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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로또의 비극…37%, "당첨 사실 아무에게도 안 알려"

김범주 기자

입력 : 2013.02.12 09:14

‘불신시대’의 한 단면


4년 전에 뉴스추적 프로그램을 맡았을 때, 로또 당첨자를 다룬 한 시간짜리 방송을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1등 당첨이 된 후에 행복하게 사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저희가 찾아 방송으로 다룰 수는 없었기 때문에 결국 불행해진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됐습니다.

사실혼 관계에 있던 30대 부부 중 남편이 27억 로또에 당첨됐습니다. 세금 떼고 실수령액은 18억쯤 됐습니다. 별거 중이었지만 이 사실을 부인에게 알렸고, 같이 당첨금을 찾으러 갔을 때 부인만 신분증이 있던 터라 돈을 찾아서 부인 계좌에 넣어뒀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당첨 한 달 뒤, 부모님 전세자금으로 5천만원을 달라고 하면서 갈등이 시작됐습니다. 부인은 당첨금이 자신의 돈이라면서 6억 5천 만원만 받고 헤어지자고 나선 겁니다. 결국 3년에 걸친 길고 긴 민형사 소송이 이어졌고, 법원은 당첨금이 모두 남편 돈이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리고 돈을 주지 않았던 부인은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까지 살아야 했습니다.

  또 다른 사례도 있었습니다. 중국 동포와 결혼했던 한 남편은 로또 2등 3천 7백 만원에 당첨된 이후 악몽이 시작됐습니다. 부인이 중국에 집을 사고 싶다고 졸라서 그 중 2천만원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한국인 명의로는 살 수 없다고 해서 부인 명의로 집을 해줬더니 부인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취재 당시 “인생이 작살났다”며 울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이미지 그런데 이번에 좀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로또를 운영하고 있는 회사에서 1등 당첨금을 받으러 온 사람들을 상대로 “당첨 사실을 누구에게 알리겠느냐”고 질문을 해 본 겁니다. 돈을 찾으러 왔던 346명 중에 161명이 대답했습니다. 가장 많은 답은 보시는 것처럼 배우자였는데, 문제는 아무에게도 안 알린다는 응답도 무려 37%나 됐다는 겁니다. 

1년 전 같은 조사에선 이 비율이 27%였습니다. 1년 사이에 10% 포인트가 늘어난 겁니다. 그만큼 주변사람들도 못 믿는다는 이야기겠죠.

  그럼 돈을 어디 쓸 것이냐고 물어봤습니다. 답은 아래와 같습니다. 단 9%만 어려운 부모나 가족을 돕겠다고 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도 1년 전 조사에선 18%였습니다. 그러니까 9% 포인트 줄어든 것이죠. 혹시나 해서 가족에게도 당첨 사실을 말할 수 없고, 그 돈으로 어려운 가족을 돕지도 않겠다는 분위기가 더 퍼진 것 같습니다. 앞에 두 사례처럼 불행으로 이어질까 걱정이 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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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쯤 해서 당시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의 결론을 되짚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만약 행운이 불행으로 바뀔 정도라면, 이미 삶에 위기가 와 있었던 것은 아니었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2003년에 407억을 받고 사직했던 경찰관, 그 분의 사연을 쫓았었습니다. 이 분도 신분이 공개되면서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예전부터 가까웠던 주변 친구들과 학교 은사님 등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버틸 힘을 얻었습니다. 당첨금 중에 35억원을 고향 지역과 경찰서, 모교 등에 쾌척해 사회에 큰 몫을 했습니다. 최근엔 가족들과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고, 경영 공부를 한 뒤에 수도권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신다는 보도도 접했습니다. 407억이나 되는 당첨금을 받았지만, 인생에 큰 흔들림이 없었던 겁니다.

  반대로 큰 당첨금이 생겼지만 배우자나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불안한 상태라면, 이미 그 전부터 가족 사이에 신뢰가 없었던 경우는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위태로운 상태에서 큰돈이 들어오면 이미 있었던 불신이 더 커지고 관계가 아예 망가질 수 있는 것이죠. 앞서 소개했던 사례들도 결국 그런 경우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로또 당첨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는 현상은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 안에서도 그만큼 불신이 싹트고 있다는 뜻일테니까요. 올해 당첨자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크게 줄어들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