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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담뱃값 올리면 흡연율 줄어든다? 글쎄요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입력 : 2013.03.19 15:10|수정 : 2013.03.19 15:10


  정부와 여당의 유력 인사들이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담뱃값을 올려야 한다”며 담뱃값 인상론에 불을 지펴놨습니다. 2004년 12월에 5백원 올리고 8년이 넘도록 담뱃값이 제자리이니 올릴 때가 되긴 했습니다. 그런데 담뱃값을 올리자는 쪽에서 내놓는 논리와 팩트들이 좀 미덥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담뱃값이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싸고, 그래서 싼 맛에 담배를 많이 피우다 보니 성인 남성 흡연율 44%로 OECD 최고라는 겁니다. 담뱃값 제일 싸고, 성인 남성 흡연율 최고인 것 맞습니다. 담뱃값 오르면 “이참에 끊자”라는 분들 분명히 생길테니 흡연율 줄어드는 것도 맞는 말입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우리나라의 금연정책이 OECD 회원국 가운데에서도 바닥권이라고도 주장했습니다. 담뱃값 싸고, 금연 캠페인도 시늉만 해왔으니 틀리지 않은 지적입니다.

  시비걸 수 없는 팩트들이지만 정부가 애써 외면하는 팩트들도 많습니다. 우리나라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높지만 성인의 흡연율은 높지 않습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흡연율 감소폭도 OECD 다른 회원국에 절대 뒤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담뱃값 올리면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의 부담이 커집니다. 담뱃값 잘못 올렸다가는 저소득층 돈으로 복지 예산 확충하는 ‘사고’를 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흡연율은 높지 않다

  OECD 회원국들의 경제사회문화 지표를 정리한 최신 ‘OECD 팩트북 2013’을 보면 우리나라 성인 흡연율은 22.90%입니다. 성인 남성 흡연율은 40%대로 높지만 성인 여성 흡연율은 5.2%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압도적으로 최하입니다. 그래서 평균은 22.90%이고 OECD 평균 21.1%를 조금 상회합니다.

  우리나라 흡연율을 성인 기준으로 따지면 낮지도 않지만 높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담뱃값이 싸서 흡연율이 높다”는 주장은 ‘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흡연율 급감

  OECD 팩트북이 밝힌 최근 20년간 흡연 감소율은 우리나라가 34.01%입니다. 감소율만 따지면 OECD 회원국 가운데 통계치가 나온 27개 나라 중 12위의 성적입니다. 흡연율 감소 추이가 중상위 수준으로 나쁘지 않습니다.

  아일랜드의 경우 세계에서 담뱃값이 제일 비싸고 금연규제도 강력하지만 흡연율 감소는 3.33%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는 담뱃값 싸고 금연규제 약해서 흡연율 높다”는 주장이 여기에서 또 난관을 만납니다.

담뱃값 인상으로 복지 증세?

  담뱃값 인상은 담배의 가격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담배에 붙는 세금을 올리는 것입니다. ‘증세’입니다. 야당은 “복지를 위한 증세는 없다고 한 박근혜 정부의 약속이 담뱃값 인상으로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시각으로 담뱃값 인상 논란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담뱃값 올려서 거둔 세금이 오롯이 금연정책에 사용되면 모르겠지만 다른 복지 정책에 흘러가면 “담뱃값 인상=복지 증세”라는 공식이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담뱃값 인상은 저소득층 부담?
이미지  담뱃값 인상은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세금을 더 부담하는 역진적인 현상을 낳게 된다고 인상 반대론자들은 주장합니다. 담배는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이 많이 피우기 때문에 담뱃값 인상에 따른 부담도 저소득층이 많이 진다는 논리이지요. 저소득층이 부담한 세금으로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보편적인 건강정책을 편다면 저항이 간단치 않을 겁니다.

올해는 선거 없는 해

  담뱃값이 8년여 동안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동안 물가는 껑충 뛰었는데 담뱃값은 꿈쩍도 안했으니 끽연가들한테는 참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끽연가한테 미안하긴 하지만 이제는 올려야지요. 이런저런 경제 논리를 접어두고라도 담뱃값에 물가 인상분도 반영하지 않았던 것은 잘못 같습니다.

  정부는 마침 올해에 큰 선거가 없어서 끽연가들의 ‘표심’ 눈치 안보고 정책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담뱃값 인상은 대세라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겁니다. 정부는 정권 출범 초기에 괜한 논란과 잡음을 막기 위해서라도 담뱃값 인상의 근거를 명확히 해야 할 것입니다. 그 근거가 정확해야 합리적인 인상폭이 나오고, 세금 내야할 애연가들의 저항도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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