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이어집니다.
한동안 손열음을 따라다녔던 또 하나의 꼬리표는 바로 ‘국내파’라는 말이다. 손열음은 한국예술종합학교까지 졸업하고 지금은 독일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국내파’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제가 국내파였던 건 확실하고요. 왜냐면 스무 살 때까지 한국에 있었으니까요. 저는 다른 교육도 한국에서 너무 잘 받아서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무엇보다 감사하는 건 예술가로서 저의 뿌리가 확실하게 있다는 거예요. 정체성에 혼란이 있을 때 유학을 가면 아무래도 혼동이 오잖아요. 그런데 저한테는 확실히 이게 내 나라고 내가 이런 사람이고 하는 정체성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나는 클래식 음악은 서양 문화이니만큼, 빨리 본토에서 서양 문화를 접하는 게 좋다는 얘기를 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단순히 곡을 기교적으로 소화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문화를 빨리 ‘체득’해야 제대로 된 곡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하고요.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기 때문에,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이 있고 그런 거죠. 그런데 사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국경도 거의 없고, 지구촌화 됐기 때문에 소통도 가능하고 충분히 원한다면 단기간에 경험을 쌓고 올 수 있고, 그런 게 가능하잖아요. 아주 어린 나이에 자신의 의지가 아니고 타인의 의지 때문에 유학을 가려고 하는 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요즘은 정말 인터넷으로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시대다. 안방에 앉아서 외국에 있는 연주자의 공연 실황도 유튜브로 볼 수 있다. 실제로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유튜브를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경우가 종종 등장하고 있다. 손열음에게 유튜브 같은 매체를 활용해 더 많은 관객과 접하고 싶은 계획은 없는지 물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크게 생각하는 건 없어요. 왜냐면 유튜브는 정말 인스턴트한 매체잖아요. 사람들이 3분 보고 좋네, 안 좋네 생각하는 거고. 그런데 클래식 음악은 그거하고는 조금 다른 거 같아요. 좀더 깊게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듣고, 다시 들었을 때 느낌이 다르고 그런 음악이잖아요. 유튜브는 너무 빠른 속도에 맞춰진 매체가 아닌가 생각해요. 물론 장점도 있겠지만,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고 보면 클래식 음악은 ‘빠른 매체’에 어울리지 않는 ‘느린 예술’인지도 모른다. 아, 이건 특정 곡의 물리적인 ‘연주 속도’와는 관련 없는 얘기다. 손열음은 느리고 아날로그 적인 예술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다고 했다.
손열음은 일간지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는, ‘글 쓰는 음악가’이기도 하다. 손열음의 글을 보면 다양한 관심 분야와 지식의 폭에 놀랄 때가 있다. 글 쓰기 또한 창작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면, 피아노를 치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손열음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사실 제가 하는 음악은 이미 쓰인 곡을 제가 재해석하는 거잖아요, 순수 창작 기반의 예술이라고 하긴 어렵죠. 그런데 글은 새로 창작해야 하는 거니까 힘든 게 많아요. 저도 처음에는 술술 썼었는데, 요즘은 소재 찾느라 고민도 많이 하죠. 그런데, 음악은 정말 추상적인 예술이잖아요. 글은 그걸 풀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런 차이점이 재미있어요. 보통은 음악에 관한 글을 많이 쓰는데, 음악을 객관화해서 풀어나간다는 게 나름 의미도 있고 재미있어요.”
요즘 ‘클래식 음악의 위기’라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손열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왜냐면 제 생각에 클래식 음악이 없어질 거 같지는 않거든요, 클래식 음악이 가진 가능성이 정말 크기 때문에요. 어떤 사람들은 분명히 언제까지고 좋아할 거 같아요. 그리고 사실 클래식 음악 팬들도 점점 늘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진정으로 이걸 좋아하고, 완전히 매료된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가 중요하죠. 저는 관객들의 수보다는 얼마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관객들이 많은가가 중요한 거 같아요. 그리고 또 흐름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지금 조금 인기가 떨어진다고 해도 다시 언젠가는 회복될 것도 같고."
손열음은 클래식 음악 말고 다른 음악 장르도 좋아할까.
“저는 음악은 다 좋아해요. 재즈도 듣고, 록음악 같은 것도 좋아하고, 가끔 국악도 듣고요. 다 좋아해요.
그럼 다른 장르와 크로스오버 작업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을까.
“아직은 없어요. 왜냐면 제가 '진짜 멋있다, 해보고 싶다' 했던 모델은 없었던 거 같아요. 그런 모델이 생기면 따라서 해 보고 싶어요.”
음악가로서 더 성취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물었다.
“저는 진짜 그냥 잘 치고 싶어요. 아직은 시작하는 단계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준비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하고요. 이제부터 제 음악성을 쌓아나가는 단계인 거 같아요. 정말 끝까지 잘하고 싶은 게 목표고요. 또 가능하다면 제 후배들이나 다음 세대들한테도 도움이 되는 음악가가 됐으면 좋겠어요.”
‘잘 친다’는 게 뭘까.
“하하. 저도 모르겠어요. 그걸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어요. 정말 좋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손열음에게, 그렇게 잘 치고, 닮고 싶은 음악가는 누구일까.
“아, 너무 많아요. 대표적으로 여기 오다가 차 안에서 베노 모이세비치라고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연주를 들었거든요. 20세기 초 중반 사람인데, 정말 좋더라고요. 저는 옛날 사람들을 좋아해요. 한 마디로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판타지라고 해야 되나, 그런 게 더 깊은 거 같아요.
요즘은 어떻게 하느냐에 중점을 둔다고 한다면, 그 당시에는 무엇을 하느냐에 중점을 둔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런 환상성을 정말 동경해요. 어떻게 해석하느냐, 이 부분을 어떻게 연주하나, 이런 건 포장에 불과하죠. 저는 내용물에 더 관심이 많은데, 요즘 흐름과는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해요.”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다르다는 걸까.
“아무래도 시대상이 있잖아요, 시대정신이라는 것도 있고. 시대가 획일화되다 보니까 문화도 획일화되고, 다원화되는 것 같으면서 동시에 하나처럼 되니까. 아주 개인적인, 고유한 건 나오기 힘든 시대가 아닌가 싶어요. (손열음 고유의 것을 찾아가는 과정?) 네, 그게 뭔지 여기서 콕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손열음만의 색깔을 찾아가고 싶어요.”
인터뷰에 배당된 시간이 짧아서 더 이상 질문을 던질 형편은 안 되었다. 하지만 이 인터뷰가 손열음이라는 피아니스트가 어떤 음악가인지 약간의 힌트라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손열음의 첫 리사이틀은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