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 제2의 르네상스가 도래했지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탄탄한 자본과 배급력을 앞세운 한국 영화들은 천만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지만, 해외 영화제를 석권하고도 상영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하는 수작들도 즐비하다.
전국 30개 미만의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을 통칭 '다양성 영화'라고 부른다. 다양성 영화의 정의를 이렇게 내리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지만, 이보다 더 시급한 것은 이 영화들이 관객과 만날 통로를 넓혀주는 것이다.
지난 7일 개봉한 영화 '가족의 나라'와 오는 21일 개봉하는 영화 '지슬'은 작품성이 보장된 명품 영화들이다. '가족의 나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북한으로 이주한 재일교포가 병 치료를 위해 25년 만에 한시적으로 일본의 가족에게 돌아가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로 재일교포 2세인 양영희 감독이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지난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국제예술영화관연맹상을 수상했으며, 지난해 일본 영화 전문지 키네마 준보가 선정한 '최고의 영화'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슬'은 1948년 겨울,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을 폭도로 간주한다’는 미 군정 소개령을 시작으로 3만이 넘는 주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이름 없이 사라져야 했던 제주 4.3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소개돼 호평을 받은 데 이어 한국 영화로는 최초로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거머쥔 수작이다.
이 작품들은 다양성 영화로 분류돼 전국 30개 미만의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멀티 플렉스 극장에서 상영은 몇회차 되지도 않을 뿐더러 퐁당퐁당(교차상영)형태다. 대부분의 상영은 예술 영화 전용관에서 이뤄지고 있어 일반 관객과의 접근성이 높지 않은 편이다.
배우 강수연과 유지태가 두 영화의 홍보 대사를 자처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들은 두 영화를 보고 난 뒤 깊이 매료돼 영화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두 배우의 행보가 눈길을 끄는 것은 단순히 구전으로 홍보하는데 그치지 않고, 주머니를 열어 관객들에게 관람의 장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수연은 지난 1일 이용관 부산영화제집행위원장, 배우 안성기, 정치인 문재인 등과 함께 영화인원정대에 합류해 제주도에서 선 개봉한 영화 '지슬'을 관람했다. 영화를 보고 큰 감동을 받은 강수연은 오는 21일 인디 스페이스에서 상영하는 한 회차의 좌석을 모두 구매해 영화 팬들에게 증정하기로 결정했다.
유지태 역시 사비를 털었다. 지난 15일 자신의 트위터에 "유지태와 함께하는 다양성 영화보기 3탄. 저와 함께 영화 보실 분 선착순 100명에게 영화표 쏩니다. 3월21일 17시30분 '가족의 나라' 상영에 초대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팬들에게 번개를 제안했다.
영화 '마이 라띠마'로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유지태는 다양성 영화의 척박한 환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났던 유지태는 "한국 영화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다양성 영화에 관한 관심은 여전히 부족하다"면서 "한국 영화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식으로든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두 배우의 홍보 활동이 영화 흥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영향력 있는 영화인들이 직접 좋은 영화를 알리고자 하는 개념있는 행동을 보임으로써 작은 영화들은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또 이들을 통해 다양성 영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두 배우의 홍보 활동은 귀감이 될 만하다.
ebada@sbs.co.kr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