족 같습니다. 어떤 곳은 냉면철인 여름에만 원래 간판 위에 ‘ㅇㅊ’ 돌림의, 유천과 비슷한 발음의 현수막을 내걸어 손님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가을이면 현수막 뗍니다. 한국어에 서투른 외국인이면 깜빡 속기 십상입니다. 유천냉면은 본업인 냉면 장사하기도 바쁜데, 이런 비슷한 상표에 법적 대응을 하느라 유명세를 치르고 있습니다.

‘유천과 유쳔’의 관계는 그래도 법적 분쟁을 피해보려는 지적 노력의 산물입니다. 소송을 감수하고, 누군가의 지명도에 무임승차하려는 시도도 흔합니다. 경기도 의정부에 가면 유명한 부대찌개 골목이 있는데, 거기 ‘오뎅식당’이라는 이름난 집이 있습니다. 맛이 담백합니다. 미군부대 근처에서 오뎅을 팔던 주인 할머니의 역사를 투영한 간판입니다. 근데 작년 3월에, 가게 코앞에 ‘원조오뎅의정부부대찌개’라는 장황한 간판의 식당이 들어섰습니다. 간판의 핵심(오뎅)을 표절한 뒤, 제목 앞뒤를 죽 늘린 방식입니다. 그것도 뭐, 나름 상표권 분쟁 소지를 줄여보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오뎅과 원조오뎅’ 사건은 끝내 법원으로 갔습니다. 50년 넘게 부대찌개를 팔아온 오뎅식당은 상표권을 미처 취득하지 않았고, 뒤늦게 생긴 ‘원조오뎅의정부부대찌개’가 상표권을 등록해놓은 애매한 상황. 의정부지방법원은 지난달 상식적인 판결을 내렸습니다. 상표권과 무관하게 오래된 ‘오뎅식당’의 손을 들어준 겁니다. 법원은 ‘원조오뎅의정부부대찌개’ 측에 간판을 바꾸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오뎅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이 부대찌개 골목을 찾아갔던 2월 22일 현재, 간판은 여전히 ‘오뎅’을 품은 채 그대로였습니다. 원조오뎅은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한때 치열했던 원조 전쟁이 시들해진 지금, 바야흐로 상표권 전쟁 시대입니다. 명성을 얻은 유천냉면과 오뎅식당. 그 명성에 쉽게 올라타려는 유사 식당들. 비슷한 이름의 식당에 몰려가는 손님을 쳐다만 봐야 하는 상황. 유사 식당의 잘못도 모두 덮어써야 하는 간판 원조의 억울함. 냉면을 먹고 나니, 부대찌개를 먹고 나니, 원래 가려고 했던 집이 아니란 걸 알았을 때 손님이 느끼는 허탈함. 물론 상표권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일단 달고 보는 간판을 막을 도리는 없습니다. 자영업자들 간의 일종의 측은지심인지, ‘프로 간장게장’ 사건처럼 주먹다짐과 폭력으로 번지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상표권 전쟁 시대의 대처법, 노장오 변리사로부터 들어봤습니다.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상표를 언제부터 썼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간판 달고 100년을 장사했어도, 상표를 특허청에 ‘먼저’ 등록해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구청에서 간판 설치를 허가해줬다고 해서, 아 끝났구나 생각하면 큰일입니다. 인터넷 도메인 선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무조건 선착순입니다. 앞서 50년 넘은 ‘오뎅식당’도 상표권 등록을 미뤄오는 바람에, 오뎅의 권리를 놓고 예상치 못한 법적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건 의정부 부대찌개 골목 70m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물리적 거리는 상표권 침해의 변수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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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유쳔냉면’은? 상표권 침해 소지가 큽니다. 등록된 상표와 똑같지 않아도 유사하면 문제가 됩니다. 만약에 이걸 영어로 ‘YU CHEON’냉면으로 간판을 달았다, 그래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커피숍 ‘TWOSOME PLACE’를 소문자로 써도(twosome place?) 소송을 피해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TWOSOME-1’ 뭐 이런 꼼수도 안 됩니다. ‘TWOSOME to YOU’ 좀 더 머리를 쓴 변종도 힘들 것 같습니다. ‘한겨울 카페’가 상표 등록돼 있는데, ‘한겨울에 카페’, 혹은 ‘영겨울 카페’라는 걸 차려도 안 되겠지요. 그럼 ‘Easy Buy’에서 ‘Easy B’ 정도만 쓰면 어떨까요. 많이 절제했는데, 그래도 침해 소지가 있다는 게 변리사 판단입니다. 정말 엄격하죠. 로고도 유사한 디자인으로 살짝 바꿔서 쓸 경우 상표권 침해가 성립됩니다.

지명과 고유명사를 결합한 경우에는 법원의 상표권 보호가 다소 느슨합니다. 예를 들어, ‘종로김밥’이나 ‘통영굴국밥’, ‘남원추어탕’ 같은 간판입니다. 고유한 지명의 상표권까지 등록해주면,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한 개인의 독점을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춘향골 남원추어탕’의 경우,‘춘향골’에 대한 권리는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앞서 ‘유천냉면’은 ‘경상북도 예천군 유천면’과 ‘유천동’처럼 지역 이름이 있어서 처음엔 상표권 등록이 반려됐다가, 나중에 등록이 된 이례적인 사례입니다. ‘유천냉면’은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 하필 ‘유천빌라’에 자리를 잡아 현재의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뉴스도 그렇고, 식당도 그렇고, 제목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