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지현수는 음악감독, 작곡가, 연주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최근에는 뮤지컬 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이달 초부터 창작 뮤지컬 ‘담배가게 아가씨’(극본·연출 김지환)의 무대에 서고 있기 때문. 이 뮤지컬의 음악 총감독을 맡은 지현수는 극중 카사노바 영민이라는 캐릭터를 맡아 직접 무대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다.
SBS 드라마 ‘부탁해요 캡틴’, ‘당신의 천국’ 등의 음악감독을 맡았던 지현수가 돌연 대학로 행(行)을 선언한 이유는 뭘까. 가장 첫 번째 이유는 오래 전부터 인연을 이어온 ‘담배가게 아가씨’의 연출가 김지환과의 의리였다. 물론 다른 이유도 많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다소 열악한 환경이지만 순수한 창작 열정이 꽃피울 수 있는 대학로의 매력 때문이었다. 작품에 대한 자신감과 대극장 뮤지컬로도 발전시킬 수있다는 비전 역시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전에 뮤지컬 ‘진짜 진짜 좋아해’에 출연해 배우로 무대에 선 적은 있었지만 음악감독은 ‘담배가게 아가씨’가 처음이에요. ‘담배가게 아가씨’가 제목이니까 송창식 선생님의 ‘담배가게 아가씨’ 등 7080 노래가 주를 이룰 거라고 예상하지만 이 뮤지컬은 19곡의 OST가운데 창작곡이 12곡이에요. 대본을 보고 무대를 상상해서 만든 곡들이죠.”
지현수가 쏟은 열정의 온도를 가볍게 여길 순 없다. 지현수는 그동안 쌓았던 인맥들을 총 동원했다. 록밴드 넥스트 기타리스트 김세황의 연주곡이 뮤지컬 OST에 포함됐고 정상급 테너 유정필이 2곡이나 피처링으로 힘을 합쳤다. 지현수는 “정말 대단한 분들이지만 삼겹살과 김치찌개로 고마움을 표했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뮤지컬을 무대에 올린 지 5개월, 지현수는 어떤 걸 잃었고 또 어떤 걸 얻었을까.
“5개월 동안 열심히 벌어놓은 돈 까먹었죠. 대학로 뮤지컬의 환경이 힘들 거라는 걸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열악한 점이 많았어요. 얻은 것 또한 분명히 있어요. 일단 CD제작부터 유까지 제가 대부분의 과정을 직접 했어요. 순수한 땀으로 만든 것이죠. 또 대학로 사람들의 열정에서 많은 걸 느꼈어요. ‘부탁해요 캡틴’은 대규모 자본과 자원이 존재한 작업 환경이었지만, 뮤지컬은 상반되는 환경이지만 충족감은 더욱 컸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지현수가 배우까지 도전한 이유는 뭘까. “제가 맡은 역할은 영민이라는 허세 넘치는 카사노바 캐릭터예요. 극중 감초 역할이기도 하고 ‘나쁜남자’이지만 못된 놈처럼 그려지면 안되기 때문에 캐릭터 잡기를 어려웠어요. 처음 이 배역을 맡은 배우는 굉장히 혼란스러워 했어요. 그래서 ‘보졸레누보’라는 곡을 만들었어요. 싸구려 와인에 영민을 비유한 거죠. 곡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배역에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지현수가 연기에 도전하는 가장 첫 번째 이유는 연기를 통해 음악에 대한 이해와 표현의 폭을 더 넓히고 싶기 때문이다. “저에게 모토가 되는 뮤지션이 있어요. 영화 ‘마지막황제’의 음악감독 류이치 사카모토예요. 류이치는 자기 작품에 카메오로 출연해요. 저 역시 제 작품에 작은 배역이라도 연기를 하고 저만이 표현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이죠.”
‘담배가게 아가씨’는 젊은 배우들의 신선한 연기와 탄탄한 음악과 연출이 3박자를 이루며 대학로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아직 갈길은 멀지만 지현수의 무모해보였던 도전이 조금씩 빛을 보고 있는 셈. 그렇다면 지현수가 그리는 미래는 무엇일까.
“‘담배가게 아가씨’는 전 연령대가 볼 수 있는 작품으로, 누군가에게는 과거를 누군가에게는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 몇 안되는 뮤지컬이에요. 출연하는 배우가 욕심을 낸다면 그 작품은 정말 좋은 작품이란 방증이거든요. 저는 ‘담배가게 아가씨’가 꼭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런 노력이 대학로의 열악한 여건을 조금은 개선할 수 있는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뮤지션 개인으로는 대한민국에 유일한 장르를 개척하는 게 제 앨범의 목표예요. 1+1이 뻔한 2가 아닐 때, 우리는 예술이라고하는 것 아닐까요?”
박형준, 이원준, 김한나, 김유현, 박세준, 조성재, 임태빈 등 배우들이 출연하는 뮤지컬 ‘담배가게 아가씨’는 연말까지 대학로 브로드웨이 아트홀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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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강경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