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이틀 동안의 청문회 일정을 마치고 이제 인사청문특위 차원의 심사 경과 보고서 채택과 임명동의안에 대한 본회의 무기명 비밀투표를 남겨놓고 있다. 일단 24일 예정돼 있던 청문회 심사경과보고서 채택은 무산됐다. 지금까지 상황으로 볼 때 보고서 채택부터 본회의 투표까지 어느 것 하나 통과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나 당초 결정적 하자가 없다며 이 후보자를 감싸고 나섰던 새누리당 안에서도 다른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여당 소속 특위 위원인 김성태 의원이 공개적으로 부적격 의견을 밝힌 가운데 상당수 여당 의원들도 이 후보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상황이 이쯤되자 새누리당 지도부에서도 이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유도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시나리오① 목영준·민형기 중 택일
만약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자진 사퇴할 경우 제일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방법은 지난 인선 때 이동흡 후보자와 함께 추천됐던 인물들 가운데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당시 후보군에는 이동흡, 목영준, 민형기 전 헌법재판관이 3배수로 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동흡 후보자가 낙마한다면 이미 청와대 인선 과정을 거친 이들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택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예전 인선 사실이 알려져 신선도가 떨어지는데다 차점자였더는 점이 약점이라는 평가다.
지난 2006년 이동흡 후보자와 함께 헌재에 입성했던 목영준 전 헌법재판관은 경기도 안성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19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를 거쳐 법원 행정처 차장과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민형기 전 헌법재판관은 대전 출신으로 대전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16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와 인천지방법원 법원장 등을 거쳤다. 역시 2006년 9월, 헌법재판관에 임명돼 6년간 재직하고 지난해 퇴임했다.
◈ 시나리오② 신규 인선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방법은 아예 처음부터 인선을 다시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국민 여론과 헌법재판소 내부의 분위기도 반영해 후보자를 고를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법조계 만큼 인재풀(POOL)이 넓은 곳도 없는 점을 감안하면 인선 작업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다만 기존에 후보군으로 올랐던 헌법재판관 출신 주요 인사 3명이 인선에서 배제되는 만큼 헌법재판관 출신 중에서 소장을 고른다는 이번 인사의 원칙이 깨질 수 있다. 또 아무리 서두른다 해도 기본 작업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후보자 인선이 박근혜 정부 출범 뒤로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지난 21일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 퇴임 이후 계속되고 있는 헌법재판소장 공백사태가 자칫 장기화할 수 있어 선택이 쉽지 않을 수 있다.
◈ "朴心에 달렸다"
사실 이동흡 후보자가 사퇴한다면 생각할 수 있는 안은 이 2가지 정도다. 복잡할 게 없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어떤 인선 방법을 택하느냐에 따라 인선 시기가 달라질 수 있고 이에 따라 자칫 헌법재판소 공백사태에 대한 부담을 다음 정부가 떠안을 수도 있다. 특히 앞으로 있을 국무위원 인사청문회 스케줄까지 감안하면 선택은 더욱 복잡해진다. 정밀한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이유다.
다음달 25일 이전에 헌법재판소장 인사청문회를 다시 추진하려면 지명권을 갖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하지만 이동흡 후보자 지명 때도 그랬듯이 사실상 박근혜 당선인의 의중이 가장 중요하다. 이 대통령 후보자를 지명하기는 하지만 이는 형식적 절차일 뿐 실제 내용은 박근혜 당선인쪽에서 결정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청와대 고위관계자에게 "이동흡 후보자가 낙마하면 추가로 추천을 하나? 아니면 다음 정부로 넘기나"라고 묻자 이 관계자는 "그것은 박근혜 당선인쪽 의견 들어야 한다.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라며 "박근혜 당선인쪽 의견이 제일 중요하다"고 답했다.
◈ 누구를 지명해도 마찬가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후보자를 지명할지 결정했다 해도 문제는 또 있다. 이동흡 후보자 낙마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특정업무경비' 때문이다. 정치권과 법조계 주변에서는 이 특정업무경비 문제는 이동흡 후보자 개인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특정업무경비는 각 기관의 수사, 감사, 예산, 조사 등 특정업무수행에 드는 실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지급하는 돈으로 올해에만 헌법재판소를 비롯해 대법원과, 법무부, 국회 경찰청, 국세청 등 50개 기관에 모두 6천524억원이 편성됐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 양반이 (특정업무경비 문제 때문에) 안 되면 예를 들어 헌법재판관 출신의 다른 사람을 세우더라도 그 문제에서는 모두 자유롭지 못할 것 아니냐는 이런 생각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아마 대법관도 같은 문제가 있을 거다. 그래서 앞으로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출신은 공직에 가기가, 청문회 있는 공직에 나가기가 상당히 어렵게 돼 버렸다"고 말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헌법재판소장 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초대 총리로 지명된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도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8,90년대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바 있다.
이번 총리 인선 발표는 이동흡 후보자의 특정업무경비 논란을 겪은 뒤 나왔다. 따라서 김용준 총리 후보자 인선 과정에서도 특정업무경비 문제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 인선을 둘러싼 혼란은 이동흡 후보자 한 명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