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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19금' 전시회? 조선시대 '춘화' 조명

권란 기자

입력 : 2013.01.17 10:06|수정 : 2013.10.29 17:48


(혜원 신윤복 작으로 전함. 건곤일회첩 중 일부, 1844년 경, 종이에 수묵담채)


우리나라에 ‘19금 전시’가 열렸습니다. ‘19금 영화’, ‘19금 무비’는 들어봤지만, ‘19금 전시’는 조금은 생소합니다.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성문화 박물관’ 같은건가” 싶기도 하지만, 평범한 그림 전시입니다. 실제로 전시장 입구에서는 어린 관람객이다 싶으면 ‘성인’인지 신분증 검사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 그래서 더 궁금해지는 전시입니다.

‘19금 전시’는 ‘춘화’ 전시입니다. ‘춘화’는 ‘성’을 소재로 그린 그림입니다. 남녀 간의 정분을 ‘춘심’, ‘춘정’이라고 해서 ‘봄 춘(春)’자를 쓰는데, 남녀 간의 정분을 그린 그림도 ‘춘화’라고 합니다. 일단 전시 주제부터가 ‘야하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번 전시에 나온 춘화가 다름 아닌 우리 조선 시대의 춘화라는 점입니다. 엄격한 유교 사회였던 조선에서 다소 불경스럽게 느껴졌을 법한 춘화가 그려졌다니, 영화 ‘음란서생’이 허무맹랑한 픽션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춘화가 가장 많이 그려지고 유통이 됐던 건, 17~18세기가 절정이었다는데요, 자본주의가 싹트기 시작하면서 춘화 ‘수요’가 생겨났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춘화는 남녀의 만남과 노골적인 성적 이미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기존 권력을 조롱하고 비판하는 시각도 담겨 있다 보니, 사회 혼란기에 나타난다는 특징도 있고요. 이런 경향은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에로티시즘 예술’에서도 보이는 특징이라는데요, 춘화는 급변하는 시대의 상징과 같은 건가 봅니다.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방 안에서 노닥이고 있습니다. 여인의 남색 치마와 머리의 가채를 볼 때 두 사람은 양반 부부로 보입니다. 남편은 밀어를 속삭이며 부인에게 바짝 다가서고 있는데, 부인은 곰방대를 입에 문 채 모르는 척 하고 있네요. 정숙함이 몸에 배인 양반 여인인가 봅니다. 가는 선으로 표현한 남자의 은근한 눈빛, 여인의 새초롬한 표정에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부부가 입고 있는 옷자락의 주름은 어떠하고요. 마치 켜켜이 쌓인 둘 사이의 정분을 의미하고 있는 듯합니다. 두 남녀의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둘을 둘러싸고 있는 방 안 풍경도 참 재미있습니다. 횃대에는 남녀의 도포와 저고리가 걸려 있는데, 그 옷자락의 주름이 참 멋스럽습니다. 오른쪽 벽에는 수묵산수화가 한 점 걸려 있습니다. 그림 속의 그림이라 그냥 넘어갈까 했더니, 그마저도 단원 김홍도 풍의 그림입니다. 이 방의 주인장은 풍류를 아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방 안에 놓여 있는 붉은 가죽 베개와 쇠화로, 요강, 담배쌈지도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듯하지만, 만약 이것들이 없었더라면 오히려 두 남녀의 사이가 야릇하기 보다는 좀 심심해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은 소품 하나하나가 두 남녀의 사랑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녀의 성을 그린 그림인 만큼, 원래 이 그림에는 작가의 서명이나 낙관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후대에서야 화풍으로 봤을 때 혜원 신윤복의 작품이 아니겠느냐는 얘기가 정설처럼 여겨졌고, 이후 누군가가 혜원의 이름과 도장을 그림 속에 넣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혜원의 ‘건곤일회첩’으로 알려졌습니다. ‘하늘과 땅, 즉 남녀가 만나는 일’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화첩에는 이런 춘화가 모두 12점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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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 작으로 전함. 운우도첩 중 일부, 19세기 전반경, 종이에 수묵담채)

진달래가 흐드러진 어느 봄날 풀밭 위에서 젊은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옷차림으로 봐서는 혈기왕성한 젊은 양반댁 자제와 사대부가의 여인인 듯합니다. 여인의 등에 얼굴을 파묻은 남자의 표정과 곰방대를 물고 있는 여자의 ‘흥’ 하는 듯한 표정이 대비됩니다. 따뜻한 봄날 데이트에 나섰다가 둘이 눈이 맞아서 은밀한 곳을 찾아왔나 했는데, 그 표정을 보면 둘이 애인 사이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오히려 진홍색으로 활짝 핀 진달래가 더 정열적으로 보입니다. 그림 밖으로 진달래향이 새어나오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요.

이 작품은 ‘운우도첩’에 담긴 춘화입니다. ‘운우도첩’에서 구름과 비라는 뜻의 ‘운우’는 남녀의 성행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이 화첩은 단원 김홍도의 그림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한국의 사계절을 보여주는 듯한 배경 묘사 때문에 ‘사계춘화첩’이라고도 불립니다. 역시 원래 그림에는 서명이나 도장이 없었는데, 후대에 단원의 그림임을 알리는 표시가 붙었습니다.

춘화는 전세계 어디에서나 그려지는 그림입니다. 예술의 영원한 주제는 ‘사랑’이기 때문일까요. 어느 예술작품이나 나라와 시대의 특징들이 들어가는데요, 춘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의 춘화는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하고, 일본의 춘화는 잘 가꾸어진 정원에서 옷을 다 갖춘 남녀가 등장하고, 인도의 춘화는 남녀가 요가를 하는 듯 하고, 몽골의 춘화는 말을 타며 이뤄지는 사랑이라 하던가요. 우리 춘화는 우리 풍속화의 성격이 그렇듯, 부끄러워하면서도 은근한 멋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단지 에로틱한 행위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주변 풍광도 남녀의 사랑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도 않았기 때문일까요. 당시에는 ‘외설’로만 여겨졌을 춘화이지만 지금은 당대의 사회상과 예술성을 두루 보여주는 한 예술 장르로 여겨지는 점으로 미뤄볼 때, 언젠가는 현재의 포르노그래피도 ‘예술’로 승화하는 시대가 있을까요. 여성의 성기를 그린 귀스타프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도 19세기 당시에는 ‘뭐 이딴 그림이 있냐’며 비난의 대상이 됐지만, 지금은 오르세미술관의 대표적인 인기 작품이 되었으니까요.