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홍석천은 따뜻하고 섬세한 사람이다. 그런 진정성으로 그는 커밍아웃 이후 힘들었던 13년을 홍석천답게 버텼다. 지난 4일 SBS ‘힐링캠프’에서 홍석천은 그동안 방송에서 차마 꺼내지 못했던 그간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홍석천의 눈물 어린 고백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슬픔에 공감하게 했고, 홍석천과 비슷한 고민을 숨기고 있을 누군가에게는 말로 다 하지 못할 마음의 위로를 전했을 것이다.
‘힐링캠프’가 방송된 다음날 홍석천을 만났다. 기자도 모르게 그의 손을 꼭 붙잡고 “힘든 얘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고 홍석천은 수줍어하며 “감사하다.”고 했다. “한동안 연락되지 않던 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와서 밤새 한숨도 못잤다.”는 홍석천에게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홍석천은 식사까지 거른 채 인터뷰에서는 최선을 다해 진심을 전했다.
◆ “이제야 ‘못봐줄 정도는 아니구나’ 실감해요”
“제2의 전성기가 온 것이 아닌가.”라고 하자 홍석천은 눈을 반짝이며 “제 2의 전성기? 그런가”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홍석천은 “새해 첫 주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부터 해서 많은 분들이 마음을 여는 게 느껴졌다."면서 "그런 분위기에서 방송을 한 게 얼마만인가 싶다. 정말 기분이 묘하다.”고 어떨떨해 했다.
그런 이유는 뭘까. 세상이 변해서? 아니면 시간이 흘러서? “제가 커밍아웃한 지 13년이 흘렀잖아요. 방송에 복귀한 지는 10년이 됐구요. 10년이면 무슨 일이든 답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이제 조금씩 ‘진짜 내가 못 봐줄 정도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강연도 했고 레스토랑 사업도 하고 저대로 충실히 살았거든요. 이제는 ‘동성애자이긴 하지만 열심히 하는 건 인정해’라고 말씀해주시는 것 같아서 행복하죠.”
◆ “인정은 하지만 이해는 안된다는 말? 상처 안받아요.”
‘힐링캠프’에서 자주 등장했던 말은 ‘인정’과 ‘이해’였다. 비슷해 보이는 말이지만 ‘다름’과 ‘틀림’ 만큼이나 간극이 큰 말이다. 김제동은 “그동안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저 역시도 보수적인 사람이었나보다. 인정은 할 수 있지만 솔직히 이해는 안된다.”고 말했다. 사실 이는 대부분의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섭섭하진 않았나.”라는 질문에 홍석천은 손사레를 쳤다. “섭섭하다뇨. 아뇨. 전 그런 반응이 자연스러워요. 그리고 제가 이해시킬 부분도 아니고 이해를 바랄 부분도 아니예요. 이해를 바란다는 건 잘못된 부분을 설득해야 한다는 건데, 우리 같은 사람은 이해를 받는 게 아니라 인정을 받는 것만으로도 정말 충분해요. 정말 제동씨 말에 고마웠어요.”
◆ “이경규 선배 말에 감동했다”
‘힐링캠프’의 이경규는 홍석천의 출연을 반대했다고 여러차례 밝혔다. 이경규다운 솔직한 발언이었고 그래서 시청자들은 ‘힐링캠프’에 더욱 진정성을 느꼈다. 홍석천 역시 ‘힐링캠프’ 출연 전 이경규 때문에 ‘힐링캠프’가 무서웠다고 솔직히 말했다. 홍석천의 출연을 만류했지만 방송말미 이경규는 “그동안 얼마나 갇힌 생각을 가졌는지 알게됐다.”고 말해 놀라움을 줬다.
“이경규 선배의 반응은 정말 기대를 못했던 거였어요. 이경규 선배님은 보수적인 기성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잖아요. ‘나와 통할까’란 걱정을 정말 많이 했는데 마음의 문을 많이 열어주셔서 정말 고마웠어요. 방송 끝났을 때 ‘열심히 해라’며 처음으로 제 전화번호를 물어보셨어요. 그리고 ‘밥먹으러 갈게’라고 하셨는데 정말 감동했어요.”
◆ “용서, 저에게도 쉬운 단어가 아니예요”
오늘의 홍석천이 있게 한 건 바로 ‘용서’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홍석천은 어린 시절 성폭행 을 했던 가해자들을 용서했고 자신의 가게에 불을 지른 미군을 용서한 것으로 알려졌다. 12년 전 커밍아웃을 했을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며 상처를 줬지만 홍석천은 세상을 미워하지 않는다. 홍석천이 밝게 존재해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세상을 용서한 셈이다. “용서가 쉬운가요?”라고 그에게 물었다.
“힘들지. 누군가를 용서하는 게 쉬운 사람이 어딨겠어요. 사실 차마 말하지 못했던 일은 더 많아요. 금전적으로 힘들게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저 같은 경우는 그 사람들보다 내가 나은 형편이고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벌 수 있을 거란 생각을 갖고 용서해줘요. 100만원 빼앗아가면 ‘그냥 저 사람은 나에게 100만원짜리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용서가 쉬워요. 나 정말 전생에 도 닦은 사람이었나봐. 하하하”
◆ “신에게 95점짜리 인간이 될 수 있도록”
‘힐링캠프’에서 홍석천은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온 가족이 모두 종교생활을 열심히 했기에 홍석천을 받아들이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동성애와 여전히 가장 민감한 부분이 바로 종교와 맞닿아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저희 가족은 모두 기독교예요. 사실 방송에서는 편집됐는데요. 저는 제가 동성애자라는 사실 때문에 신 앞에서 100점짜리 인간은 못될 수는 있어요. 하지만 99점, 95점을 맞으려고 노력해요. 누구나 완벽한 사람이 없잖아요. 누구나 부모님 앞에서도 100점짜리 자식이 못되는 것처럼. 예전에 ‘완전한 사랑’ 때 차인표 선배가 이끌어서 큰 교회를 갔다가 상처받은 적 있어요. 근데 올해 1월 첫째주에 그 교회를 다시 갔거든요. 사람들이 너무나 달라진 거예요. ‘잘 오셨다’고. 정말 기뻤어요.”
◆ “나를 받아줄 수 있다면 사랑은 꼭 하고 싶어요”
홍석천은 이태원에 6곳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성공한 사업가이기도 하다. 남다른 미적 감각과 장사수완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홍석천에게 앞으로의 사업, 사랑, 방송에 대해 물었다. 홍석천이 꿈꾸는 미래는 무엇일까.
“일단 사업적으로는 제 재능을 필요한 곳에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레스토랑 컨설턴트로 창업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고요. 그렇지만 백종원 사장과는 좀 다른 식으로(웃음). 시간이 될 때 전국을 돌면서 한식 아이템을 찾고 싶어요. 그리고 사랑은. 늘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내 욕심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연예인이고 커밍아웃을 한 저란 사람을 받아줄 수 있다면 사랑도 꼭 하고 싶어요. 방송은... 신동엽과 꼭 한 작품 하고 싶어요. 진짜 신동엽은 너무 귀엽고 센스 있는 MC거든요.(웃음)”
홍석천은 리마리오(이상훈 분)와 함께 tvN ‘코미디 빅리그’에서 레드버터로 공개코미디 무대에 서고 있다. 홍석천은 늘 자신이 가진 것보다 모자란 사람을 바라보고 마음을 쓴다. 그만큼 상처도 받지만 이런 홍석천의 따뜻함은 시청자들이 그를 사랑하고 다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의 성정체성이 어떻든, ‘다름’이 ‘틀림’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홍석천의 용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전한다.
사진=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강경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