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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내가 임명한 사람만 임기보장?

남승모 기자

입력 : 2013.03.18 09:22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검찰총장과 국세청장, 경찰청장을 내정하면서 국가정보원장을 포함해 권력기관장 4명의 인선이 마무리됐다. 인사 대탕평이 강조돼 온 만큼 이들의 출신지역에도 관심이 컸다. 결과는 서울이 3명, 대전이 1명이었다. 영남 출신은 한 명도 발탁되지 못했다. 호남 출신 역시 전무했다.

일단 지역안배 보다는 박 대통령이 평소 강조해 온 전문성에 방점을 둔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선거 기간 호남 민심을 겨냥해 '대통합과 대탕평'을 강조했고, 당선 이후 '호남 총리론'까지 나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인선은 대탕평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어서 실망스럽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

◈ 권력기권장 어떤 자리?

이른바 '5대 권력기관장'은 감사원장과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그리고 경찰청장을 일컫는다. 이번 인사로 감사원장을 제외하면 5대 권력기관장의 모든 인선이 마무리된 셈이다. 사법권과 감찰권, 조세권 같은 국가의 핵심적인 권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이들 자리는 요직 가운데 요직으로 꼽힌다.

그런 만큼 정치적 편향과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한 장치도 중요하다. 이 때문에 감사원장과 검찰총장, 경찰청장은 임기제를 채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평소 임기제를 존중하는 것은 물론 법적 절차에 따라 인사를 하겠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번 인선에서 김기용 경찰청장은 지난해 5월 취임 후 채 1년도 안돼 옷을 벗게 됐다. 인사 발표 하루 전날까지 김 청장이 유임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을 감안하면 하룻밤 사이에 결과가 뒤집힌 셈이다. 당연히 인사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 朴 "임기보장"… 약속 번복 논란

경찰청장 임기보장제가 도입된 것은 2004년이다. 이후 9년 동안 법에 보장된 2년 임기를 채운 사람은 이택순 전 청장 한 명 뿐이었다. 최기문·허준영·어청수·강희락·조현오 전 청장 등 6명은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중도 하차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런 점을 고려해 지난해 10월 19일, 경찰의 날을 앞두고 발표한 경찰 관련 공약에서 경찰청장의 임기보장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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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 경찰 관련 공약 발표 중에서 (지난해 10월 19일)

넷째, 경찰청장의 임기를 보장하겠습니다.
경찰력이 효과적으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지휘권이 안정되어야 합니다.
경찰청장 임기제가 도입된 이후,
6명의 청장 중에 1명만이 법정임기를 다 채웠습니다.

청장의 잦은 교체에 따른 경찰 조직의 동요는 곧 치안 공백으로 이어집니다.
경찰청장의 임기를 반드시 보장하도록 하겠습니다.
경찰 조직이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면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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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경찰 조직원 입장에서 보자면 명백한 공약 위반인 셈이다. 실제로 경찰 조직 내에서는 '그러면 그렇지'라는 자조섞인 반응이 적지 않게 나왔다.

◈ 분위기 쇄신용 교체… 적절성 논란

물론 임기제가 절대적일 순 없다. 아무리 임기가 법적으로 보장된다 하더라도 교체해야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바꿔야 한다. 문제는 이번 경우에도 과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는지 여부다. 청와대측은 최근 문제가 된 학교폭력 등 '4대 사회악' 논란이 김기용 청장의 교체와 무관치 않다고 밝혔다.

최근 '4대 사회악' 사건이 빈발하면서 민심이 술렁이고 있는 점을 감안해 임기 보장보다는 경찰의 분위기를 쇄신하고 새로운 각오로 출발하기 위해 박 대통령이 막판에 청장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설명이었다다.

하지만 이 설명대로라면 박근혜 대통령이 15만 경찰의 수장을 분위기 쇄신용으로 갈아치웠다는 것이 된다. 군이나 경찰의 경우 지휘 책임이라는 것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조직의 수장을 특별한 잘못도 없이 단순히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교체한다면 조직의 위상이 말이 아니게 된다.

청와대의 해명이 진실이든 진실이 아니든 경찰 조직은 이번 인사로 '분위기 쇄신'은 커녕 이래 저래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됐다.

◈ 감사원장 인선은?

청와대는 아직 양건 감사원장에 대한 인선에는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양 감사원장은 현재 임기 4년 가운데 2년이 남아 있다. 하지만 최근의 인선 분위기를 보면 꼭 임기가 보장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양 감사원장의 경우 무엇보다 '4대강 문제'가 교체 사유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많다. 박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해 "예산 낭비와 국민적 의혹이 없도록 철저히 점검해 앞으로 예산 낭비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 역점 사업이었던 '4대강 사업 문제'가 향후 새 정부의 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양 감사원장이 지난 정부의 감사원장으로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청와대 고위관계자 역시 "감사원장도 교체 분위기가 많다고 보면 될 것"이라면서 "감사원장이 4대강 사업에 아무 문제 없는것 처럼 하다가 정권 바뀌고 나니 잘못됐다고 입장을 바꾸는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박 대통령이 임기가 있는 공직자들의 임기 보장을 언급했지만 전임 대통령 때 임명된 이의 임기를 신임 대통령이 지키겠다는 뜻은 아닐 것"이라면서 "박 대통령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결국 임기제보다는 국정 철학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사실 임기제를 지키는 것과 국정철학이 같은 사람이 대통령을 보좌해 국정 운영을 돕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국민에게 더 보탬이 되는 일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박 대통령이 당초 약속했던 임기제와 지금의 인사조치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