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대참사 2주년을 맞아 일찌감치 ‘탈 원전’을 선언한 독일을 둘러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독일은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한 직후 자국 내 원전에 대해 3개월 일시중지를 선언했다. 중지 기간 동안 8개 원전에 대해 안전평가를 수행했다. 약 13억 달러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독일 정부가 취한 조치다. 여기에 더 나아가 원전 계속운전 정책을 취소했고, 오는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의 가동을 중단하기로 결정한다. 이른바 ‘탈 원전’을 선언한 것이다. 그들은 어떤 대안을 가지고 원전의 혜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일까?
지난 11일 오후 방문한 독일 펠트하임에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베를린 남쪽으로 80킬로미터 쯤 떨어진 옛 동독 마을 펠트하임은 이름난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마을이다. 45가구, 145명이 사는 펠트하임은 전력과 난방 등 필요한 에너지를 자급자족 한다. 정확히 말하면 풍력과 태양열을 이용해 생산한 전기를 전력회사에 판매하고, 전력회사로부터 다시 값싸게 전기를 공급받아 사용하고 있었다. 난방은 축분 등 바이오매스를 이용해 생산한 에너지로 필요한 만큼 충분히 쓰고 있었다. 에너지의 자급자족, 쉽게 들으면 꿈만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달랐다.
우선 펠트하임은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에너지 수급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갖추지는 못했다. 풍력 등으로 생산한 전기를 운반하거나 저장하는 기술이 아직 불완전해 전력회사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즉 전력회사가 마을에 투자하면, 마을은 땅을 내주고 시설을 지어 신재생에너지를 만드는 방식이다. 물론 막대한 투자비와 시설비가 들어가고 이 가운데는 정부의 보조도 있다. 펠트하임에서 재미를 본 전력회사 크벨레는 이런 방식의 친환경 마을 백 여 개를 독일 곳곳에 건설하려고 추진 중이었다. 원전의 대체제로 독일은 신재생에너지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적인 수준이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한 신재생에너지는 적지 않은 추가 비용을 수반한다. 효율이 낮은 태양광과 풍력 등으로 전기를 만들려면 그만큼 돈이 더 든다는 얘기다. 실제로 독일은 후쿠시마 이후 원전 탈피 정책을 쓰기 시작한 뒤 전기료 인상 압박을 상당히 받고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베를린 근교 가정의 경우 월 5유로 정도 전기료를 더 낸다고 밝혔다. 독일은 앞으로 9년 뒤인 오는 2022년까지 자국 내 모든 원전의 가동을 중단할 계획인데 이 때가 되면 가구당 전기료 부담이 연간 137유로 정도 가중될 것이라는 일각의 전망도 나왔다.
유럽 경제의 기관차 독일은 엄청난 추진력을 갖고 있는 나라다. 국민들의 인내력도 상당한 수준이다. 방향이 하나로 잡히면 그 줄기를 따라 가는 특성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원전을 포기하고 고비용의 신재생에너지로 옮겨가더라도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어느 정도 견뎌낼 수 있는 경제력도 갖추고 있다. 독일은 나아가 지구 온난화 시대의 에너지원이 될 신재생에너지 개발 분야를 선점해 산업적으로 또 하나의 기회를 잡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이웃한 일본에서 대참사가 벌어졌다고 원전을 포기할 수 있는가? 해마다 여름, 겨울철이 오면 전력난을 겪으면서도 원자력 발전을 중단할 수 있는가? 그동안 쌓인 원전 기술을 가지고 아랍에미리트에 원자력 발전소를 수출하는 등 외화를 획득할 기회가 늘어나고 있는데 여기서 멈출 것인가?
원전을 취재하면서 이 문제는 하나의 답이 존재하는 간단한 수학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됐다. 독일은 결코 원자력 분야 '안전의 전도사'가 되기 위해 원전을 포기한 게 아니다. 후쿠시마 사고를 보고 겁먹어 원전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건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들은 계산적이다.
메르켈 총리가 원전 폐쇄 문제를 들고 나왔을 때 단순히 국민들의 여론만을 살피지 않았다. 화력과 원자력 등에서 차세대 에너지로 건너가는 ‘에너지 전환시대’의 가능성과 기회를 본 것이다. 그들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신재생에너지를 선택했을 때 승산이 있다는 면밀한 분석을 선행했다. 이에 비추어 우리나라도 철저한 손익계산에 따라 에너지 정책을 펴야 한다.
만의 하나 사고를 부를 수도 있는 원전을 무작정 배척하거나 고집해서는 안 될 상황이다. 철저하게 실리를 따져 원전을 이용하고(국내 전력 공급뿐만 아니라 해외 수출까지도), 신재생에너지 개발 등 차세대 경쟁에서도 뒤처지지 않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가 강점을 갖고 있는 원전을 활용하면서 미래 에너지로 전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렵겠지만 그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